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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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은 소설보다는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의 영화로 먼저 만나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오싹한 느낌, 혹은 분명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혹시 주위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저도 모르게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느낌같은 것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해가 저문 이후>는 그의 소설로는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윌라’로부터 ‘아주 비좁은 곳’까지 모두 열 세편의 소설을 묶은 단편집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편집의 말미에 붙여 놓은 ‘선셋노트’입니다. 부록이라는 이름의 후기로 붙인 이 글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의뭉스럽기까지 하다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다는 고백까지 친절(?)하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책을 열세편의 단편을 모두 읽고 나서야 발견했으니 저자의 뜻대로 그야말로 후기를 읽은 셈이 되었습니다만, 작품들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작품해설 혹은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열 세편의 작품들 특히, 첫 작품 ‘윌라’로부터 ‘헬스자전거’, ‘그들이 남겨놓은 것’, ‘N', '지옥에서 온 고양이’, ‘<뉴욕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 ‘아야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개괄해보면 초현실적이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환상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죽은 사람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는 비라도 내릴 듯 구름이 낮게 깔린 저녁 무렵이면 공연히 소름이 돋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진저브래드 걸’과 ‘아주 비좁은 곳’은 읽으면서도 스멀스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불쾌한 느낌 때문에 보던 책을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얼마 전에 참가했던 김용택시인님의 글쓰기 교실에서도 글쓰기는 과연 타고나는 부분과 훈련에 의한 부분의 비중에 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시인께서는 1%의 재능과 99%의 훈련이 잘 어울어져야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스티븐 킹의 경우를 보면 소년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십대 초반에 쓴 소설이 잡지에 실렸다는 것을 보면, 역시 재능이 중요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N’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오빠가 자살로 결론이 난 죽음 이후에 그의 유품에서 나온 N이라고 하는 회계사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강박증에 관한 진료기록을 발견한 여동생이 역시 정신과의사인 오빠의 친구에게 검토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빠는 고향이 같은 환자의 강박증을 치료하면서 환자가 오빠도 잘 아는 고향의 벌판에서 발견한 묘한 현상 - 아마도 강박증 때문에 인식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에 이끌려 몇 차례나 그곳을 방문한 끝에 그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오빠 역시 그 장소를 찾았다가 자살을 하게 될 뿐 만 아니라 오빠 친구에게 진료기록의 검토를 부탁했던 여동생마저도 같은 장소부근에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 미묘한 분위기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큰 아이가 정신과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내심 걱정했던 점이 바로 치료하고 있는 환자의 증상에 이끌려 들어가는 정신과의사가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옥에서 온 고양이’에서는 적어도 세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고양이를 살처분해줄 것을 의뢰받은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죽음의 현장으로 향하던 중에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선뜻한 전개가 저의 고양이 공포증을 부채질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래도 저는 호러물에 대한 역치가 낮은 탓인지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 등장하는 소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향도 눈에 뜨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벙어리’에 나오는 성 크리스토퍼의 목걸이와 같은 것 말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나름대로의 일정한 패턴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주제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제목 <해가 저문 이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해가 저물고 밤이 시작되려는 시간은 공연히 스산한 느낌이 절로 드는 시간대라로 할 수 있는데, 시간적 배경을 해진 이후로 설정한 작품을 읽을 때는 소름이 미리 돋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나약한 면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 갈등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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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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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소리]에서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책을 고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에서 일차로 고른 책들을 구해서 읽어본 다음 나름대로의 느낌을 바탕으로 [북소리]에 올릴 리뷰를 별도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북소리]코너의 독자 한분께서 추천해주신 조금 특별한 경우입니다. 책을 구해서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리뷰로 끝낼 것인가 [북소리]에서 같이 고민해볼 것인가를 놓고 몇 차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헬라(HeLa)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특히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일대기라는 점이 [북소리]의 핵심 이슈와 부합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헬라세포의 원주인 헨리에타 랙스와 그녀의 자궁경부에 생긴 종양으로부터 분리해낸 세포가 영원히 증식하도록 불멸의 존재로 만든 과학자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었어야 할 의학윤리 및 연구윤리 혹은 보상 등에 관한 내용은 최근 의학계의 첨예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에 같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는 1920년 8월 1일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의 한 흑인여성과 그녀의 종양세포로부터 유래한 헬라세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에 가족들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가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9일 헨리에타 랙스가 질출혈과 통증 때문에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병원의 산부인과 외래를 찾은 것을 계기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잘라낸 종양으로부터 종양세포를 분리하여 실험실의 인공적 환경에서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는 불멸의 세포로 만들어낸 의사와 생명과학자들이 헬라세포를 두고 보인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전자의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헬라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종양을 제공한 환자, 즉 헨리에타 랙스의 신원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헨리에타가 남겨놓은 세포가 불멸의 존재가 되어 의학연구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헬라세포를 만들어낸 존스홉킨스를 비롯한 정부 어디에서도 가족들을 배려했다는 흔적은 없고, 오히려 이들을 이용하려는 세력들까지 등장하면서 시달림을 당하게 된 가족들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실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가 특히 그녀의 딸 데버러를 중심으로 한 헨리에타의 가족들의 입장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의학, 혹은 생명과학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사의 비중보다는 헬라세포를 추출해서 배양에 성공하게 된 과정에서 빠트리지 말았어야 할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헨리에타 랙스에게 종양세포를 배양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세포배양에 성공하게 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뒷날 헬라세포의 활성이 지나치게 왕성한 탓에 다른 배양세포들을 오염시키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게 됩니다. 이때도 역시 가족들에게 충분한 설명없이 넘어간 점 등을 ‘옛날에는 다 그랬어~’라고 정리하기에 찜찜한 무엇이 남는 느낌입니다.

