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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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보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 혹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서 본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낭만적인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과 반면 미국 흑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붙잡혀 끌려온 땅 혹은 슈바이처박사가 인술을 베풀었던 곳, 그래서 개발되어 있지 않고 주민들이 기아에 고통받는 저주의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단편적으로 교차하곤 합니다. 특히 언론을 통하여 지루하게 전해지는 내란에 관한 뉴스에다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에 이어 최근 들어 늘고 있는 봉사단체들의 활동모습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현생인류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아직 가볼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도 신문기사나 간혹 대하는 여행기 등 단편적인 것이라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올려다보이는 동전잎만한 하늘이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는 버릇이 굳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물밖 세상에 관심이 없는 탓인지 우물밖 세상을 소개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가 우리 사회와 얽힌 이해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텍스트는 별로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북위 10에 걸쳐있는 지역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을 분석하고 있는 <위도 10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4128>와 같이 아프리카 문제를 깊이 파헤치는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윤상욱 참사관님께서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다루는 책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주재국 관련 외교업무에만 머물지 않고 주재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신데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저자가 서양사를 전공한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흔히 생각하기 쉬운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9쪽)”이 저자의 주 관심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루시(Lucy)의 발견으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시작한 땅으로 믿어지고 있는 곳 아프리카는 세계사가 시작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용두사미 그 자체다.(35쪽5)”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4대문명지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 문명도 아프리카땅을 흐르는 나일강변에서 꽃피웠던 것인데, 그저 나일강변만 단장하고서 스러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사에 다시 등장한 아프리카는 그 땅이 품고 있는 풍부한 자원들 때문에 열강의 침략을 불러들이고 이들이 입맛대로 찢기고 나뉘는 바람에 오늘날까지도 갈등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근세 무렵부터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에 매달린 조그만 반도땅 역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니 해방 후 혼란했던 사회분위기가 정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운명이 아프리카의 그것도 다를 게 없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게 된 아프리카 국가들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부족사회들을 인위적으로 갈라 국경을 긋게 된 것이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까지 내전으로 고통받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유럽책임론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기여한 바는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서 분단의 아픔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도 아프리카 국가의 현실에서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조망하는데 있어 그들의 불행한 과거 그리고 그들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짚는데서 그치지 않고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개발국가와 접촉할 때 시혜를 주는 입장이라는 우월감 같은 생각을 가지거나 무언가 얻어낼 필요 때문에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데 필요한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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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과학 -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
시민과학센터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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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처럼 과학자들의 전문적 판단이 중요한 사안들이 사회적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정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새정부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시작된 광우병 논란으로 시작하여, 4대강 사업, 천안암 피격사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 문제 등이 꼬리를 물고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시절에도 새만금개발사업, 부안핵폐기장 선정, 경부고속철도 천성산터널공사 관련, 북한산관통터널공사 등 주로 국토개발사업들이 주로 환경보존과 관련하여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들 사업은 시민사회의 반발로 인하여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사업추진만 늦어진 결과를 가져왔을 뿐 사업은 결국 진행되었고, 사업이 마무리되고서는 시민단체에서 제기했던 환경문제들은 크게 영향을 나타내지 못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부고속철도공사구간에 있는 천성산터널이 뚫리면 일대의 늪이 마르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도롱뇽이 서식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2002년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도롱뇽을 원고로 하여 공사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3년여의 지리한 송사 끝에 공사가 재개되었습니다. 경부고속철이 개통하고 맞은 지난 봄 천성산 늪에는 도롱뇽이 여전히 알을 낳는 등 달라진 풍경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태들이 반복되면서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사안에 대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검토한 견해를 제대로 전달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 사회의 전략’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민의 과학>은 이와 같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1분의 필진은 “참여연대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으로 1997년 출범한 시민단체를 뿌리로 하고 있는 시민과학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시민과학센터는 ‘일반 시민의 참여를 통한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출범한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일어난 사회적 운동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양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하여 연구하는 분야로, 그간의 연구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이 단지 자연법칙을 반영하는 가치중립적 지식이나 도구가 아니라 현실의 맥락에 영향을 받아 결과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서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독점되었던 과학기술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제된 실험실에서 지식을 축적한 전문가들과는 달리 일반 시민들은 통제되지 않은 일상생활 속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일반적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02년 식약청에서 일하면서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을 주관하여 도입할 때, 미국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종의 규제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관련 단체, 업계를 비롯하여 일반에게까지 절차가 예고되고 회의는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에 중계되고, 회의 참석자들이 발언한 내용은 녹취되어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관하던 <독성물질 국가관리사업>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여 운영해보았더니 참석자들이 발언이 신중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들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과학기술정책수립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은 참여정부시절 일부 이루어졌지만, 실효적 운영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발전시켰어야 하는 제도였음에도 새정부 들어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영희교수는 제도적 시민참여의 방식으로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여론조사, 투표, 합의회의, 시민 배심원 회의 등이, 엘리트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 청문회, 여론조사 라운드 테이블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를 엘리트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시민과 차별하고 있는 점은 의외라는 생각합니다.

