이기적 이타주의자 - 21세기 트렌드를 바꾸는 새로운 소비자
앨런 패닝턴 지음, 김선아 옮김 / 사람의무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기적 이타주의’라니 헷갈립니다.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있어서일까요? 출판사의 홍보글 대로 사전적 의미를 따져봅니다. 자신의 필요나 욕구를 타인의 필요나 욕구보다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와 의도적으로 타인의 복지나 이해 또는 공공의 이해를 추구하는 이타주의를 하나로 버무릴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는 앨런 패닝턴의 <이기적 이타주의자>는 제목에서부터 혼란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광고일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동향과 태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민감한 저자의 선견지명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지난 세기 ‘과시적 소비’를 추구하던 경향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소비자들은 자신을 위해 치선의 것을 원하겠지만, 그것은 꼭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기적 이타주의 시대를 예고한다. 이것은 또 새로운 세계적 윤리관이며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13쪽)”라고 서문에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 명명한 “이기적 이타주의자”“나를 위해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하는 것,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 하지만 그것이 환경과 생태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욕구가 결합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소비자들의 변화한 소비행태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전망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19세기 산업혁명으로부터 20세기에 명멸했던 제품들의 흥망과정을 제품주기라는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연기관으로부터 내연기관으로의 변화를 비롯하여 인류가 사용해온 에너지형태의 변화를 제시하고 화석연료의 전망에 곁들여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서들이 소비행태의 변화에 기여하였을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나치게 다양한 요인들을 인용하다보니 수박겉핥기 식의 기술에 그치고 있어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적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논리를 전개도 매끄럽지 못하여 앞서 내세운 주장을 다음 문단에서 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이유가 무엇이든 제품 생명주기의 벨 커브가 하향곡선을 그리지 않은, 그리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가 상승세를 회복한 시대나 제품을 알지 못한다.(23쪽)”고 적었는데, 곧바로 매출이 위축되어가던 맥도날드가 맥카페를 신설해서 매출을 회복했다는 사례나 고형비누시장에서 브랜드파워를 자랑하던 아이보리가 새로 등장한 액상비누로 하향세에 들어섰다가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전략을 도입하면서 회복했다는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제품생명주기에 국한하였다고 저자가 해명한다면, 1960년대 임신부의 구역질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은 신생아에서 사지단지증(phocomelia)라는 치명적 부작용이 나타나는 바람에 시장에서 퇴출되었습니다. 하지만 탈리도마이든 최근 부활하여 한센병과 다발성골수종의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하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이 국제적으로 도덕적 리더역할을 했고, 당시 기독교사회가 무지한 원주민에게 개종이라는 기쁨을 선사하고 복음을 전파하고자 선교사를 파견한 바 있는데 이는 순수하게 이타적이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복음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행위는 우선 기독교 우월주의와 기독교적 시각에서 타문화를 바라보는 몰이해적인 접근이 대부분이었다는 것과 제국주의의 원료제공처와 제품소비처로의 식민지확보를 위한 첨병으로 운용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면 제국주의의 지극히 이기적인 행보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대우그룹이 관련된 2008년 마다가스카르의 경작지 임대계약이 쿠데타로 연결되었다는 사건은 처음 듣는 내용인데다가 간단하게 자료를 찾아본 바에 의하면 특정세력이 제공한 왜곡된 정보일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점에서 저자는 자료인용에 신중치 못한 듯 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162쪽). 또한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사이비종교단체로 분류하고 있는 것도 파룬궁을 탄압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주장만을 인용하고 파룬궁 측의 주장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도된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252쪽). 역시 GMO식품에 대한 견해도 단순하게 소비자의 불신이 있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치고 있어 핵심문제는 무엇이고 전망은 어떤지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내놓지 못한 것처럼 다양한 팩트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서도 핵심은 놓치고 있다고 보입니다. 10장부터 12장까지 21세기에 등장하는 변화를 새로운 도덕률, 새로운 소비자사회, 이기적 이기주의자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형태의 소비트랜드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견강부회라고 보이는 면이 엿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매슬로가 나눈 5단계의 인간의 욕구는 어쩌면 낙관적인 추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소비행태와 연결한 것은 저자의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시적 소비패턴에서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들은 이 물건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가격만큼 값어치가 있는지 환경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지 고려하게 될 것이므로 제조회사에서도 이런 소비패턴을 반영하여 제품을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영국의 외무장관 데이비드 밀리밴드가 한 말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 잘못된 대응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보호주의에 영합하고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를 미루고, 내수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여 보호주의에 굴복하는 것이다.