 

저는 병리학과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하고, 병원의 병리진단업무 또는 법의부검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게 넘어오는 환자의 표본들로부터 검사에 필요한 부분을 얻어 진단을 정하고 학생교육 등의 재료 혹은 희귀한 질환 등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보관이 필요한 검체는 남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검체는 소각하여 처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별도로 환자의 동의를 얻은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도검체가 이를 제공한 환자의 소유라고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분자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하게 되면서 환자로부터 얻은 검체를 조작하여 진단시약 혹은 연구재로를 만들어 상품화할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소유권의 소재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북소리]에서는 한스 요나스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20243>를 읽으면서 바로 이 문제를 공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나스 교수님은 현대 기술이 윤리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그리고 형이상학적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조지 가이의 실험실에서 헬라세포배양에 성공하기 이전에는 배양하는 종양세포마다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처럼 실험의 최종결과는 예상할 수 없는 모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헨리에타의 종양세포를 배양하여 불멸화하는 작업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밝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기술이 개발된 시점과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데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헬라세포가 불멸화된 다음, 조지 가이는 이를 이용하여 의학연구를 하려는 연구자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이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951년 미국에서 소아마비가 창궐하면서 미국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이렇게 개발된 소아마비백신을 검정하기 위하여 헬라세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세포의 손상없이 배송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헬라세포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한 대단위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이 가능하게 된 것이 헬라세포가 생명공학연구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요나스교수가 제기한 현대기술이 인간중심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헬라세포와 관련해서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나스교수는 전통윤리학이 언제나 인간적 선을 장려하고, 타인의 권리 내지 타인에 대한 관심의 존중, 그들에게 일어나는 불의의 개선,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완화를 강조해왔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세포을 사용한 실험을 했던 시험실은 물론 헬라세포를 개발한 존스홉킨스를 비롯하여 소아마비의 예방을 최우선의 보건정책으로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어디에서도 헨리에타 랙스가 의학과 공공보건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기리는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들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헬라세포의 진위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일은 연구윤리에 저촉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환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사실을 비밀로 하지 못한 연구진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지 가이가 헨리에타 랙스의 종양조직으로부터 배양해낸 헬라세포는 앞으로 암정복을 위한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 세포가 누구로부터 얻은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기 위한 언론의 열띤 취재경쟁이 헬렌 레인, 헬렌 라슨 등의 이름으로 추측되어왔던 헬라세포의 제공자가 헬리에타 랙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가족들이 언론과 개인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을 보면 환자의 비밀유지규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시 [북소리]에서 첫 번째로 다루었던 반덕진교수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03334>에 적혀있는 것처럼,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또는 진료 과정 외에 그들의 삶에 관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비밀로 지키고 누설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환자 보호의무에 관한 조항을 위반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반덕진교수님께서도 환자의 비밀을 어느 선까지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즉 환자의 비밀이 보호되는 것보다 공개되는 것이 사회적 편익이 큰 경우 비밀준수규정의 적용에서 예외로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의 경우 헬라세포와의 관계는 결국 그녀의 병력이 공개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그녀의 병력이 사회적 편익을 침해하는 바가 없다 할 것이므로 그녀의 실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분명 의학윤리규정을 위반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검체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 둘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털세포백혈병에 걸린 존 무어로부터 채취한 검체를 가지고 만든 Mo세포주와 단백질에 대한 특허를 획득한 UCLA의 암학자 데이비드 골드가 이를 생명공학회사에 매도하기로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무어가 골드를 상대로 자신을 기만하고 동의 없이 자신의 몸을 연구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여 자신의 조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지만, 대법원은 무어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조직이 환자의 신체를 떠나는 순간 환자의 소유권도 사라지는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무어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환자도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혈우병을 앓고 있던 테드 슬래빈이란 환자는 잦은 수혈로 B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치의는 이 사실을 슬래빈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슬래빈은 B형간염백신을 개발하려는 제약사에 자신의 혈청을 판매하여 수입을 올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슬래빈은 B형간염을 퇴치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학자 바루크 블럼버그를 찾아가 자신의 혈액과 조직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여 결국은 B형간염백신의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쾌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같이 생각해볼 점은 요나스교수님이 제기한 환자의 기본적 특권에 관한 점입니다. 그는 치료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의사는 오직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에 국한된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들에게 사회 혹은 의학의 대리인이 될 것을 주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나 동일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다른 환자 혹은 고통받게 될 미래의 환자를 위한 대리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는 현재 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단 전염병 환자의 경우는 예외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헨리에타 랙스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마무리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금전적 보상을 원한 가족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가 자궁암치료를 받는 동안 태중(胎中)에 있던 딸, 데버러 랙스는 바로 어머니와 언니의 삶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헬라세포가 의학연구에 기여한 바를 고려하여 헨리에타 랙스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환자진료를 통하여 얻게 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의학계가 얻는 부수적인 이익에 대하여 윤리적 시각에서 논의가 가능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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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5-29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5899
 
