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미 - 오늘, 당신의 인생은 새로 시작된다
허병민 지음 / 비즈니스맵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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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안에 너 있다.’는 남자주인공의 달콤한 대사가 젊은이들의 감성을 폭풍처럼 흔들었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런 내 안에 나는 있었을까요? 드라마 스토리를 보면 내 안에서 너와 내가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좋을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연인들의 달콤쌉싸름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 안에 너를 들이기 전에 우선 내 안에 내가 있도록 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할 것 같습니다. <1년만 버텨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008311>를 통하여 고단한 직장에서 혹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치게 해주었던 허병민님께서 1년만에 또 다른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메이드 인 미>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따로 설명하지 않았으니 독자들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만들어진 OOOO> 저자께서 “My dream is to become ME!"라고 적어주신 것으로 보아서는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것’ 즉 ‘내 안에 나를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덤처럼 사는 세상살이가 아니겠느냐는 서글픈 인생을 노래한 것인데, 인생을 덤처럼 사는 것도 길이겠으나 세상에 뚝 떨어졌으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가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아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우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를 세상에 알리려면 나를 정확하게 알는 일이 우선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

 

지난 한해동안 나름대로는 공을 들여왔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들었던 마음은 내가 아직도 부족한데가 많구나, 부족한 나를 부탁한 것이 송구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몰라주는구나. 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메이드 인 미>의 말미에 있는 ‘기브 앤 테이크는 옳다’편에 담은 저자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이타적 개인주의’라는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이고 있습니다만, “기브 앤 테이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를 기본으로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이익, 욕망, 욕구, 감정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다.(225쪽)”는 설명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버려야 보인다’, ‘알아야 찾는다’, ‘미쳐야 미친다’ 그리고 ‘넣어야 나오고, 주어야 받는다’는 네가지 공식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전작을 통하여 느낀 것처럼 구어체로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어 단숨에 읽고 깨치게 됩니다. 한꼭지의 이야기가 끝나면 영어교과서처럼 ‘lesson’에 요약해 둔 것도 실용적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멘토와의 커피 한 잔’이라는 부분입니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으로부터 시작하여 <기술의 충격; http://blog.joinsmsn.com/yang412/12284839>을 통하여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케빈 켈리  등 모두 7명의 우리시대의 리더들의 생각을 정리한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사전에 준비한 질문에 응답을 해온 멘토들의 답변을 요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멘토들에게 공통으로 던진 질문도 일부 있지만 멘토의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질문을 던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멘토들 역시 다양한 답변을 주고 있으며, 답변들 가운데 독자에 따라서는 동의할 수 없는 답도 있을 것입니다. 질문으로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게 ‘성공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일을 추진하면서 일부러 실패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실패를 가져올 수도 있는 다양한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고, 실패했다고 해서 대책없이 폐기하는 것보다는 실패한 상황을 꼼꼼히 분석하여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로그(Rogue)는 자신과 접촉하는 상대방의 재능가 힘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초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최근 끊임없이 정보와 노하우를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젊은 세대를 로그세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젊은이들을 로그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오히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상황에 따라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에게 ‘자신을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세요’라는 부제를 단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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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술관 산책 - 오전에 떠나서 오후에 즐기는 미술관 산책 시리즈
장윤선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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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가끔 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일정을 학회 기간에 맞추기 때문에 빠듯하기는 합니다만,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 생긴 자투리 시간, 혹은 관심있는 주제가 빠져있는 시간에 방문지에서 놓치면 아쉬울만한 곳을 골라보기 마련입니다. 제 경우 역사적 유물, 미술관, 박물관 등은 꼭 찾아보려하고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7664069).

