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명동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서점인 명동서점이 문을 닫았더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명동에서 누군가 만날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남았을 때 새로 나온 책도 구경하고,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책을 손에 넣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아내와 인연이 엮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만 해도 새로 나온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릇처럼 서점에 들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야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통하여 얼마든지 새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도 서점보다는 인터넷이 편리하다는 생각이 굳어진 탓에 서점에 나가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또한 대형화된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힘들어진 탓에 하나 둘 문을 닫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아직도 동네서점이 두어 곳 남아 있습니다만, 참고서의 판매에 의존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지난 달에 학회참석차 동경에 갔을 적에 거리에서 새롭게 느낀 점은 조그만 서점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점에 따라서는 DVD나 성인용 만화를 주로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만, 학술서적을 파는 조그만 가게에서부터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 보이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점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새 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인기몰이를 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가지 인터넷에서는 책 내용의 일부라도 직접 읽어보고 선택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서가에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살피다가 눈길이 가는 책을 뽑아서 목차와 머리말을 읽고 다음에는 본문을 조금 읽다보면 흥미가 일어 책을 사게 되는 아날로그적인 추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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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두 차례,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세 차례 수상하였고,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로알드 달을 처음 만났다니 저의 편협한 책고르기 탓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와인을 만든 농장과 년도를 맞추는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맛’을 포함하여 로알드 달의 대표적 단편소설 열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책을 읽은 다음 떠올린 느낌은 최근에 읽은 칼럼니스트 김상득님의 <슈슈>가 떠올랐습니다. 소설을 읽고 그의 칼럼이 생각났다는게 꽤나 생뚱맞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칼럼집의 리뷰를 적으면서 칼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등장하는 결정적 한방, 즉 글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 줄의 ‘극적인 반전’을 쓰기 위하여 필자는 아마도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을 쥐어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입니다.

 

<맛>에 실린 열편의 단편은 모두 이야기의 결말이 극적인 반전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김상득님의 칼럼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김상득님의 칼럼은 웃음을 담고 있는 반면, 달의 단편은 대부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와인이 생산된 년도와 농장을 맞추는 내기가 진행되는 단편 <맛>의 결말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그리 권장할만한 인간의 한 부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맛>에서 소믈리에를 빰친다는 미식가 리처드 프랏은 마이크 스코필드가 내놓은 와인을 만든 농장의 이름을 맞추는 내기에 마이크의 딸과의 결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내기를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선의를 가진 사람을 속이는 짓을 업으로 삼는 인간의 부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 점은 첫 작품 <목사의 기쁨>에서도 읽히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거꾸로 선량한 사람을 속이려는 자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진실을 밝혀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더라면 모두가 행복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하늘로 가는 길>, <피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경우는 등장인물이 뚜렷한 이유없이 간계에 의하여 죽음을 맞고 죽인 자는 마치 완전범죄에 성공한 것처럼 마무리되고 있어 사법당국이 이토록 허술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라고 시작하는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의 결말은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을 읽을 수 있었는데, 정말 미국이 여자에게 기회의 땅인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미 여자들이 국부의 85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혼은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처리하기도 간단하고 쉽게 잊을 수 있다. 야망이 큰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자주 그 일을 되풀이하여 수입을 천문학적 숫자로 부풀릴 수 있다. 남편의 죽음 역시 만족스러운 보답을 안겨주기 때문에, 어떤 여자들은 이 방법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185쪽)” 정말 미국 남자들은 여자들의 봉일까요? 여기 등장하는 닥터 빅스비처럼 외도를 하는 남편은 별로 없을까요?

 