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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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하반기에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동화로,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있습니다. 가수 김만준씨는 이 동화에서 얻은 느낌으로 <모모>라는 노래를 만들어 젊은층의 애창가요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만준씨는 환상가 모모 앞에 있는 생이 행복한 이유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노래하였습니다. <모모>는 인간으로부터 빼앗은 시간으로 피워내는 꽃잎으로 만든 시가를 피워 생명을 유지하는 회색인간의 음모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행복을 지켜내는 행복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한 미국 작가 로이스 로리가 1993년에 발표한 <The Giver>는 2007년에 <기억전달자>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습니다. <모모>보다 30년 정도 늦게 발표되었습니다만, <모모>에서는 실패했던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 심지어는 색깔마저도 무채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세계가 된다면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기억전달자>가 사는 세계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입니다. 출생까지도 산모역을 담당한 여성들이 계획된 숫자만큼 출산하여 결혼한 남녀의 가정에 배정하여 키우도록 하며, 아이들은 열두살이 되는 해 생일에 평생 맡아야 할 직업을 배정받아 수행하다가 역할을 다하면 ‘임무해제’되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임무해제’란 약물을 주입하여 생을 마감하는 절차입니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숫자는 항상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구를 통제하는 이유는 기후마저도 통제하여 필요한 식량마저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인구의 증가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은 이야기의 뒷부분에 가서야 독자들만 알게 되는 이 마을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통제된 이 마을에 매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기억보유자’입니다. 기억보유자는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시원(始原)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열두살이 되는 생일에 원로들의 오랜 관찰 끝에 선정되어 선대 기억보유자로부토 기억을 전달받은 다음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하여 기억으로 갈무리하였다가 다음 기억보유자에게 전달하는 ‘거억전달자’의 역할을 마치면 임무가 해제되는 것입니다.

