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 버려도 행복하다 - 아름다운 노년,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하여
이정옥 지음 / 동아일보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1%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7.2%를 기록하여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2010년 11.0%를 차지하였고, 2018년에는 14.3%에 달하여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20.8%에 달하여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령화현상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현상 가운데 노인인구의 의료현황은 의료계의 관심사항일 것 같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65세 이상 연령층이 사용한 의료비는 13조7847억원으로 전체 의료비 43조6570억원의 31.6%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4.5% 증가한 수치로 역시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의료관련 서비스는 크게 건강보험공단에서 2008년 7월부터 운용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커버하는 요양시설과 기존의 건강보험이 커버하는 요양병원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재정이 커버하는 요양병원 부문의 비중은 2010년에는 2009보다 30.8%늘었는데 2004년과 비교하면 17배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요양병원은 8배, 입원환자는 7배가 늘어난 것과 비교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라고 보이는 부분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그만큼 좋아지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노인환자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그밖에도 충분한 배려를 받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젠가 내가 신세를 져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중년고개를 넘은 분들의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미국의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 관한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낸 재니스 스프링박사의 <웰 다잉 다이어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86246>에서도 보면, 특히 보호자들은 환자들이 병원 혹은 요양시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늘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인구고령화에 따라 노인환자들을 대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의료인들도 노인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 들어 노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주로 보호자들의 경험담이 많아 노인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충분히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 소개하는 이정옥시인의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는 지금까지 부족하다 싶었던 부분을 채워주는 진솔한 글이라는 생각합니다.

 

이정옥시인께서는 실비노인요양시설과 실비요양원에서 10년여의 세월을 생활하면서 겪은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람에서부터,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요양시설이라는 작은 사회를 넘어 우리사회의 노인정책에 이르기까지 넓혀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참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시인께서도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에 망설이면서도 터키의 시인 나임 힉메의 <진정한 여행>의 한 구절에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5쪽)” 그래서인지 프롤로그의 제목도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정말 힘든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인이 지낸 실비요양병원시설에는 65세에서 99세 사이의 노인 69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과 일상을 함께하면서 느낀 점을 ‘오래된 바이올린 소리가 더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묶었습니다. 시인은 “지금의 장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는 교양있고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되리라. 하지만 품위있고 아름다운 노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 노인들의 외롭고 쓸쓸한 노후를 바라보며 오늘의 장년에게 전하고 싶었다(6쪽)”고 했습니다.

 

노인들이 모여 사는 요양시설도 사람사는 동네인지라 별별 일이 다 일어나고, 다양한 성격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져야할 행동거지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분들이 보여주시는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시인께서 “이제와 무얼 시작할 수 있겠어. 또 시작한들 무슨 소용이겠어. 곧 죽을텐데”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짐하셨다는 말씀, “육신을 한 줌씩 들어내며 죽음을 기다릴 때야말로 영혼을 살찌워야 할 때라 한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영혼을 살찌우는 일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인생의 마지막 날, 영혼의 안식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70쪽)”이 마음 한켠에 무겁게 자리 잡습니다. 시인의 이런 생각은 글을 읽어가면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독서편력을 확인하면서 그 무게를 더하게 됩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의 주제는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적에 가졌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말씀인 듯합니다. 시인은 그런 심정을 ‘반만 버려도’라는 시(詩) “나목의 가난으로 겨울을 이긴/과일나무에 꽃이 만발이다. (…) 이룰 수 없는 희망으로 흘러넘치는/내 가슴의 위장된 허욕들/가진 것 반만 버려도/행복이 만발할 것을.(76쪽)”에 담았습니다. 특히 같이 생활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의미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 존엄사는 ‘존엄한 죽음을 생각할 때다’에 담고 있습니다. 유방암이 재발한 마르시아 할머니는 “질병과의 고통과 싸우는 것이 전부인 삶은 살아 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고 하시며 통증완화제 이외에 어떤 치료도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고통이 아니라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 에픽테투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심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죽음을 맞게 되면 쉽게 잊게 될 것 같습니다.

