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버린 천재음악가 정추
구해우.송홍근 지음 / 시대정신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챠이코프스키의 4세대 제자 정추를 아십니까? 챠이코스프키의 작품은 익히 알아도 그의 음악적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나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솔직하게 말씀드려 처음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남북으로 나뉘어 지낸 탓인지 특히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북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반도를 떠나는 분들은 국내에 머물고 계셨던 분들과 비교하여 대체적으로 뜨거운 조국사랑을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식자층에 속한다는 분들 사이에는 사회주의에 내세우는 비전에 매혹되었던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는 해방후 북한에 사회주의국가가 들어선다고 해서 월북하여 새로운 세상만들기에 적극 참여하였지만, 북한에 들어선 정권의 실체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체제비판에 나섰거나 아니면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숙청되어 발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문제 전문가 구해우교수님과 송홍근기자님이 발굴하여 소개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버렸다는 음악가 정추는 남한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작가들이 전하는 정추는 광주에서 태어나 예술적 성향이 풍부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일찍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예술을 공부하였던 형님이 해방후 북한 정권의 요청으로 월북하게 되었는데, 평소 아끼던 동생 정추를 평양으로 불러 영화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북한 정권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면서 음악공부를 더 하겠다는 이유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챠이코스프키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졸업할 때 작곡한 작품이 심사교수들로부터 만점을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들어선 후르시쵸프에 의하여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사회주의자 정추는 독재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독재정치를 펼치는 김일성을 배척하는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으로 소환될 위기에 몰린 정추를 당시 북한과 미묘한 관계에 있던 소련이 정추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자흐스탄은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스탈린의 소개정책에 따라서 강제이주되어, 정착과정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추는 이곳에 정착하여 고려인 사이에 전해오는 전통민요를 채록하여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가슴속에 뜨겁게 자리잡고 있는 조국애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일에 전념하여 소련 음악계가 인정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추를 윤이상과 비교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윤이상은 남한이 버린 음악가라고들 합니다. 경남 통영출신의 작곡가 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남한에 돌아올 수 없게 된 다음 북한에 경도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동백림사건에 적극 간여하였다면 그 전에 이미 스스로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그녀의 남편 오길남씨의 북한행 등 남한쪽 사람들을 포섭하여 북으로 보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추는 1990년대 초에 구국전선을 만들어 북한의 민주화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윤이상을 변절자라고 잘라 말하면서, 카자흐스탕의 윤이상이라는 표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윤이상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민주투사로만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북한 조직에 깊숙이 개입돼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북한 또한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어떻게 북한을 두둔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북한체제를 반대한 망명자이고 윤이상은 남한체제를 반대하고 사이비 사회주의 독재국가를 찬양한 사람입니다. 저를 그와 비교하지 말아주십시오.(166쪽)”

 

저자들은 알마티를 찾아 정추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정추가 살아온 삶의 족적을 찾아보고 그가 살아온 격동의 시대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요약하여 읽는 사람의 이해를 쉽게 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정추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의 힘으로 정추의 절절한 조국사랑이 담긴 ‘조국’,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내조국’ 등이 서울과 평양의 무대에서 연주될 그날을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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