 

사실 기억보유자와 기억전달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이미 볼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문자가 없던 과거에는 기억이 특별한 사람들이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여 후대에 전하였습니다. 최근의 뇌과학은 기억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기억보유자의 기억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기억보유자의 기억은 완전한 것이라 믿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기억전달자가 새로 선정된 기억보유자에게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기억을 전하게 되면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설정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마을에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 기억보유자의 집에 축적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억보유자 넘겨받은 기억에 더하여 책읽기와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모아들여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렇게 쌓인 기억들을 바탕으로 마을운영에 자문이 필요한 경우 원로들에게 자문을 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계도 없고 그저 온실처럼 통제된 ‘늘 같은 상태’에서 사는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개인의 특성없이 - 열 두 살이 될 때까지의 성장과정을 관찰하여 파악되는 특성에 따라서 직업이 결정되는 것을 개성이라고 보아준다면 모르겠지만 - 마치 기계의 한 부품처럼 사는 삶을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마을에서도 간혹 독특한 개성을 가진 개체가 태어나고 성장하지만, 이 마을의 특성에 맞출 수 없게 되면 임무해제되어 사라지는 운명을 따르게 된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마을에 새로이 기억보유자의 임무를 맡게 된 조너스는 어떤 기억보유자로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요? 새로운 기억보유자는 “친구들이 아무 활력도 없는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는 사실에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친구들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났다.”고 느꼈으니 그가 할 일이 기대되지 않습니까?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기본적 가족구조는 부모와 아이들 2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 조너스가 기억전달자로부터 건네받은 기억 가운데 3대가 같이 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전달자는 가장 아끼는 기억이라고 하고, 이 시간의 느낌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줍니다. 즉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억을 전해받던 조너스가 집에서 위탁받아 키워온 가브리엘이라는 아이가 결국 임무해제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기억보유자로서의 역할에서 일탈하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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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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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힐링’이란 외래어가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치료와 관련해서 ‘큐어’와 ‘케어’의 차이를 가끔씩 설명하곤 합니다. 큐어는 질병을 치료하여 환치시키는 행위를 이르나 케어는 완치시킬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돌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힐링(healing)이라는 개념은 다음 영영사전에 “tending to cure or restore to health”이라 되어 있어 몸이나 마음을 치유한다는 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으나 제가 느끼기에는 마음을 치유한다는 쪽이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듯 SBS에서는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하여 출연자가 패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심리적 갈등 혹은 부담 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폐지되었습니다만, MBC의 <황금어장>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무르팍도사>가 유사한 프로그램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힐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분야가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는 문학계에까지 이르러 ‘힐링노블’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책읽기를 환자의 질병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49788>를 읽었습니다만, 힐링노블은 어떤 치료효과를 가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곽세라작가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힐링 라이터로 지목된다고 해서 그녀의 첫 번째 소설집인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에 관심이 가게 됩니다. 이 소설집에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과 ‘천사의 가루’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신기루 같은 주인공들이 펼치는 기억과 그리움, 사랑과 집착, 욕망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세련된 구성과 감각적인 언어들이 기억과 환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판타지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지만, 곽세라 작가만의 독특한 사유는 삶의 본질을 부드럽게 꿰뚫고, 심오한 생의 물음들에 관한 품격 있는 관조를 보여준다.”고 적은 출판사의 리뷰에서처럼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 베일에 싸인 분위기이며 감각적인 글흐름은 젊은이들에게 강한 끌림을 줄 것 같습니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의 여주인공 유정은 어머니가 하는 미장원 단골인 미나선생의 권유에 따라서 그녀의 극단 츠키(‘달’이란 뜻의 일본어)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하는데, 허드렛일도 하면서 연극연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극단 츠키는 동경과 서울에 연습실을 가지고 있으며 공연도 하기 때문에 단원들도 서울과 동경을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단 츠키에는 뮤토라고 부르는 특별한 연기자가 미나선생이 주선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뮤토’는 ‘변화하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뮤토가 하는 플레이는 공연을 의뢰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역할극이지만 미나선생이 극본을 통하여 지시하는 내용의 범위 안에서 연기해야 한다는 금기가 있습니다.

