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애나 캐번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도 생소한 작가 애나 캐번의 <아이스>를 읽게 된 것은 쏟아질 듯 매달린 고드름 밑을 달리는 차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인 듯합니다. 애나 캐번을 오늘날 가장 신비한 작가라고 한 것도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뽑아놓은 내가 살던 세상 대신에 이제 곧 얼음, , 고요, 죽음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폭력도 전쟁도 피해자도 더는 없으며 얼어붙은 침묵, 생명의 부재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인류의 궁극적 성취는 자기 파괴뿐만 아니라, 나아가 모든 생명의 파멸이리라. 생동하던 세계가 죽음의 행성으로 변화하는 것 말이다.”라는 대목의 의미를 파악해보려는 호기심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이 소설의 맨 앞에는 영국의 SF소설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서문이 붙어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이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라는 문학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문학형식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우주여행, 외계인 침입, 시간 여행과 같이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대중적이면서 상투적인 문학형식과 차별화한 작품들을 이르기 위한 용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무라카미 하루키나 폴 오스터가 대표적인 슬립스트림 형식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애나 캐번(1901~1968)이 발표한 작품들은 슬립스트림이라는 문학형식을 구분하기 훨씬 이전에 발표된 것이므로 이런 문학형식의 효시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 캐번의 작품들은 생전에 작가로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후에 문학비평가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소설계의 관습적 맥락에서 잘 팔리기 어려운 탓이었고, 미국 출판계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학형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추이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는 서문에서 이 같은 작품들은 줄거리나 내용을 설명하려는 시도 없이, 환상을 비추는 거울에서 거울로 옮겨 다니며 왜곡된 렌즈를 통해 평범한 세계의 뒤틀린 이미지를 보여준다.(11)”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아이스>를 읽다보면 이야기의 전환이 맥락이 전혀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주인공은 화자, 젊은 여자 그리고 남자인데 화자와 젊은 여자는 성격이 분명하지만 남자의 성격은 상황에 따라 바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성격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화자는 모 국가의 정보부 요원으로 보이고, 남자는 때로는 교도소장이라 불리는 등, 일종의 관리자로 보입니다.


나는 길을 잃었다. 이미 황혼이었다. 몇 시간째 운전 중이었고 휘발유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혼란스러운 책읽기의 서막을 알리는 듯하였습니다. 이 지역에 어떤 불가사의한 비상사태에 임바했다는 소문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화자는 도착하자마자 그 여자의 존재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정보요원이라면 있어서도 안될 일이 아닐까요? 아니면 갑자기 그녀가 화자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간 충격에서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녀를 찾아가는 길에 화자가 보는 환상은 <아이스>의 세계가 곧 얼음으로 뒤덮이는 파국적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사태가 위중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비상사태에 제대로 대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상상황이 인류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파국적 사태는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화자가 그녀를 찾아다는 이유와 그녀가 기를 쓰고 화자를 피하려는 이유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조금 드러나기는 합니다


서로의 행동에 대한 오해를 풀고, 두 사람은 차에 올라 다가오는 파국을 피하려 하지만 화자는 운명을 피할 길이 없음을 예감합니다. “이 세상은 이마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아직 이 차가 우리의 세계이니까. 조그마하고 밝게 빛나는, 온기가 감도는 따뜻한 방. 냉담하게 얼어붙어 가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가진 작은 집,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바싹 붙어 앉았다. 여자는 더 이상 긴장이나 의심 없이 내 어깨에 몸을 기댔다.(3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섯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시련 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크고 작은 시련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는 원하는 과목을 전공하지 못하는 시련도 겪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는 제때 교원으로 임용되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었을 뿐입니다.