 

그렇다고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예술품에 대한 허영심을 채우거나 혹은 그곳까지 가서 꼭 보아야 할 구경거리를 놓쳤느냐는 핀잔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릅니다. 보통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리 챙기기도 합니다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현지에서 수소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인 이번 동경방문길에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을 미리 읽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자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꼭 누려야 할 눈의 즐거움!”이라는 홍보카피는 분명 저보다는 한 수 높은 미술품감상의 눈을 가진 여행객에게나 어울릴 법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저 같은 얼충이 미술관 방문객도 좋은 공부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홍보카피를 조금 더 인용해보면, “아침에 비행기를 타면 점심에는 구경할 수 있는 이웃 도시 도쿄, 그곳의 박물관, 미술관, 문화공간에서 유구한 전통의 멋과 최첨단 예술 트렌드를 함께 만끽하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음 날 학회일정과 비행기편을 맞추다 보니 한나절의 시간여유가 생긴 제 경우를 두고 적은 글 같습니다.

 

<도쿄 미술관 산책>은 장윤선님의 독특한 기획의도가 담겨있습니다. 흔히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장윤선님은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챙겨 읽을거리로 만들다보니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따라 감상대상을 넓혀보는 즐거움 또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립서양미술관을 입장하면서 만나는 2층에 이르는 경사로라던가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는 계단과 그 아래 휴식공간, 조명시설 등은 저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가 미술관을 설계했다던가 상설전의 작품들이 주식회사 가와사키의 초대사장 마쓰카타 고지로의 컬렉션으로 구성된다는 것, 마쓰카타가 이들 작품을 손에 넣게 된 과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동경에 산재한 문화공간을 우에노, 록폰기, 아오야마 그리고 그 외 지역으로 크게 나누어 정리한 책에서 이번 방문길에는 우에노지역을 챙겨보기로 한 것입니다. 일본어라고는 필요한 단어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영어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던 일본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변하고 있는 듯해서, 세 번의 방문길에 전철타기를 어깨너머로 배운 탓인지 홀로 나서는 구경길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작정 숙소를 나서 전철을 타고 우에노역에 도착했습니다. 출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서 우에노공원에 들어서니 공원 안내도가 반깁니다. 코스를 계산해서 전철역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도쿄예술대학 미술관부터 시작해서 도쿄 국립박물관을 거쳐 국립서양미술관까지 보기로 하였습니다. 예술대학 미술관으로 가다보니 동경도 미술관은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아예 폐관하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도쿄예술대학의 미술관에서는 마침 졸업생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작품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내부에 설치된 회화작품과 설치예술품의 경우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인의 설명이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예술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 탓일까요? 심지어는 미술관의 독특한 모습의 나선형 계단이나, 로뎅의 <청동시대>가 정원에 설치된 예술대학 아트플라자에서 팔고 있는 공예품의 경우도 사진촬영이 안된다는 직원의 굳은 표정에서 ‘너무한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표시해둔 촬영이 금지된 전시물을 제외하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은 촬영이 가능한 국립박물관과 서양미술관의 경우와 비교된다고 하겠습니다.

 