 

어떻든 대부분의 시민참여방식은 일반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시민 배심원제도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법원의 배심원제도를 따서 발전시킨 제도로서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이 4~5일간 만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주의 깊게 숙의하는 절차로 구성되는데, 지원자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출되는 15명 내외의 보통시민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배심원들은 전문가들의 증언을 듣고 해결책을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의견을 정책권고안의 형태로 채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시민배심원제도를 통하여 의견의 수렴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표성 문제 등을 포함하여 합의도출 절차 등 다양한 문제가 노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보건의료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의료계 역시 시민단체의 입장에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문직이라는 특수성에 안주하는 경향 때문에 시민사회활동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소통에도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AI와 같은 국가재난질환 대응체계를 검토하는 시민배심원 회의가 있었는데 여기 참여한 의료계 단체가 과연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동의하는 의료계 인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인선이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앞서도 절차에 참여하는 시민대표가 과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시민참여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보면 정부측에서는 적절한 절차를 통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분들이 시위 등 적극적 행동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곤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전회의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 사업의 경우도 환경영향평가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되어온 과정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외부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사업백지화 혹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와 인간유전정보의 보호문제 등이 관련된 생명윤리법은 의료계가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이슈입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전문가로서 빠르고도 명확한 견해와 기준을 제시하여 시민들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기 빠트릴 수 없는 사례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광우병 파동입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로 대표되는 의료계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서 국민적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하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빨리 내놓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의학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혼란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광우병 위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설명에 나서지 않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과학>이라는 제목은 마치 시민이 과학의 주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과학정책이 밀실에서 소수 전문가들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않다는데 동의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이 합리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시민참여가 정부정책결정에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다양한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검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되 논의과정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단체의 요구가 과학적 판단기준을 넘어서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 자주 인용되었던 일본정부의 광우병전수조사제도는, 최초의 광우병 발생사례를 숨기려들었던 관계당국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결국 도축되는 소 전부에 대하여 광우병검사를 하는 전수조사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이 이제와서는 무거운 재정부담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일본정부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철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시민사회가 과학정책의 결정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만 시민과학센터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주로 인문과학을 배경으로 한 과학기술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과학 부문에 대한 견해가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진 점은 없었는지, 혹은 자료가 적절하게 검토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병상박사가 맡은 ‘책으로 돌아보는 과학 기술의 이면’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저자의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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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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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생물학 교과서는 진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용불용설, 돌연변이설, 그리고 자연선택설의 예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벌써 40년도 넘은 옛날이라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만, 이 학설들의 개요를 설명하는 정도였고 논리적 취약점은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학설로 진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용불용설의 경우 개체가 얻은 후천적인 형질이 후대에 전해진다는 것으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을 따먹으려 한 결과가 유전형질로 굳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돌연변이설 역시 다양한 원인이 유전자에 구성에 영향을 미쳐 나타난 형질들이 후대에 전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윈과 월리스의 자연선택설은 시조새를 비롯한 종별로 나타나는 특성을 공유하는 생물체의 존재나, 같은 종의 생물이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설명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의 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막연하던 진화관련 이론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도킨스는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들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없었다.(327쪽)”고 한 RA 피셔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명이라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다. 어떤 사람은 읽는 이가 자신의 말을 그저 이해하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독자가 깊은 감동을 느끼도록 설명할 수 있다.(10쪽)”고 독자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난해한 진화론을 설명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리의 취약점을 가장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에 가장 위협적인 비판이론은 아마도 창조론과 창조론을 보완하는 지적설계론이라고 보입니다. 도킨스가 인용하고 있는 <자연신학>의 저자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를 정밀한 기계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 시계가 제작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처럼 자연 역시 신이라고 하는 제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27쪽)”라고 말입니다.