 

시인께서는 장례절차와 수목장 등에 관한 진지한 생각도 풀어놓고 계신데, 특히 존엄한 죽음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의료인이라면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의료계에서는 ‘보라매사건’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연명장치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제거한 담당전문의가 2년6개월의 징역에 집행유예 6개월의 선고를 받은 사건에 대하여  시인은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의사가 연명장치를 제거하면 살인 또는 살인방조죄로 처벌받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법이고 현실이다.(269쪽)”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혈압을 앓던 아흔살의 나체따 할머니가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나, 기력이 쇠약해진 헬레나 할머니가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비위관을 설치하는 등 연명치료에 집착하는 의료진에 대하여 시인이 보이는 비판적인 시각은 재고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들이 1퍼센트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모습이 동료 의사들의 눈에도 마치 의학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의 섭리인 죽음을 이기려 시도하는 헛된 노고로 비치는 경우(292쪽)”만 있었을까요?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에 대한 의료진의 고심이 있다는 점도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웰 다잉 다이어리>에서는 오히려 품위있는 죽음과 연명장치의 제거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비위관 설치에 신중한 의료진에 대한 보호자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사례도 소개되고 있어 의료행위를 결정하는데 있어 고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웰 다잉 다이어리>에서 소개하고 있는 ‘자연사를 허용하라(Allow Natural Death; AND)’라는 용어를 논의해보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도록 환자가 사전에 의사를 표시해두는 ‘회생치료금지(Do Not Resuscitate; DNR)’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에는 적극적인 치료를 거절하는 부모의 권리를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태만과 포기를 의미하고 자식이 살인자로 몰릴 수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DNR을 대체할 용어로 AND가 제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노인복지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묶어 비판하고 있습니다. 보건만 있고 복지는 없다는 소제목에는 의료계에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예방은 포기하고 수발만 선택했다고 비판하고 있는 노인요양보험의 문제점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수발대상 노인들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왕에 운영되어 오던 실비요양시설을 통폐합하면서 중증환자 이외의 노인들을 퇴소시키는 조처가 취해졌다는 것입니다. 노인요양보험은 일본에서 개호보험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부터 시행해오던 것을 참고하였는데 당시 일본정부도 재정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실토하던 정책이 결국 2008년에 보장성을 축소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현실에서는 불이익과 불편함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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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2-1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에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보내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998

비로그인 2011-12-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품위있게 죽기가 쉽지 않아요..많이 애써야 할 것 같아요. ㅎㅎ 잘 보았어요.

처음처럼 2011-12-30 18:1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은 미리 마음을 다진 분도 막상 죽음을 앞에 두고는 마음이 변하더라는 말씀을 자주 듣곤하죠
 
분류의 역사
알렉스 라이트 지음, 김익현.김지연 옮김 / 디지털미디어리서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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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의 유명 매체 여러 곳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작가이자 정보 아키텍처(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보아키텍처라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이며, 여러 기관의 정보설계 프로젝트를 주도했다는 알렉스 라이트가 쓴 <분류의 역사>를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제가 연재하고 있는 글에서 분류에 대한 사항을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공한 병리학은 의학의 기초를 쌓는 분야로서 질병에 따라서 인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구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병리학은 인체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서 질병을 분류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질병을 분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방법을 구하고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렉스 라이트가 찾아낸 다양한 정보분류체계에서 의학이 독립된 영역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의학분야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정보의 대분류에 한 항목이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본격적인 인터넷시대를 맞아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작은 카드에 꼼꼼하게 적어 정리해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절이 있습니다만, 이젠 컴퓨터로도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 분량의 정보들을 어떻게 분류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발전시켜왔던 것들을 종합정리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며, 그것 또한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오직 가장 먼저 발표한 사람이거나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사람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에서 100년도 더 이전에 발명되었는데, 아직도 구텐베르크가 최초가 발명했다고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것 같습니다. 기술이 혹은 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기대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옛말처럼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의학분야 역시 다른 과학분야처럼 과거에 있었던 성과들을 살피는 일을 철저하게 하는 분야입니다. 저도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역사적 궤적을 뒤쫓는 일에 열심인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광대한 정보의 생태계를 이제 막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거에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해왔는지 그 역사를 철저하게 뒤쫓고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신화학, 수도원 생활, 인쇄의 역사, 과학적 방법, 18세기 분류학,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도서관 사서직, 초기 컴퓨터 역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으로부터 자료를 뽑아, 결국은 인류가 살아남아 현세에 이르게 되기까지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정보처리에 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분류의 역사>에 저자가 담아낸 핵심은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수집, 처리에 관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여기에 더하여 수집된 정보를 분류하여 종합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유전자에는 정보를 분류하는 속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능력은 수렵과 채집을 통하여 식량을 얻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가 빙하시대를 맞아 식량을 확보하는데 있어 위기가 닥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서 축적되는 정보량이 많아지고 상호작용에 의하여 정보활용도 역시 높아진 것이 인간사회가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문자로 기록하게 되면서 정보가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기록된 정보를 모으는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고,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의 대량유통이 가능하게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는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확대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는데, 인터넷이라고 새로운 형식의 정보네트워크를 통하여 확산되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인간이 발전시킨 분류 체계에는 바로 ‘계층 구조’와 ‘네트워크’라는 변하지 않는 항구적인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분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전에 네트워크와 계층구조라는 제목의 제1장을 통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는 이유로 보입니다. 그 다음에는 분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뒤쫓기 위하여 인류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왔는지 그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요즈음 즐겨보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백성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에 대하여 사대부들이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설명과 관련하여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발명의 신 테우스가 이집트 타무스 왕에게 백성들이 자신이 발명한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 훨씬 현명해질 것이라고 말하자 타무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의 발명품은 배우는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사용하려고 들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외부에 쓰인 문자들을 믿고 스스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발명한 것은 기억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오.’(15쪽)”