국립박물관은 일본의 민속유물들을 볼 수 있고, 연결되는 헤이세이관에서는 일본에서 출토되었다는 석기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의 구석기유물이라는 표지에 ‘정말?’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시물 가운데 유독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곳은 꽤 넓은 공간을 내어 전시된 도검류들이었습니다. 날카롭게 별러진 일본도가 분해된 채로 혹은 칼집에 넣어진 채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방에서는 공연히 서늘한 느낌에 등골에서 한기가 흘러내리는 느낌이어서 갑옷들이 전시된 곳에서 받은 충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문화에서 ‘칼’이 차지하는 부분이 여전히 작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효케이관과 동양관은 보수 등을 이유로 휴관 중이었던 탓에 아픈 다리와 시간에 쫓겨 서양미술관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에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호류우지 국보관에서는 주로 절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으로부터 부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물보다는 건물의 중정에 해당하는 공간에 설치된 널따랗고 얕은 연못(?)을 통로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구조가 신기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일본의 민속화가 우리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불상들은 우리네 박물관에서 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설마 이 유물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들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장품에 대하여 시시콜콜한 설명을 생략한 것은 미술품에 대한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배려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만난 로댕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하겠습니다. 제 기억에 로댕의 조각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미국 동부에 있는 로댕미술관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생각하는 사람>, <지옥문> 등을 구경하고 뿌듯한 마음에서 슬라이드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귀국한 다음 어느 학술모임에서 자랑스럽게(?) 이 작품을 보았다고 소개했는데, 다른 장소에서 같은 작품을 감상했다는 분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조각가가 같은 작품을 여럿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로댕의 조각작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쓰카타 컬렉션을 보면서는 시카고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적의 느낌, 즉 예술적 허영심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쿠르베의 <파도>는 금방 액자에서 넘쳐 마루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고, <덫에 걸린 여우>를 보면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고통받고 있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캠페인에 참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친숙한 모네의 <수련>, 피카소의 <남과 여> 루벤스의 <잠자는 두 어린이> 등등은 한나절에 돌아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르세미술관은 아직 방문하지 못했습니다만, 색조의 대비가 뚜렷하고 선이 단순한 중세기독교예술작품으로부터 근세 인상파화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소장미술품들이 시카고미술관이나 필라델피아미술관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고 년 전에 방문한 부다페스트 미술관(http://blog.joinsmsn.com/yang412/11875812)보다는 풍부하지 않나 싶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여행길에 낸 짬이라서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예대에서 구로다 세이키 기념관을 놓치고, 우에노 지역만 하더라도 국제어린이 도서관(공원 안내도에서 보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동경미술관, 옛 이와사키 저택 정원 등은 찾아가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롯폰기, 아오야마는 물론 기타지역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합니다. 그러니 다음 번 방문길에서도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이 함께 할 것입니다.

 

저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이 일본 문화를 대변하는 유일한 곳이라 강변할 생각은 없다고 하였지만, 역사적 유물과 예술, 문화시설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큰 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까이 있어 방문기회가 많은 일본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서 <도쿄 미술관 산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는 말씀과 함께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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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2-0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3849
 