 

도킨스가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고 지적설계론의 취약점을 논하는 이 책의 제목을 <눈먼 시계공>으로 정한 것은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기에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설계하는 제작자로서 시계공이 눈이 멀었다고 한다면 설계와 제작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자연선택은 눈먼시계공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다윈이나 월리스가 진화론을 주장할 때는 핀치새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표본을 얻어 이들을 비교하여 얻은 것이었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체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어 무리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의 역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선조의 모습에 관하여 인간이 돌아볼 수 있는 시야의 끝이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우리의 뇌가 인간의 짧은 수명에 기초한 확률들만을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어떤 행성에 수억년의 수명을 가진 생물이 살고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위험의 범위는 우리가 만든 확률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으로 쭉 뻗어 나갈 것이다.(269쪽)”라고 한 도킨스의 생각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최근에 읽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7810>에서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그 시야를 무한한 과거로까지 넓힐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최근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의 연구성과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진화의 핵심은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가 종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생긴 미세한 차이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눈에 띄는 차이로 발전하고 종국에는 둘 사이의 관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킨스의 이런 주장은 역시 IT의 발전에 따른 예측모델을 구현할 수 있었던 점도 독자를 설득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바이오모프를 보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모델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알렉스 라일리의 <분류의 역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86806> 역시 도킨스가 ‘진정한 생명나무는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간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하고 있는 생물의 분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의 글을 통하여 표현한대로 “깊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명료하고, 잘 씌어진” 진화론 해설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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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 인류의 본질과 기원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13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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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1976년 발표한 <뿌리 Roots:The Saga of American Family>는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헤일리의 선조는 노예상인에게 붙들려 신대륙으로 끌려오는 동안 그리고 정착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는데, 헤일리가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선조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의 가계를 거꾸로 뒤쫓아 정리한 <뿌리>는 훌륭한 혈통학적 연구보고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족보라는 기록문서를 통해서 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사회에서 가족의 뿌리에 대한 기록을 유지하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은 족보와 가계의 뿌리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생뚱맞아 보일 것 있습니다만 최근에 크게 주목받고 있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보니 불과 얼마 전에 다윈의 제안으로 인류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던 진화론이 발전해온 발자취를 뒤쫓은 최재천교수님의 <다윈지능>을 소개한 바도 있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은 ‘진화론, 그 간결미’라고 제목을 붙인 첫 장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온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진화론의 매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지구상의 생명체가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진화론의 핵심은 다양한 영역의 생명과학이 발전해오면서 발견된 증거들에 의하여 그 이론적 뿌리가 굳건해져왔을 뿐 아니라,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법학 등의 인문 사회 과학 분야는 물론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에른스 마이어교수가 “진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신비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다.”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의 발전과정을 쉽게 풀어 쓴 <다윈 지능>을 통해서 진화론의 얼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오늘 소개하는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는 놀랍게도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현생 인류에 이르는 과정을 뒤쫓고 있습니다. 직계부모 이전 세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은 서구사회의 전통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한국에서는 수 천 년에 걸쳐 규범으로 작용해온 조상숭배라는 개념이 서양에는 없었다는 점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지구 상에 현존하는 생물체에 담긴 생명의 성스러운 메시지는 우리의 조상이 쓴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상에 대한 존경에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프롤로그에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광대한 암흑이 깔려 있고, 여기저기 희미한 빛의 점들이 흩어져 있다. 그 빛의 점에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점은 핵융합의 불길로 타오르면서 주위의 협소한 공간을 데우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항성임을 알 수 있다.”라는 설명으로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던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왜 다른 과정을 거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지 않았는가? 인간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등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선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후손에 전하게 된 것은 지구가 생성된 이후의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그야말로 눈깜박할 사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주와 태양계 그리고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위에 생명체가 나타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의 유구한 세월을 복원하는 일은 인간이 능력 밖의 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한한 힘을 가진 조물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축적되는 지식을 토대로 지구에서 흐른 시간의 흐름을 뒤쫓아 추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생명체의 유전체지도를 해석하게 됨에 따라서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역사를 뒤쫓을 수 있게 됨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생물종을 분류하는 작업을 통하여 세워졌던 진화론의 실체가 분명해지게 된 것입니다.


저자들은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지구 상에서 일어난 일을 쫓고 있습니다. 원시지구의 스프 속에서 무기원소들이 우연히 서로 연결되어 유기분자가 되고 그 유기분자들이 결합하여 자기 복제가 가능한 물질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세월이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오늘날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인데, 이런 과정이 정말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필연이었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으니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겠습니다.