 

그리고 생각하니 휴대전화, 노래방기계와 같은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전화번호나 노랫말을 기억할 필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기억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는 기억력을 높이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에 관한 저자의 인용에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인류가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여 처리해왔는지에 대하여 잘 정리되어 있어 앞으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가늠할 수 있게 안내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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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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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적인 MBA 와튼스쿨에서 13년을 연속해서 가장 인기가 많은 강의로 꼽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가 협상론에 관한 자신의 강의를 담은 책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게 되었다는 출판사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BOOK소리]에서 꼭 소개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꼭 참고를 하시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즉부터 우리사회가 협상에 미숙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민주화의 봇물이 터지고 부터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모두 버린다”는 'all or nothing'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건의료분야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협상전문가가 없을 뿐 아니라 키우려는 노력조차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해가 엇갈릴 때 일수록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힘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우선하는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선조 가운데 시쳇말로 협상의 달인도 계셨지 않았습니까? 고려 성종 12년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 대군의 침공을 맞아 서경이북을 내주고 전쟁을 피하자는 조정분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신 적진으로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오히려 강동6주를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이루어낸 서희(徐熙), 그 분 말씀입니다. 양재동에 있는 외교안보연구원을 방문하면 서희의 흉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뜻을 오늘에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과과정 어디에도 협상에 관하여 공부할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협상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협상을 잘 진행하는데 필요한 요소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고, 그러한 요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져왔습니다. 통상적으로 협상의 핵심원칙으로 협상의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의 공유, 이해관계를 충족시킬 다양한 옵션의 개발, 협상 당사자들 간에 합의에 대한 객관적 기준마련 등을 꼽고 있으며, 기술적 요인으로는 협상 당사자들 간의 의사소통, 신중한 합의의 약속, 협상당사자들 간의 관계 등이 고려된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특히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을 강조하는 기존의 협상법은 현실에서는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리고 상황에 맞게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대처방법이야말로 진정한 협상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삶이 복잡해지면서 삶 자체가 협상에 의지하여 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협상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교수님 역시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협상이 필요한 상황을 예로 들면서 그의 방식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방법, 가격을 유리하게 흥정하거나 남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 비법, 생활의 혜택을 얻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심지어는 자녀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협상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틀림없이 놀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소개해드렸던 <10대들의 사생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53211>에서 데이비드 월시교수가 피상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욕구와 동조하여 공감을 느끼려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이아몬드교수의 협상론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1강에서 그가 제시하는 열두가지 협상의 핵심전략은 어떻게 보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막상 소홀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을 그린다거나, 감정에 신경을 쓴다거나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등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가 협상을 시작할 때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담긴 4가지 협상도구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첫째, 형식적인 분위기를 탈피하여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둘째, 질문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상대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 셋째, 상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 넷째, 일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서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교수님의 협상법의 키워드는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란 본래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고, 가치를 인정해주고, 의견을 물어주는 사람에게 보답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성이에요.(41쪽)”라는 것입니다. 주로 협상 사안과 이익에 초점을 맞춘 후, 이에 맞춰 어떤 제안을 할지 궁리하는 식으로 접근했던 과거의 협상방법이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의약계의 리베이트관행과 관련하여 제약사의 영업파트에서 금전 혹은 선물을 제공하는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지탄을 받는 수준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이사를 도와준다거나 하는 등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행위까지도 도덕적이지 않은 것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기업의 CEO가 핵심고객을 위하여 한 가장 중요한 일이 그의 장모를 토요일 밤에 공항에서 픽업하는 것이었고, 이 일은 어떤 협상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었지만 이후 모든 협상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 북리뷰를 통하여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만, 의료과오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가 있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이 의료소송을 피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 의료계에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정재승, 김호의 <쿨하게 사과하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47514>를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이 참 많습니다만, 미국의 유력 신문이 “남미 출신들의 로비활동이 여전히 부진하다.”는 헤드라인으로 쓴 기사를 인용한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의사들은 로비활동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로 바꾸면 우리나라의 사정에 꼭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교수는 이 문장이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미출신들이 모두 같은 문화권으로 치부하는 것부터가 잘못인데다가 남미출신 이민자들의 출신지, 직업, 정치성향 등등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미출신이라는 단일집단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리한 시각이 편견과 차별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료계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약계를 비롯한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계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공과목부터가 다양하며, 고용상태 역시 대학교수, 봉직의사, 개업의사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하나로 정리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항상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관념이 고정되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을 대변하는 대한의사협회 역시 회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려는 노력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의견을 대표하는 분들로 구성되는 모임을 통하여 평소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라면 협상에 참여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분명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형화된 협상의 틀과는 분명 차별되는 새로운 협상의 틀을 깨우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와튼스쿨의 스튜어드 다이아몬드교수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무언가를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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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2-1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에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보내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890
 