언니, 엄마 어울누리 다문화사회 어린이 생활동화 1
임선일 지음, 임다연 그림 / 이담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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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읽던 동화책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시나브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임선일박사의 첫 번째 동화 <언니, 엄마>를 읽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옛 기억을 일깨워주는 기회도 되고, 어느새 우리 사회에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계시다 보니 늘어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을 많이 경험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일이 더 많이 눈에 띄는 법입니다. 저자께서 다문화가정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읽을거리,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바로 이담북스에서 내놓은 <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13354>을 읽고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가 준비할 것을 공부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언니, 엄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농촌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가 딸을 위하여 재혼을 결심하면서도 필리핀에서 신부를 맞어야 하는 상황을 딸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가슴이 울립니다. 아버지를 잘 이해하는 딸이지만 우리와 모습도 다르고 나이도 많지 않은 새엄마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온 젊은 새엄마는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동화는 처음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잘 쓰여져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외국에서 온 분들이 모두 줄리씨처럼 활달하고 우리네 사회에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의 사례도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아들이 필리핀에서 나타나 당혹해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받아들이기까지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아버지가 보이는 반응이 굳이 필리핀에서 온 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으로 아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된 어머니가 헤어진 아버지에게 보낸 것인데, 재혼을 앞두고 들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헤어진 어머니를 떠올리는 아들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학교행사는 어머니가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아버지가 가면 쑥스러워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진이도 아빠가 학교에 오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외국에서 온 새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지원체계가 갖춰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시골학교에서 영어회화교육을 맡게 된 줄리씨처럼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이들과 함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임선일박사의 동화 <언니, 엄마>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따님이 그린 삽화도 예쁜 이야기를 한층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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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그린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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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소개하는 책은 타이먼 스크리치교수의 <에도의 몸을 열다>입니다. ‘몸을 열다’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도의 몸을 열다>라고 대상이 구체화되면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본 18세기의 일본’이라는 부제를 보면 난학과 해부학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하는구나’ 정도로 좁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여는’ 주체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여는 힘이 안으로부터 작용하는지, 혹은 밖으로부터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반응의 크기도 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고, 에도가 난학을 수용하면서 에도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오늘의 일본이 가능하게 된 전환점이 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겠다고 미루어 짐작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내부에서 평가하는 것과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다싶은데, <에도의 몸을 열다>는 18세기에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타이먼 스크리치교수라는 영국인의 눈으로 에도문명이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는지 살피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13세기 경기병을 앞세운 몽고제국의 유럽침략은 유럽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송을 거쳐 금-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문명의 발전은 눈부신바 있어 암흑기라 부르던 유럽문명을 앞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문명은 유럽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는 부침이 있기 마련, 유럽이 르네상스운동을 통하여 대두된 인문주의의 확산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이번에는 동아시아문명이 침체기에 들어섰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저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풍부한 미술작품을 인용하여 18세기 당시의 에도사회가 서양문명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근대에 이를 때까지 외국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지 않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럽 열강과 당시 부상하던 미국이 아시아항로를 개척하여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일본을 개방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요구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 3국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중국과 우리나라는 적극 수용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일본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을 버리기까지 하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에도의 몸을 열다>를 통하여 그 윤곽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칼’을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근대미술에 등장하는 칼, 특히 정물과 해부학실습에 관한 그림에 등장하는 칼에 담긴 의미와 일본의 전통 사무라이문화에 등장하는 칼의 의미를 좇아 일본이 난의학, 특히 외과영역의 서양의학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사유로서는 사물을 전체로 조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 문화에서는 닫힌 사물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에 내부를 열어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역시 전국시대까지는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다음 내린 무기몰수령 이후 사무라이계급의 ‘칼’은 상징적인 존재로 무력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네덜란드의 문물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칼과 가위와 같은 날붙이들에 대한 문화적 공감이 가능했던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의학, 특히 칼을 매개로 하는 해부학, 외과학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미 18세기 초반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외과도구들이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1800년에는 니시구라쿠(西苦樂)가 <난의 두부외과수술도(蘭醫 頭部外科手術圖)>를 그렸다고 하니 서양의학의 외과수술법이 일본에는 크게 거부감을 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동아시아국가들의 전통의학 영역에서는 해부나 외과수술에서 주로 하는 신체를 절개하는 행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시각에서 서양의학의 해부학이나 외과수술은 경이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난의학을 행하는 자들에게 해부학 지식은 필수사항이었던 관계로 유럽해부학교과서를 저본으로 하여 <해체신서>가 출간된 것은 1774년이었지만, 일본전통의학에서는 신체를 절개하는 시술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난의학에 관심을 많은 일부의 호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체신서의 저자가 강조한 다음 글을 보면 현재의 의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의학에서의 해부학의 중요성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겠습니다. “해부학 책은 도보(圖譜)를 비교해 보며 읽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각 조목에 반드시 그림이 있다. 또 부인(符印)을 적어서 관람하는 데 편리하게 했다. 독자는 적절하게 서로 비교해 보는 데 소홀함이 없게 하라.(169쪽)”