열편의 단편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지만, 대표작 <찰리와 초콜릿공장> 등으로 구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평판을 듣는 동화작가가 썼을까 싶을 정도로 통속적이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는 여운이 남아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고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성격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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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버린 천재음악가 정추
구해우.송홍근 지음 / 시대정신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챠이코프스키의 4세대 제자 정추를 아십니까? 챠이코스프키의 작품은 익히 알아도 그의 음악적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나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솔직하게 말씀드려 처음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남북으로 나뉘어 지낸 탓인지 특히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북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반도를 떠나는 분들은 국내에 머물고 계셨던 분들과 비교하여 대체적으로 뜨거운 조국사랑을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식자층에 속한다는 분들 사이에는 사회주의에 내세우는 비전에 매혹되었던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는 해방후 북한에 사회주의국가가 들어선다고 해서 월북하여 새로운 세상만들기에 적극 참여하였지만, 북한에 들어선 정권의 실체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체제비판에 나섰거나 아니면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숙청되어 발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문제 전문가 구해우교수님과 송홍근기자님이 발굴하여 소개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버렸다는 음악가 정추는 남한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작가들이 전하는 정추는 광주에서 태어나 예술적 성향이 풍부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일찍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예술을 공부하였던 형님이 해방후 북한 정권의 요청으로 월북하게 되었는데, 평소 아끼던 동생 정추를 평양으로 불러 영화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북한 정권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면서 음악공부를 더 하겠다는 이유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챠이코스프키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졸업할 때 작곡한 작품이 심사교수들로부터 만점을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들어선 후르시쵸프에 의하여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사회주의자 정추는 독재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독재정치를 펼치는 김일성을 배척하는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으로 소환될 위기에 몰린 정추를 당시 북한과 미묘한 관계에 있던 소련이 정추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자흐스탄은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스탈린의 소개정책에 따라서 강제이주되어, 정착과정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추는 이곳에 정착하여 고려인 사이에 전해오는 전통민요를 채록하여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가슴속에 뜨겁게 자리잡고 있는 조국애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 전념하여 소련 음악계가 인정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추를 윤이상과 비교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윤이상은 남한이 버린 음악가라고들 합니다. 경남 통영출신의 작곡가 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남한에 돌아올 수 없게 된 다음 북한에 경도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동백림사건에 적극 간여하였다면 그 전에 이미 스스로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그녀의 남편 오길남씨의 북한행 등 남한쪽 사람들을 포섭하여 북으로 보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추는 1990년대 초에 구국전선을 만들어 북한의 민주화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윤이상을 변절자라고 잘라 말하면서, 카자흐스탕의 윤이상이라는 표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윤이상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민주투사로만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북한 조직에 깊숙이 개입돼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북한 또한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어떻게 북한을 두둔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북한체제를 반대한 망명자이고 윤이상은 남한체제를 반대하고 사이비 사회주의 독재국가를 찬양한 사람입니다. 저를 그와 비교하지 말아주십시오.(166쪽)”

 

저자들은 알마티를 찾아 정추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정추가 살아온 삶의 족적을 찾아보고 그가 살아온 격동의 시대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요약하여 읽는 사람의 이해를 쉽게 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정추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의 힘으로 정추의 절절한 조국사랑이 담긴 ‘조국’,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내조국’ 등이 서울과 평양의 무대에서 연주될 그날을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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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직관 - 유행의 탄생에서 열강의 몰락까지 미래를 예측하는 힘
존 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황상민 해제 / 반비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는 가운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임금의 사랑을 그리고 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물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 관상감과 성수청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상감은 천문, 지리, 명과학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천문을 담당하는 관원들은 기후 관측과 책력제작을, 지리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풍수지리학을 토대로 왕궁·왕릉 등의 터를 잡는 일을, 명과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길흉화복을 점쳐 왕실의 합궁일이나 길일·태일을 정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수청은 조선 전기에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비는 굿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관상감이 성수청에서 할 일까지 넘나드는 것 아닌가 싶은 장면도 있었지만, 왕조에서 이러한 부서를 두었던 것은 결국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양에서도 별점 혹은 유리구술점을 치는 점술가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 일을 알고 싶은 것은 동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점술가나 우리의 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못한 것은 아마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개인의 미래를 미리 예측하는 일은 어렵다 쳐도 한 나라, 혹은 사회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일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밀한 값을 갖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값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의 원리도 정규분포곡선과 일반적인 통계값으로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면, 사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현상의 미래 역시 예측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존 캐스티 박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한 미래탐구학회 케노스 서클(Kenos circle)에서는 복잡성 과학을 적용해 기존의 통계적 방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데, 캐스티 박사가 쓴 <대중의 직관>을 통하여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록에서도 요약소개하고 있는 주가변동에 관한 엘리엇파동이론을 통하여 “어느 인구집단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사건의 유형을 결정한다”는 것을 핵심이론으로 하는 로버트 프렉터의 사회경제학의 논리를 통해서 미래예측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프렉터가 제안한 사회적 인과성의 사회경제학적 가설은 “사회분위기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사회분위기의 동향과 범위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행동을 포함한 사회적 행동의 특징을 결정짓는다. 달리 말하면,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사회분위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를 이루려는 인간의 충동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인데, 최근 우리 사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국내외 사회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정 시기에 어떤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이는 그 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며 고대한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사회적 분위기가 부정적인 경우 집단은 미래를 비관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형태 사이에는 당연히 분위기가 전환되는 이행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긍정적 분위기와 부정적 분위기라고 하는 회색지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는 ‘상승하는 긍정적 분위기’, ‘최고조에 달한 긍정적인 분위기’, ‘쇠퇴하는 부정적 분위기’, ‘바닥을 친 부정적인 분위기’의 네 가지 단계가 파동처럼 순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학에서는 도미니크 모이지가 <감정의 지정학>에서 다룬 희망, 두려움, 수치라는 세 가지 사회적 분위기에서 단서를 얻어 상승분위기를 ‘희망’으로, 최고조의 분위기는 ‘오만’으로, 쇠퇴하는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바닥을 친 분위기는 ‘절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자는 2001년 가을 일어난 엔론사의 파산을 비롯하여 과거의 대형 국제전쟁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지표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이라는 우연이론가의 주장에 대하여, 알자스 로렌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유럽의 동맹체제, 발칸지역을 지배하려는 오스트리아의 야심, 심지어는 군수품 제조업자들과 국제은행가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미 전쟁의 위기가 차곡차곡 쌓아갔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점에 주목한 것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도발이 남북한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저자는 지각의 판구조론으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각을 나누고 있는 몇 개의 판이 서로 부딪히면서 생기는 지진을 관찰해보면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응력을 덜어주는 조그만 떨림마저도 중단되는 알파국면이라고 부르는 침묵의 시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그만 충격이 수없이 발생하는 베타국면이 시작되고 마침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판끼리의 부딪힘이 적절한 빈도로 일어나 응력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다 보면 결국은 대형 지진이 일어나 쌓였던 응력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국가 간의 갈등 역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6.25남침전쟁처럼 은밀한 가운데 전쟁준비를 진행해 오다가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해야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치국면을 긴장으로 몰고 가는 도발을 반복하면 반대편에서는 수비태세를 강화하여 대응력을 높이게 됨으로, 막상 전면전으로 발전하였을 때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적 흐름을 고찰한 열강의 몰락의 예를 들어, 유행의 탄생으로부터 몰락까지 부침이 심한 영화, 음악, 스포츠, 패션과 같은 문화는 물론, 한 국가의 통치세력의 변화와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국내외의 정치적 위기에서 경기의 순환과 같은 경제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분위기를 분석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기도 찜찜할 수도 있는 사례는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착공하였다면 그 나라의 주식시장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라는 마천루지수입니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 건설, 대만의 타이페이101 건설, 두바이의 부르즈 두바이 건설을 전후하여 해당국가의 증시지수를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롯데월드타워123가 2009년에 착공되어 2015년에 완공예정에 있다는 저자의 인용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대선의 향방에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정치동향은 주식시장의 회전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즉 투자자들은 후보의 성향에 따라서 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거나 하락할 것을 점칠 수 있다는 것인데, 정권의 정책방향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꾸로 시장의 동향으로 정권의 향배를 판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식시장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동향은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한 인구집단이 미래를 낙관하는 긍정적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경우 현직대통령이 유리하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단임제의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을 계기로 하여 가속되던 부정적 사회분위기가 참여정부 시절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의료계로서는 언제까지나 절망할 수밖에 없던 사회분위기가 다소 상승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는 판단이 들만도 한데, 사회나 정책당국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은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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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3-05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4423
 