대입에 실패했을 때는 1년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다시 기회를 붙들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만난 시련은 그때마다 차선이라 생각되는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원하는 길을 걸었다고 해서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차선의 선택들이 손에 잡힐만한 결과물을 맺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쓰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코엘료의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었습니다. <다섯 번째 산>도 큰 기대 속에 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에도 끝이 있어. 그런 그것이 남기는 교훈은 영원하지.’라는 표지에 적힌 한 구절이 눈길을 끌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섯 번째 산>은 코엘료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뒤바꿔놓은 시련과 그 경험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 이후 써내려간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그는 긴 터널과도 같았던 이때의 고비를 넘어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고, 결국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라고 출판사에서 정리한 대목은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작가는 <다섯 번째 산> 집필을 마쳤을 때, 서른 살이던 해에 음반제작자로서 대성하는 꿈이 무참하게 꺾였던 일화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살아오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일이 닥쳤던 다른 경우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담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라고 작가의 말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섯번째 산>을 기획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더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터이나, 이미 집필을 마친 뒤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어떻든 <다섯 번째 산>은 성경에 나오는 에언자 엘리야의 일생을 뒤쫓으며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구약성경의 열왕기에 나오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는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한 뒤에 이세벨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인 바알 신을 섬기도록 강요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앞으로 3년동안 가뭄이 들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페니키아의 시돈으로 간 엘리야는 과부에게 의탁하고서 많은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3년뒤에 이스라엘로 돌아와 바알신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기적을 행하는 대결을 펼친 끝에 바알신으로부터 응답이 없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연출하여 아합왕과 이세벨의 무리를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산>에서는 앗시리아 군이 아크바르의 침공을 앞두었을 때 바알신과의 대결을 시돈에서 벌일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에서 벌일 것인지는 엘리야가 선택하도록 하는 변주가 펼쳐집니다. 엘리야는 아크바르를 구하는 선택보다는 이스라엘을 구하는 선택을 하고 아크바르는 시리아군의 침공으로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엘리야는 아크바르의 재건이 자신이 이루어야 할 지상의 목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설명이 되고, 하나님도 결국은 엘리야를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원재훈 지음 / 가갸날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이자 소설가 원재훈의 장편소설(掌篇小說)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를 읽었습니다. 엽편소설(葉篇小說)이라고도 하는 장편소설(掌篇小說)200자 원고지 30매 내외로 단편보다 짧은 소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인생의 한순간적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적절히 묘사한 소설로서, 사건의 전복적 결말이나 대화의 운행이 매우 지적이고 기지에 차 있어 놀라운 효과를 유발한다. 이야기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자마자 급전하여 결말에 이르는 수법도 간결한 처리로 이루어진다.”라고 장편소설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후기의 첫 머리에 가끔, 나는 손바닥에 글자들을 쓴다라고 적었습니다. 장편소설(掌篇小說)이라는 글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소설에 담고자 하는 주제를 손바닥에 적어두는 버릇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짧은 내용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해서 담았지만 의미전달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두 40편의 이야기가 태엽감는 쥐’, ‘소원을 들어주는 집’, ‘고양이 상처등의 소제목으로 묶여있습니다. 첫작품 태엽감는 쥐부터 허를 찌르는 내용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희인(喜引, parody)한 작품을 그것도 하록기(河錄基)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여 대박을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록기와 대담에 나선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역시 허를 찌르는 내용입니다. 개들 세상에서 개들이 사람을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 그대로를 담았습니다. 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국의 늙은이여, 대동단결하라’, 역시 젊은이와 늙은이가 반목하는 작금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그런 내용으로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생각해보라. 젊은이들이 의지하는 것은 늙은이들의 사상이었고, 지혜였으며, 경험이었다. 늙은이는 거인이었으며, 젊은이는 거인의 등에 올라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 거인은 쓰러져 버렸다. 오호, 통재라.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32)”


벌레를 보고 놀라는 소녀처럼, 인생의 어느 날 번개가 떨어진 것처럼,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35)”라는 나만 생각해야겠다를 여는 첫 문장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쑤시개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한 대목도 새겨둘만 합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한 시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참 다정하고 착했던그가 보고 싶다면서 그런데 말이요그에게 갈 길이 없네. 갈 길이 없어.” 이어서 작가는 누군가에게 갈 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47)라고 말합니다.


마법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사람들이 표정을 잃어버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두들 힘들고 지친 표정이다. 자신의 진짜 얼굴 대신에 가면을 쓰고 있다.’라고 운을 뗀 주인공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는 그것을 이루게 해주는 마법사임을 밝힙니다. 나아가 아예 소원을 들어주는 집이라는 소제목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결국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변해버린 세태를 고발하는 그런 내용보다는 변한 세상에서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러 이야기들로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멋대로 해석한 것을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랜스휴머니즘의 역사와 철학 - 인간을 재설계하다
로베르토 만조코 지음, 유용석.김동환 옮김 /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읽은 닐 올리버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https://blog.naver.com/neuro412/223150796339>에서 최근에 대두된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의 역사와 철학>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초인본주의)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정신적, 육제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 등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요소들을 생명과학과 새로이 개발되는 기술들이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1957년부터 등장한 용어이며 1980년대 들어 미국의 미래학자들에 의하여 조작적 정의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변형될 것으로 예견하면서 이런 존재를 포스트휴먼(posthumanism, 탈인본주의)이라고 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나타내는 기호는 >H를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H+로 표기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역사와 철학>은 이탈리아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로베르코 만조코가 썼습니다. 저자는 수메르제국의 우르크 지방에서 전해오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인용하여 인간이 불멸을 꿈꾸었음을 상시시킵니다. 그리하여 초인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합니다. 저자가 서문에 요약한 이 책의 얼개를 옮깁니다.


