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의 역사
알렉스 라이트 지음, 김익현.김지연 옮김 / 디지털미디어리서치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의 유명 매체 여러 곳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작가이자 정보 아키텍처(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보아키텍처라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이며, 여러 기관의 정보설계 프로젝트를 주도했다는 알렉스 라이트가 쓴 <분류의 역사>를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제가 연재하고 있는 글에서 분류에 대한 사항을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공한 병리학은 의학의 기초를 쌓는 분야로서 질병에 따라서 인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구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병리학은 인체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서 질병을 분류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질병을 분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방법을 구하고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렉스 라이트가 찾아낸 다양한 정보분류체계에서 의학이 독립된 영역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의학분야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정보의 대분류에 한 항목이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본격적인 인터넷시대를 맞아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작은 카드에 꼼꼼하게 적어 정리해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절이 있습니다만, 이젠 컴퓨터로도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 분량의 정보들을 어떻게 분류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발전시켜왔던 것들을 종합정리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며, 그것 또한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오직 가장 먼저 발표한 사람이거나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사람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에서 100년도 더 이전에 발명되었는데, 아직도 구텐베르크가 최초가 발명했다고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것 같습니다. 기술이 혹은 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기대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옛말처럼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의학분야 역시 다른 과학분야처럼 과거에 있었던 성과들을 살피는 일을 철저하게 하는 분야입니다. 저도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역사적 궤적을 뒤쫓는 일에 열심인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광대한 정보의 생태계를 이제 막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거에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해왔는지 그 역사를 철저하게 뒤쫓고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신화학, 수도원 생활, 인쇄의 역사, 과학적 방법, 18세기 분류학,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도서관 사서직, 초기 컴퓨터 역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으로부터 자료를 뽑아, 결국은 인류가 살아남아 현세에 이르게 되기까지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정보처리에 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분류의 역사>에 저자가 담아낸 핵심은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수집, 처리에 관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여기에 더하여 수집된 정보를 분류하여 종합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유전자에는 정보를 분류하는 속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능력은 수렵과 채집을 통하여 식량을 얻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가 빙하시대를 맞아 식량을 확보하는데 있어 위기가 닥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서 축적되는 정보량이 많아지고 상호작용에 의하여 정보활용도 역시 높아진 것이 인간사회가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문자로 기록하게 되면서 정보가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기록된 정보를 모으는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고,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의 대량유통이 가능하게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는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확대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는데, 인터넷이라고 새로운 형식의 정보네트워크를 통하여 확산되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인간이 발전시킨 분류 체계에는 바로 ‘계층 구조’와 ‘네트워크’라는 변하지 않는 항구적인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분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전에 네트워크와 계층구조라는 제목의 제1장을 통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는 이유로 보입니다. 그 다음에는 분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뒤쫓기 위하여 인류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왔는지 그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요즈음 즐겨보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백성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에 대하여 사대부들이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설명과 관련하여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발명의 신 테우스가 이집트 타무스 왕에게 백성들이 자신이 발명한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 훨씬 현명해질 것이라고 말하자 타무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의 발명품은 배우는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불러일으킬 것이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사용하려고 들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외부에 쓰인 문자들을 믿고 스스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발명한 것은 기억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오.’(15쪽)”

 

그리고 생각하니 휴대전화, 노래방기계와 같은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다보니 전화번호나 노랫말을 기억할 필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기억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는 기억력을 높이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에 관한 저자의 인용에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인류가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여 처리해왔는지에 대하여 잘 정리되어 있어 앞으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가늠할 수 있게 안내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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