최강의 자기분석 - 당신의 천직을 찾아주는
우메다 사치코 지음, 박주영 옮김 / 알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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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할 수 있지만 지루하게 느껴진 적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부탁받거나 칭찬을 듣지만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까?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는 것이 기쁘지만 일하는 것 그 자체로는 설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섯 곳의 직장에서 일을 해오면서 아무래도 역마살이 센 탓이겠거니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냉정한 상황분석보다는 다분히 감성적 판단이 진로결정에 크게 작용했던 것이었지만,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입영시기와 관련한 결정이 인생의 항로를 크게 비틀어서 결국은 여러 차례 이직하게 되는 요인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진로를 결정할 때는 평생 대학에서 진료와 교육을 하면서 지낼 것으로 믿었던 것인데 역시 사람사는 일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의 유명한 커리어 컨설턴트 우메다 사치코대표의 저서 <최강의 자기분석>을 읽게 되면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진로결정에 크게 도움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던 일본에서도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는 느낌도 얻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을 선택할 때, 혹은 직장을 옮기려 할 때 고려할 점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해놓고서 첫 번째 이직을 할 때 생각이 났습니다. 승진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후배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상황이 스스로도 힘들었고, 후배들에게도 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직을 결심한 것인데, 원인을 제공했던 분들은 이직마저도 훼방을 놓은 정황을 알게 되었을 때 참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조언을 주셨던 선배님께서는 이직이 긍정적인 이유와 부정적인 이유를 각각 10개 정도 도출하고서 무게를 달아보라 하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결국은 이직하는 쪽으로 결정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메다 사치코대표는 커리어 컨설턴트답게 자신의 장점을 살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고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업무분석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사분표를 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하는 일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로 각각 4분면을 만들어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자기분석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장에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길을, 2장에서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자기분석법을, 3장에서는 일에서 살릴 수 있는 나만의 강점을 찾는 자기분석법을, 4장에서는 잘하지 못해서 참을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는 자기분석법을,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르는 방법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확대해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을 고르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관심이 별로 없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가 졸업하고 처음 전공을 택할 때 범했던 실수가 바로 즐거움의 확대해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능력이나 기술보다는 특성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능력이나 기술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향상시킬 여지가 있는 부분이나 개인의 특성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저자가 적어놓은 질문을 옮겨보겠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으면 하는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후회없는 삶을 살았는가?”하는 질문은 이따금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은 있습니다만, 삶을 마감했을 때 내가 아닌 3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생각해본 적은 솔직하게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그는 언제나 누구라도 자기 자리에서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지”라는 말을 듣고 싶노라고 했다고 하는데, 한 명이라도 그와 같은 애도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헛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1년만 버티면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008311). 하지만 저자는 “억지로 버티지 마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업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결국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하여 필요하면 이직도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최강의 자기분석>에 담아내게 되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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