결국은 외과시술을 통하여 극적인 치료효과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부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럽사회에서도 사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던 시절이 있어 의사들이 해부를 위한 사체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비상식적 행위까지도 불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멜라키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사람의 무늬 펴냄) 일본 역시 사체해부는 주로 사형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사체해부는 역시 중국에서도 드물게 이루어졌 것으로 차이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해부결과를 기록한 그림이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집권층이 일본의 전통의학을 폐하고 서양의학을 나라의 주류의학체계로 세우게 된 배경을 생략하고 있습니다만, 서양의학에 일본에서만 적극적으로 수용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양의학이 유독 일본에만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북경에는 서양문명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북경에 왕래가 잦았던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서양의학에 관심을 두었을 법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을 터입니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실학자들이 남긴 서양의학에 대한 기록이 이를 증거한다 하겠습니다. 서양의학의 생리학, 혈액, 호흡, 신경계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전염병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헌길의 〈마진방 麻疹方〉이나 정약용의 <마과회통 麻科會通> 등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과회통〉에는 천연두 치료를 위한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실학자들 대부분이 권력과 거리가 있는 남인세력이었던 까닭으로 국가정책으로 적극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란과 호란으로 어수선한 국내상황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 못하였던데다가 1621년 허준에 의하여 <동의보감 東醫寶鑑>이 완성된 것이 전통의학에 대한 의존을 키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네덜란드 의학이 에도시대에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 지리학 그리고 여행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에도시대의 문화를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설을 인용하여 심장과 동정맥에 대한 해부도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혈액이 지장없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신체 내의 모든 동맥, 정맥이 깨끗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통일 상태를 유지하려면 모든 길이 자유자재로 통해야 한다. 일본에는 오랜 전통이 있어서 지도는 정치적 분할 뿐 아니라 주요한 길도 나타냈다(뜻밖으로 서양지도는 그렇지 않았다.(300쪽)”


저자의 맺음말에서 그가 이 책을 통하여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도보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이 자신의 저편으로 빠져나가 있던 알지 못하는 역사를 다루려 한다. (…) 그리하여 해부라는 수사학이 의학에서 나아가 더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끼친 양상을 그리려는 바가 이 책의 요점이다.(356쪽)” 즉 고대 철학자들이 인체를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라 하여 신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마크로코스모스와 대칭점에 두었던 것처럼 인간의 신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자리매김하여 더 넓은 외부세계를 축약해서 자신에게 재현한다는 유럽의 초기해부학자들의 발상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꽤 오래 전에 정부조직에서 일하고 있을 적에 느꼈던 점입니다. 조직 간의 경쟁이 지나치고 조직 간의 소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의학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신체의 각 기관이 각각 맡은 역할을 효율적으로 함으로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즉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체의 항상성에 문제가 생겨 질환이 발생하면 적절한 약을 투여하거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 의학입니다. 즉, 의학은 작은 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관리하는 기본철학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의학, 의학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주(1)

해체신서[解體新書(かいたいしんしょ)]

일본 에도시대에 번역 소개된 해부학교과서입니다.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Ontleedkundige Tafelen》을 저본으로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이 중심이 되어 중역한 것입니다. 중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과 설(設)은 전부 해체에 관한 화란의 여러 책을 비교연구하여 가장 명료한 것을 채택하고 이를 베껴서 손쉽게 정통하게 한 것(169쪽)”이라 설명한 것으로 보아 타펠 해부학을 근간으로 하여 다른 해부학책에 소개된 내용을 뽑아 편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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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3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3710
 

 

지난해 10월부터 보건의료분야의 인터넷매체 라포르시안에 매주 북리뷰를 올리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리뷰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께 해당 도서를 보내드린 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리뷰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라포르시안에서는 이벤트의 규모와 방식을 다소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라포르사안에 올린 북리뷰에 대한 의견을 SNS를 통하여 알리는 5분에게 해당 도서를 보내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리뷰의 필자 입장에서 냉정한 지적을 더 환영한다는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족한 리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써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라포르시안에 기고하는 북리뷰를 이곳 블로그 커뮤니티에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리뷰의 덧글에 남긴 라포르시안의 북리뷰 포스팅주소를 클릭하셔서 방문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라포르시안으로 직접 찾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라포르시안의 홈페이지<http://www.rapportian.com/>를 방문하시면 오른쪽에서 [양기화의 북소리] 난에 최근에 올린 리뷰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 주에 소개하는 책의 리뷰를 찾아서 클릭하신 다음에 트위터나 레이스북 등을 통하여 소개하시고 그 내용을 라포르시안에 메일로 통보하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기화의 Book소리'에 트위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평에 관한 소셜댓글을 남겨주시면 매주 5분을 추첨해 해당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댓글을 남긴 후 메일(bus19@rapportian.com)로 주소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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