(140쪽)”는 말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유럽공동체의 발족을 시발점으로 하여 세계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로 수렴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개별국가 간에 체결되는 FTA는 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국제적인 대세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의 체결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일부 집단이 반발을 마치 국민 전체의 뜻이 그렇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세기 전 조선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단초를 제공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망령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는 권력의 최정상에 있던 대원군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백성을 나락의 길로 인도했다면, 지금은 일부 집단의 작은 이익을 지키겠다는 현대판 쇄국정책이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족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장에 “의무적인 건강검진과 모니터링은 미래에 무상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358쪽)”라고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는 무상의료에 관한 언급 역시 의료에 관하여 잘못된 개념이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 아닐까 걱정됩니다. 의료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것은 신기루일 뿐입니다. 의료소비자가 돈을 내지 않는다면 의료에 투입되는 재정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의 부담이 되는 것이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경우 사용량이 무한대로 늘어나게 되는 모럴 해저드를 자주 경험해왔다는 점을 우려의 근거로 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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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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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단 <볼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우리 사회에 슬그머니 스며든 ‘명랑(明朗)’이란 감정의 정체를 뒤쫓은 울산대학교 소래섭교수의 문화사적 탐정놀이라고 읽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하여 저자가 <명랑운동회>라는 TV오락프로그램을 인용하고 있어 꽤나 친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제가 명랑운동회를 즐겨보던 시절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조숙했을지도 모를 나이에 즐겨보았던 모양입니다. 어떻거나 저 역시 ‘명랑’하면 <명랑운동회>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후배의 학위논문의 초고를 읽다가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명랑’의 정체를 뒤쫓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근래 들어 ‘명랑’이란 화두를 들어본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제1장에서는 ‘명랑’이 우리의 뇌리에 기억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명랑’은 백성의 눈을 가려 현혹하려는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래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제5공화국이었고, 그 앞에 자주 인용되었던 것이 제3공화국, 그리고 거슬러 결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통치의 문화적 접근방안으로 강요된 것이 처음이라는 근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억압된 사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명랑’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경주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회에 특정정서가 자리를 잡는데 힘으로만 눌러서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되돌아보면 민족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선의 백성들은 우울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일제가 던져준 ‘명랑’이란 화두가 그런대로 먹혀들어갔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사회에 명랑이란 말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처음 시발점이 되었던 조선총독부의 ‘감성정치’, 두 번째 요인인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적 근대화과정의 요소로서의 ‘감정관리’ 그리고 세 번째 요인은 김기림이 간파한 ‘배후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요소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면, 조선총독부가 통치수단으로서 명랑을 강요한 것은 식민지화에 대한 조선백성들의 열패감, 경제적 수탈 및 부를 창출한 수단을 빼앗긴 절망감 등으로 바닥까지 가라앉은 조선백성들의 감정곡선을 끌어올려 일제가 예정하고 있는 전쟁수행의 장애요인을 사전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농업을 비롯한 일차 산업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조선사회가 유통에 중점을 둔 상업중심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로 전환되면서 감정서비스의 필요성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김기림을 인용한 ‘배후의 감정’이란 ‘명랑’이란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본디의 의도를 깨부수기 위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식인들이 간파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래섭교수를 따라서 ‘명랑’에 숨어 있는 이러한 의미들을 뒤쫓다보니 상당기간이 일제 강점기간에 조선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화두가 되는 위생문제에 관해서도 정말 경성거리가 인분이 나뒹구는 끔찍한 상황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시골에서 밭농사를 짓는데 인분이 정말 귀하게 쓰였기 때문에 뒷간에서 일을 보아야 했고, 화장실을 정기적으로 치우기 위해서 똥장군에 퍼 담아 소달구지에 얹은 똥통으로 져 나르던 인부들을 흔히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일상, 대중문화, 돈벌이, 연애와 스포츠 등등 다양한 화제를 중심으로 하여 식민지 조선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명랑을 뒤쫓는 소래섭교수의 탐정놀이의 결말은 ‘만들어진 명랑’이란 제목으로 제3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조선사회가 피동적으로 수용하게 된 ‘명랑’이란 화두를 능동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서 소래섭교수가 세 번째 요인으로 김기림을 인용하여 설명한 배후의 감정으로서 명랑은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명랑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인데, 이는 오히려 웃음보다는 눈물에 가까운 역설적인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통이 크고 슬픔이 깊을수록 웃음에 대한 욕망이 더 세차게 끓어오른다. 이주일과 배삼룡이 아직도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암울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219쪽)”는 소래섭교수님의 말은 그의 속마음에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초라 생각합니다.