1장 “우주 공간 속 지구라는 행성에서”이라는 제목에서부터 21장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진화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하나 짚어 인류가 어떻게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존재이유는 자신의 복제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함인데, 미생물처럼 간단하게 복제해버리면 끝날 일을 양성(兩性)으로 구분되어, 섹스와 임신이라는 복잡한 과정이 진화의 틀에 들어온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본질은 무엇인지, 폭력과 강간 같은 인류의 공격성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집단 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 이전에는 인류가 모든 지구 생명체들 가운데 최고의 지위에 위치하여 군림하는 ‘만물의 영장’이 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와 지구라는 제한된 삶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나누어 쓰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고생대 페름기가 끝날 무렵인 2억 4500만년 전, 지표상에서 벌어진 격변은 지구 상에 존재하던 생물종의 95%가 절멸하는 대재앙이었다고 합니다. 페름기 말에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동물은 불과 25종이었다는데 그 가운데 10종이 현존하는 척추동물의 98%에 해당하는 4만종의 동물의 선조라고 합니다. 그런 혹독한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와 같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쏟아내는 유해물질로 인하여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고 하루에도 적지 않은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페름기 이후에 새로 등장하는 생물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들은 마지막 장에서 과거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극적인 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0억년 전 생명체들은 내해의 색을 변화시켰고, 20억년 전에는 대기의 조성을, 10억년 전에는 기후와 기상을, 3억년 전에는 토양의 지질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고 어쩌면 미래에 인류 스스로를 파괴시키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닐 것입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 벼락부자가 된 생물종이 무대장치를 바꾸고 다른 종을 멸망시키다가 종국에는 스스로도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일이 반복되어왔고, 인간도 같은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대신할 우세종이 등장하게 되겠지요?


저자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지구 생명계의 일원에 불과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뿌리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의 <다윈 지능>에서 2% 아쉬웠던 부분들까지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무성생식으로 종족을 늘려가던 생명체가 양성으로 나뉘는 과정과 그 이유를 예로 들면, <다윈 지능>에서는 다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예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세이건과 드루얀은 여전히 과학자의 시각으로 설명하면서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은 과학이 인류의 과거에 대한 수수께끼와 우주의 성질을 밝히려 노력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살필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담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조의 뿌리를 찾고 그들을 기리는 이유는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해준데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후손에게도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남기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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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3-2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4821
 
과학을 성찰하다 - 현대 과학의 새로운 지평
임경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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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둘러싸고 광우병의 위험성이 다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2000년 유럽에서 육골분이 수입되었다고 해서 일었던 1차 광우병파동과는 진행과정 그리고 사회적 파장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자료를 두고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과학은 실험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론을 검증하기 때문에 실증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반된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과학을 성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과학을 성찰하다>는 과학사를 연구하는 포항공대의 임경순교수님이 현대과학의 흐름을 큰 틀에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쓴 책입니다.

 

앞서 언급한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회의는 20세기 중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바닥에는 과학의 내용이나 방향에 사회, 문화적 측면이 개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리게 되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학문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서로 융합하여 시너지를 꾀하게 된 것도 이런 경향을 부채질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생명현상과 같은 복합적인 현상을 다루면서 국소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이 부상하게 되면서 특정분야가 주도하던 전통적 과학관이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하여 “과학적 지식이란 단순히 객관적 지식의 축적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내용이나 방향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도 개입할 수 있으며, 과학은 ‘패러다임 이동’을 통해 혁명적으로 변화한다.(21쪽)”고 주장한 것이 변화의 물꼬를 텄다고 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과학은 그 뿌리를 철학에 두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변화하지 않는 존재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불변의 진리가 바로 오늘날 과학이 추구하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근대과학은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점차 세분화되면서(예를 들면,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고,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세분화되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던 경향은 20세기말 과학의 영역 안에서부터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통합적 사고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풀어보면 미분화되던 과학이 어느 순간 적분화를 통하여 전체로 아우르려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학의 이러한 경향을 연구하기 위하여 태동한 학문이 과학기술학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과학기술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성장한 분야이며, 과학사, 과학 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연구가 밑거름이 되었다.(34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중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책표지를 열면,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헌정사를 적어 놓은 것처럼, 저자는 근대과학의 흐름을 큰 틀에서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논의 대상을 크게 4개의 분야로 나누고 있습니다. ‘20세기 과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하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1부 「현대 과학의 여명」에서는 현대 과학의 흐름을 바꾼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현대 우주론, 생명 과학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신, 전화, 텔레비전, 나일론, 컴퓨터와 같이 20세기 인간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는 2부 「과학 기술과 산업」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3부 「과학 기술은 국가를 등에 업고」에서는 국가의 정책과 과학 기술이 결합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계의 변방에 머물던 독일이나 미국이 오늘날 과학강국으로 올라서게 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3부의 마지막에 둔 ‘노벨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노벨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경쟁과 암투를 적고 있는데, 노벨상을 염원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염원을 고려한 듯합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거대화된 과학이 환경 사상, 예술과 만나면서 생겨나는 변화를 4부는 「과학 성찰의 새로운 진화」에서 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앞서도 말씀드렸던 20세기 후반 이후 과학 기술 분야에서 등장한 융합 기술과 비연속적인 기술 혁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1859년 다윈의 진화론 발표에서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1926년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 1948년 가모브의 대폭발 이론,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20세기에 이룩한 과학의 업적들에 대하여 기업, 사회, 국가, 예술이라는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고 심지어 물밑에서 있었던 요소들의 상호작용까지도 소개하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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