바슐라르 - 바슐라르와 상상의 미학, 그 무한의 나라로의 여행
곽광수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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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8년 <촛불의 미학>을 통하여 처음 만났던 가스통 바슐라르가 다시 저의 눈길을 붙잡게 된 것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바슐라르와 상상의 미학, 그 무한의 나라로의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곽광수교수님의 <바슐라르>의 리뷰를 읽고서였습니다. ‘상상(想像)’의 나라를 헤메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아예 단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문학작품이나 라디오 드라마로부터 멀어지면서 생긴 버릇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촛불의 미학을 통하여 바슐라르가 과학철학자이며 문학비평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과학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집요하고 무한하며, 그러한 상상력은 문학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음을 깨닫고 문학을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촛불의 미학; http://blog.joinsmsn.com/yang412/9918483>을 읽으면서 흔히 만나는 촛불에 대하여 그렇게 천착해 들어가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바슐라르는 사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바슐라르>에서는 곽광수교수님을 통하여 바슐라르가 생전에 뒤쫓던 화두가 ‘상상력’이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학비평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조금 눈을 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책머리에 붙여둔 것처럼 <바슐라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1부에서는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다룬 곽교수님이 다룬 글들로, 제2부에서는 바슐라르의 이론을 실제로 문학비평에 적용한 글들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제1부는 ‘물질적 이미지’, ‘바슐라르와 상상력의 미학’, ‘바슐라르와 상징론사’, ‘바슐라르 문학비평의 실제’, ‘외국문화 연구와 텍스트 읽기’라는 제목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바슐라르와 상상력의 미학’이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연구서로 보입니다. 특히 이 부분을 독해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바슐라르의 창조적인 상상력은 물질적 이미지와 물질적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상상은 언어를 통하여 형상화되는데 작가가 언어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는 상상은 역시 독자가 상상을 통하여 이를 구체화하는 내부적 표상작용을 통하여 교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울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지의 존재와 힘이란 기실 독자의 상상력의 존재와 힘이다.(58쪽)”라고 정리한 것처럼 작가가 이미지를 통하여 형상화한 상상력을 독자가 울림이라는 교감을 통하여 같이 느끼도록 하는 힘이 바로 작가에게 주어진 미션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근래의 문학에서는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려는 노력보다는 보고 듣고 이해하는데 주력하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 역시 상상력을 동원하기 보다는 즉각 이해되지 않는 문학을 어렵다고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언젠가부터 시, 소설, 에세이와 같은 문학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 저의 상상력이 빈곤해진 탓에만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애매할 수 있겠습니다만,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작품을 읽다보니 상상력을 발휘하는 연습이 게을러지고 관심도 줄어들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하다보니 문학작품을 읽고서도 막상 리뷰를 쓰려다 보면 생각이 마치 액체 속의 입자가 브라운운동을 하듯 종잡을 수 없이 흐르면서 글의 흐름도 뒤죽박죽이 되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기획하고 있는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저의 상상력을 다시 키워야 하겠습니다. 저의 생각을 글에 담기 위해서도 그렇고, 제가 읽어내고 정리해야 할 책들에 담긴 저자들의 상상력에 교감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곽교수님께서 바슐라르의 상상력의 미학을 통하여 김현승 시인의 <鉛>의 셋째 연 “맑고 고요한 내 눈물을 / 밤이슬처럼 맺혀 보아도, / 눈물은 나를 떼어 낸 조그만 납덩이가 되고 만다.”에 대하여 언급하고 계신 부분을 예로 들어, “사라짐의 이미지로서의 <눈물>마저, 지워 사라지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잃고 사라지게 해야 할 지성적인 무거움을 도리어 얻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지상적인 것에의 얽매임의 끈질김을 보여준다. 지성적인 삶의 장(場)이라고 할 낮 동안의 온갖 활동의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인 듯한 <밤이슬>의 이미지가 사라짐의 이미지로서의 <눈물>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거움의 이미지로서의 납의 선택이다. 납은 무거운 물질일 뿐만 아니라, 그 표면적인 시각적인 성질에 있어서 어둠과 검은색의 동류인 것이다.(283쪽)”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바슐라르가 추구한 상상력의 미학은 문학비평에서 그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곽교수님의 말씀은 특히 제2부에 담고 있는 문학비평의 실제 사례를 통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문학언어를 과학적 보편성으로 분석하려던 구조주의적 접근방식이 특별한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말았다는데서 바슐라르의 미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형상화된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독자가 작가와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문학을 향유하고 음미할 때 느끼는 감동은 독자의 심리적 활동으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은 독자와 작가와의 심리적인 공감과 문학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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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정운천의 7번째 도전