소래섭교수님은 ‘명랑’이란 화두를 쫓아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조선사회는 일하고자 하나 일자리가 없는 절망한 젊은 청춘들이 넘쳐나는 시기였고, 그들의 관심을 ‘명랑’이란 밝은 이미지의 단어로 포장해서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게 만들다가 결국은 총 한자루 쥐어서 전선으로 내몰려는 일제의 간악한 흉계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소래섭교수님의 탐정놀이의 마지막 반전은 바로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듣기조차 어려운 ‘명랑’이란 단어이지만, 사실은 ‘행복’전도사, ‘쿨’하다, 등 다른 이름으로 가면으로 바꿔쓰고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래섭교수님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공허한 행복론 따위에 매달리거나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가며 쿨한 척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손바닥만 한 거울과 그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명랑해질 준비는 다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명랑은 언제나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려는 자에게만 찾아온다.(281쪽)”는 결론으로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들이 감지했던 ‘배후의 감정’을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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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사생활 - 부모가 놓치고 있는 사춘기 자녀의 비밀
데이비드 월시 지음, 곽윤정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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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학교에서 여학생과 선생님이 머리채를 붙잡고 싸웠다거나, 남학생이 담배를 압수한 교감선생님을 마구 폭행한 사건들이 이어져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런 상황이 체벌을 금지하는 등 학생의 개인주의적인 의식을 고양시킨 탓으로 일어났다고 보고 적절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월시교수의 <10대들의 사생활>을 소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제 리뷰를 읽어 주시는 분들 가운데 사춘기에 있거나 앞둔 자녀를 두신 분들께서 관심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경우처럼 이미 사춘기를 지낸 자녀들 두신 분들도 예전에 자녀들이 보였던 행동을 다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겨서입니다.

그리고 월시교수가 사춘기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행동이 뇌신경계통의 성숙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이며, 이런 현상이 아이들마다 정도와 나타나는 시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청소년의 행동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심리학뿐만 아니라 신경생리학 등을 포함한 신경과학의 성과가 기여한 바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아이들이 사춘기를 넘길 무렵에 간혹 생각지 못한 반응을 보여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나친 감정대립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때는 아내나 저나 나름 속을 많이 끓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10대 청소년기에는 4 가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첫째는 급격한 신체변화입니다. 체격이 급격하게 커지고, 변성기를 거쳐 목소리가 변하며, 모발의 변화, 여드름과 같은 피부문제, 성기나 유방의 발달과 같은 신체변화 등입니다. 둘째는 정서의 강도가 강렬해지고 감정과 기분의 기복이 심해집니다. 셋째는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대상이 부모로부터 또래 친구들로 바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입니다(327쪽).