 

유정이 뮤토로 연기하면서 극본의 범위를 벗어났던 사례에서 의뢰자가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뮤토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습니다. 의뢰인은 대부분 심리적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인데, 뮤토는 그들이 갈망하는 결핍을 채워주면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완전한 사람은 플레이를 원하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할 필요도 없지, 심장 끝을 태우는 갈망, 가질 수 없는 마지막 조각이 이 게임을 계속하게 하는 거야.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결국 마지막 장면까지 살아있게 하는 거라구.(163쪽)”라고 정리하는 미나선생의 설명이 알 듯 모를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뢰인이 요구하는 플레이는 철저하게 자신을 제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마치 영혼이 소진되는 느낌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나선생이 뮤토에게 플레이가 있다는 사인을 줄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이지?”

 

이 이야기는 간이역이 있는 일본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 오오가케무라에 숨어든 유정이 뮤토로 활동한 자신의 짧은 인생의 흔적을 되돌아보면서 뮤토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정리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상상력을 뒤따라가는 것이 숨차기도 합니다. 게다가 오오카게무라 마을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길고양이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또 다른 쌍의 삶과 엮어 들면서 더욱 조심스럽게 줄거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두 번째 소설 ‘천사의 가루’는 비행기로 도착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하여 공항으로 나가던 남자가 자동차사고로 숨지면서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스케치입니다. 특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사라진 빈 자리에 남은 상실감과 그 여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의 애닯은 사랑을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언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공항에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여자에게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가 전한 것은 작은 자기함에 담긴 ‘천사의 가루’였습니다. 이 가루를 불어내면 죽은 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인데, 결국은 마법의 가루가 담긴 자기함이 비어가면서 남자의 죽음은 현실이 되는 것일까요?

 

곽세라작가가 펼치는 독특한 삶의 세계는 아마도 전 세계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인연 닿는 대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얻은 영감을 녹여 창조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뮤토가 펼치는 플레이에서 힐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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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무실에서 가까운 낙성대입구에 있는 중고서점을 찾아갔습니다. <흙서점>이라는 이름의 이곳은 회사의 사보에서 소개되어 알게 되었는데, 마침 예스에서 절판된 책을 구하고 있어 가까운 곳에 중고서점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출장에 회의 등 업무가 겹치는 바람에 막상 찾아가기까지는 시일이 적지 않게 걸렸습니다.

 

대부분 신간 위주로 책을 읽고 있고 고전이라고 할만한 책들은 꾸준하게 팔리는 경향이 있어 절판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는 분야의 책을 예스에서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아쉽던 참입니다.

 

저같은 사람들에게 중고서점은 크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삼국이전의 고대사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읽을만한 책들을 서점에서 구할 수 없어 결국은 청계천 중고서점에 나가서 구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전자책이 신세대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아날로그 세대라 할 제 경우는 여전히 종이책이 읽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흙서점을 운영하시는 분은 저처럼 구하기 힘든 종이책을 찾는 분들을 위하여 자그마한 공간을 열고 계시다고 합니다. 아마 저 같은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봉천4거리 방향으로 조금만 나가면 큰길가에 있는 흙서점을 금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게 앞에 헌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게 양편으로 나있는 문 가운데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좋습니다만, 문에 들어서자 눈앞을 가득 메우고 쌓여 있는 책들에 압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둘러보다가 아무래도 사장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들고 간 목록에는 모두 다섯 권의 책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몇 권이나 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이곳저곳으로 책을 찾아다니시던 사장님께서 엄청 미안한 표정으로 모두 찾을 수 없다고 건네 드린 쪽지를 되돌려 받으면서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점심도 거르고 일부러 찾았는데 성과가 없으니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장기보다는 구하는 책을 구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제가 이날 구하려 들고 간 목록에 담겼던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양도가 가능하신 분이 계시다면 좋겠습니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리더스북 펴냄

이규태 코너 1; 눈물의 한국학; 이규태 지음, 기린원펴냄

칼 포퍼: 그의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브라이언 매기 지음, 이명현 옮김, 문학과 지성 펴냄

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아이필트 펴냄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 전국편; 김영록 지음, 터치아트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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