정운천 지음 / 올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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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님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습니다. <박비향>을 출판했을 때도 참석했지만 기념식장에는 그의 삶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보 정운천의 7번째 도전>은 지금까지의 삶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도전정신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자 노력해온 저의 무모한 도전을 통해,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7쪽)”라고 머리말에서 그가 밝힌 집필의도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봇물처럼 이어지고 있는 여느 출판기념회와는 분명 다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투박하다싶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신념과 나름대로의 철학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얻게 됩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이 2008년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부합동 끝장토론이 열렸던 세종로 정부청사였습니다. 그때 처음 본 인상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투박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두어달이 지난 다음 장관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거북선농업>을 건네주면서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미국산 쇠고시 수입재개와 관련한 협상의 뒷이야기 그리고 국내 한우농가대책 등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의 인연은 출판기념회에 초대장을 보내주는 단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았습니다만, 저 역시 몇 차례 삶이 흔들릴 정도로 고민할 정도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정운천 장관님이 삶에서 맞은 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진학에 실패하는 과정은 저도 겪어봐서 나름 공감되는 부분입니다만, 맨땅에서 헤딩하는 식이라고 할 참다래농업을 뿌리내리고 고구마농사로 이를 보완해가는 과정은 농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거북선 농업; http://blog.joinsmsn.com/yang412/9802332>에서 생생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가 농업에 투신하게 된 데는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 그만큼 성공의 여지가 많고 개발의 잠재력이 크다.(49쪽)”고 하신 인촌선생님의 말씀이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저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기초학을 전공하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업을 선택한 그에게 시련이 이어져 수입개방과 어렵게 일군 참다래농사가 계절을 타는 문제가 도전과제로 등장했고 무조건 반대가 아닌 면밀한 상황분석을 통하여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고 협상을 통하여 이를 관찰하는 뚝심을 보여주고 있어 쉽게 좌절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배우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입시가 그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면, 그가 일생을 바친 농사일은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의 도전으로 이어졌고, 농업에 대한 그의 꿈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기회였던 농수산식품부장관직은 취임 직후 일어난 제2차 광우병 파동 때문에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다섯 번째 도전이 된 촛불시위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대응과정에는 저 역시 적지 않은 부분에서 같이 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박비향; http://blog.joinsmsn.com/yang412/11059482>에서 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정치적 도전이 된 전라북도 도지사 선거가 여섯 번째 도전이 되었는데, 애시당초 불가능한 도전이었지만, 누구도 생각지 못한 지지를 얻어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의 진심이 도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삶의 일곱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꼭 일곱 번 쓰러지고 여덟 번째 도전에 성공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과 농민을 사랑하는 그의 철학이 이제는 제대로 평가받고 빛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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