저자는 10년 이상을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수만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상담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충동적인 행동, 사랑과 섹스,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 그리고 10대에서 생기는 정신질환 등의 사례들을 어떻게 접근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풀어낼 수 있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상담사례들을 읽다보면 아이들의 돌출행동에 대응하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로 나타날 수 있는 청소년기의 행동변화 - 예를 들면 욕설을 내뱉고, 자주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는 10대와 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 아무리 온화한 성품을 가진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이들 10대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10대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하여, 또 10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보이는 문제행동에 관하여 적절한 사례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자신이 적용했던 대응방안을 소개하여 독자들이 나름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를 점검하는 체크포인트를 두고 있고, 부모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는 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학을 비롯한 생명과학을 공부한 분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제2장 ‘10대들의 뇌속탐험’입니다. 동물의 생명활동뿐 아니라 정신활동은 기본적으로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복잡하게 엮여 형성하고 있는 신경네트워크를 통해서 신경정보를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뇌신경계가 발달하여 기능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변화는 청소년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0대 자녀들의 충동적인 행동을 다루는 일이야 말로 부모들에게는 일생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거칠게 행동하는 것이 10대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특징이지만, 이것은 어른들과는 달리 청소년기에는 신경계통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전전두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분노행동을 통제하는 한시적인 ‘외부의 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녀들에게 엄격한 제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자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4장 ‘10대들의 뇌에 브레이크를 걸어라’에서는 10대들이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는 이유를 신경생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전전두엽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까닭에 뇌신경계통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적절하게 작용하지 않고, 이에 따라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의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서 충동적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정서적인 판단을 하는데 있어 성인과 청소년이 사용하는 뇌의 영역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을 때 성인들은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되는 반면, 청소년들은 공포와 분노를 관장하는 편도체가 가장 활발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인들은 정서를 읽기 위하여 이성을 관장하는 뇌가 활성화되지만 청소년들은 충동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뇌영역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시 생각을 되돌려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사춘기 자녀의 행동을 이해하실 수 없었던 경험은 없으신지요. 아니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이 청소년시절에 어른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야속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성인과 청소년들이 상황을 처리하는 경로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0대 자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데 써먹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152쪽). 대표적인 기술을 하나만 소개하면, “일반화시켜 말하는 것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너는 한 번도 식탁을 치우지 않는구나’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너는 오늘 저녁에 식탁 치우는 것을 잊었더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 일곱 가지 기술을 모두 소개해드리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들, 즉 청소년기 동안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많은 연구성과를 얻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답을 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364쪽). 그 이유는 지식이 유일한 힘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어른들이 10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우울증이나 분노폭발, 반항적인 태도, 정신없이 어지러운 방, 급변하는 감정 등이 그저 뇌발달로 인한 모습일 뿐 정상적이라는 것(354쪽)”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의 충동적 행동이 정상적인 변화과정이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대응방식을 바꾸되 훨씬 더 많이 자녀들의 삶에 간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역시 ‘사춘기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리하셨듯이 “사랑이 답이다.”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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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1-1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401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4 -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피에르 쌍소 지음, 김선미.한상철 옮김 / 동문선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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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에르 쌍소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담은 연작 에세이의 완결판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부제를 달고, ‘호감, 환심, 유혹, 쾌락에 관한 철학 에세이’라고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제목의 전작들과는 괘를 달리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작의 주제인 ‘느리게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자신에 충실한 삶이어야 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은 당연히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마련일테니 말입니다.

살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독불장군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부러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살던 동네에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여러 집 같이 살았습니다. 외롭다보니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어 거의 매일 저녁에 누군가의 집에 모여 수다를 떨며 지내는 생활입니다. 그러다보니 쉬고 싶은 날이 있어도 찾는 전화에 끌려나가는 경우도 있어 점점 불편하단 생각이 들어 결국은 모임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그 모임에서 불러주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어떻거나 세상을 살며서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면, 굳이 환심을 살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는 상대에게 경계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타인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까닭은 상대의 호의를 유발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도심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에게, 심지어는 자연의 꽃이나 나무들에게까지 자신의 호감을 표시하기 위함이다.(14쪽)“라고 적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표시하는 호감은좋은 반향을 일으켜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호감은 외모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함 역시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도 미흡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타인들을 유혹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순박한 사람들을 조롱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완력으로 통제(14쪽)”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목적으로 상대를 묵살하고 성가시게 하면서 고통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순박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세상이 온정으로 가득하다고 믿으며 실제로 세상에서 큰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간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 누군가에서 호감을 사려는 경우, 즉 환심을 사려하는 일은 자칫 반감을 초래해서 매정하게 거절당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인기배우 같은 공인들이 그런 위험에 처하기 쉬운데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가식적인 행동이란 사실이 들통나는 순간 신기루와 같은 인기의 장막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대중의 차가운 시선 속에 발가벗겨져 내동댕이쳐지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보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이 보내주는 신뢰가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자신감의 부족이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나타나 대중을 실망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하여 쾌락을 쫓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호감이나 환심을 사는 것으로 누군가를 유혹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겠습니다.

