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두 차례,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세 차례 수상하였고,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로알드 달을 처음 만났다니 저의 편협한 책고르기 탓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와인을 만든 농장과 년도를 맞추는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맛’을 포함하여 로알드 달의 대표적 단편소설 열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책을 읽은 다음 떠올린 느낌은 최근에 읽은 칼럼니스트 김상득님의 <슈슈>가 떠올랐습니다. 소설을 읽고 그의 칼럼이 생각났다는게 꽤나 생뚱맞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칼럼집의 리뷰를 적으면서 칼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등장하는 결정적 한방, 즉 글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 줄의 ‘극적인 반전’을 쓰기 위하여 필자는 아마도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생각을 쥐어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입니다.

 

<맛>에 실린 열편의 단편은 모두 이야기의 결말이 극적인 반전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김상득님의 칼럼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김상득님의 칼럼은 웃음을 담고 있는 반면, 달의 단편은 대부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와인이 생산된 년도와 농장을 맞추는 내기가 진행되는 단편 <맛>의 결말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그리 권장할만한 인간의 한 부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맛>에서 소믈리에를 빰친다는 미식가 리처드 프랏은 마이크 스코필드가 내놓은 와인을 만든 농장의 이름을 맞추는 내기에 마이크의 딸과의 결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내기를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선의를 가진 사람을 속이는 짓을 업으로 삼는 인간의 부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 점은 첫 작품 <목사의 기쁨>에서도 읽히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거꾸로 선량한 사람을 속이려는 자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진실을 밝혀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더라면 모두가 행복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하늘로 가는 길>, <피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경우는 등장인물이 뚜렷한 이유없이 간계에 의하여 죽음을 맞고 죽인 자는 마치 완전범죄에 성공한 것처럼 마무리되고 있어 사법당국이 이토록 허술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라고 시작하는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의 결말은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을 읽을 수 있었는데, 정말 미국이 여자에게 기회의 땅인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미 여자들이 국부의 85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혼은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처리하기도 간단하고 쉽게 잊을 수 있다. 야망이 큰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자주 그 일을 되풀이하여 수입을 천문학적 숫자로 부풀릴 수 있다. 남편의 죽음 역시 만족스러운 보답을 안겨주기 때문에, 어떤 여자들은 이 방법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185쪽)” 정말 미국 남자들은 여자들의 봉일까요? 여기 등장하는 닥터 빅스비처럼 외도를 하는 남편은 별로 없을까요?

 

열편의 단편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지만, 대표작 <찰리와 초콜릿공장> 등으로 구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평판을 듣는 동화작가가 썼을까 싶을 정도로 통속적이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는 여운이 남아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고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성격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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