정리해보면, 연작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느리게 산다’는 전작들의 주제와 동떨어진 느낌이 큽니다. 또한 부제별로 간결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담았던 전작들에 비하여 매우 현학적이고 에둘러 전달되는 메시지는 책읽기에 몰입하지 못한 제 불찰일 수 있겠습니다만 핵심이 쉽게 붙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느림’에 대한 결론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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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독도(죽도)를 이렇게 말한다 - <죽도-죽도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에 대한 비판 검토 내일을 여는 지식 역사 25
나이토우 세이추우 지음, 권오엽.권정 엮음 / 한국학술정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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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는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데 항의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일본대사관에 보낸 남성에 대한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돌발적인 조처가 나올 때마다 규탄대회를 벌이는 등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빼고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와 일본의 주장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챙겨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정광태님이 부른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알려주는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쪽 셋째줄…”으로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가 자책하는 생각이 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나이토우 세이추우 교수가 쓰고 권오엽, 권정교수가 편주한 <일본은 독도(죽도)를 이렇게 말한다>를 읽고서입니다.

편주를 하신 권오엽교수님 역시 “나의 독도에 대한 관심을 우연이라 했으나, 나이토우 세지추우 선생님의 저서 『죽도(울릉도)를 둘러싼 일조관계사』(『독도와 죽도』)가 그런 우연을 만들어준 것 같다. (…)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시려는 선생님의 학문에 침밀감을 느끼고, 독도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간단한 문제, 그저 감정에 사로잡힌 문제, 그래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13쪽)”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죽도)를 이렇게 말한다>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죽도=독도문제 입문』- 일본 외무성 『죽도』비판’은 나이토우 세지추우교수가 2008년 2월 일본 외무성이 『죽도-죽도문제을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라는 팸플릿을 제작하여 일본어판 뿐 아니라 한국어판과 영어판도 만들어 배포한 것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편주하신 분들은 나이토우 세지추우교수가 쓴 원문을 번역문에 더하여 관심있는 독자들이 대조해가며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제2장은 편주하신 분들의 해설로 이루어져 있고, 제3장은 울릉도와 독도에 관하여 과거의 사료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은 물론 관련국가의 문서를 인용한 나이토위 세지추우교수의 논문을 번역하여 수록하였으며, 제4장은 권정교수님의 논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장에는 독도문제에 관하여 일본정부의 입장을 정리한 외무성의 홈페이지 자료를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싣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의 주장이 합리적이지 못한 점을 조목조목 따진 나이토우 세지추우교수님은 후기를 통하여 “나는 역사를 연구하는 일본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역사의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다. 죽도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외무성의 주장처럼 사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제멋대로 논의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본의 명예를 위해 사실에 기초하여 역사를 해명하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132쪽)”고 밝히고 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접을 수는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남게 된 것은 근세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학적 구도의 소산이라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들어나고 있기 때문에 한일 양국은 진검승부를 시작할 게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던 것 같습니다. 노일전쟁을 통하여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것이 시발점이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는 소련의 남하를 저지해야 하는 미국의 이익을 고려한 주일 대표부 정치고문 시볼트의 심려(深慮)가 ‘합중국의 이해에 관계있는 문제로서 안전보장의 고려에서’라는 제안이 화근을 남긴 셈입니다. 일본이 처음 독도를 자국의 영토에 일방적으로 편입시키던 당시에도 내무성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시국에 있어 한국령이라고 의심되는 황막한 일개 불모의 암초를 편입시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많은 나라로부터 우리나라의 한국 병합의 야심에 대한 의문을 키우는 것은, 이익이 극히 적은 데 반해 사태가 결코 쉽지 않다’는 입장이었으나, 외무성의 경우는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고 무선 혹은 해저전선을 설치하면, 적함감시 상 아주 좋지 않겠는가, 특히 외교상 내무 같은 고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강경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도가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조용한 외교로, 그들의 적극적인 공세에 소극적으로 임하며, 독도가 우리 것이라는 논리를 정립하는데 소홀했던 것 같다. 그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기에 그랬었지만, 게을렀던 논리의 정립은 반성해야 한다.(310쪽)”는 권정교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스스로 자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은 독도(죽도)를 이렇게 말한다>를 통하여 독도가 왜 일본땅이 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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