1장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선도자를 다루고, 2장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 운동 자체와 주요 사상, 주요 대표자, 단체 등을 다룬다. 3장에서는 가능한 오래 살려는, 어쩌면 영원히 살려는 시도라는 특정한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제에 집중한다. 4장에서는 크라이오닉스(cryonics; 냉동보존술)라는 트랜스휴머니즘 플랜 B’를 다룬다. 이는 불멸이라는 플랜 A가 실패할 때 좋은 대안이 된다. 5장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또 다른 기둥인 나노기술(nanotechnology)을 분석하고, 6장에서는 개인, 기업, 조직이 시도하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몸을 증강하는 실제 연구를 다룬다. 7장에서는 인간의 뇌 냅주와 기계와 인터페이스 가능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로 뇌를 수정하고 인간의 생물학적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더불러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도 고려한다. 8장에서는 낙원 공학(paradise Engineering)’의 개념을 살펴보고, 9장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트랜스휴머니즘 개념인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dingularity)과 그 결과를 폭넓게 다룬다. 10장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과 종교 사이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관계와 트랜스휴머니즘이 신 같은 상태로 승천하려는 열망을 살펴본다.(26)”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길가메시 서사시로부터 공상과학소설과 다양한 영역에서의 신기술 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여 트랜스휴머니즘이 전해 새로운 개념이 아닌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대두한 경향에 근본을 세우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으나,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무리하게 엮어서 트랜스휴머니즘의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시도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트랜스휴머니스트 가운데는 저명한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만,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창조론을 믿는 종교인도 있고, 심지어는 근거가 분명치 않은 것들을 믿은 과학자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미래의 생물학자가 실제로 어떻게 인간의 몸을 합성할지는 몰라도, 표도로프는 인간의 창의적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53)” 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실험은 허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불멸이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영생이 가능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허구이 가능성이 높고, 실제 가능한 상황이 도래한다고 하덯도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92년에 일어난 개신교 선교회에서 주장했던 휴거가 결국은 허황된 주장이었던 사건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 이끌려 골라든 책입니다.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생명현상이 종료된 죽음이 잠자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러한 죽음을 깨운다는 것도 묘합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Wisdom of the ancients>입니다. <고대인의 지혜>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이라는 부제가 제목의 뜻을 가늠케 합니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의 저자 닐 올리버는 고고학자이며 역사가입니다. 더하여 영국 BBC에서 20여 년 동안 교양편성의 각본을 쓰고 진행을 맡아온 방송인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들을 돌아보며 고대인들의 삶과 생각들을 유추해냈습니다. 고대인의 지혜랄 수도 있고, 정체성이랄 수도 있는 가족, 지구, , 세입자들, 기억, 공존, 나아가기, 영웅, 이야기, 상실, 사랑 그리고 죽음 등을 주제로 각각 세 꼭지의 글을 써서 모두 36꼭지의 글로 정리해냈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며의 모두에 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는 답을 찾고자 이 책을 썼다. 우리의 짧은 생 안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한 줌의 지혜와 희망을 얻기 위해, 나는 선조들의 세계를 되짚어보기로 했다.(18)”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에 내가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온 한 줌의 씨앗이 있다. 중요하고 값진 것들이 으레 그렇듯 대부분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27)”


역시 고고학을 전공한 경희대학교 사학과의 강인봉 교수가 쓴 추천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유물은 옛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새겨진 조각이다. 고고학자는 그 조각을 통해 역사와 인간을 탐구한다.(8)” 저자는 현생인류가 남긴 유물은 물론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을 거슬러 호모 하빌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등 고인류의 자취에 이르는 광범위한 고고학적 성과를 찾아 인류의 지혜가 발전해온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고고학적 성과들의 현장들 가운데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에 있는 올두바이협곡,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다는 차탈 후유크, 영국에 있는 스톤헨지, 마야와 잉카의 유적 등 한번쯤 찾아가보았거나 자료를 검토해본 곳도 있지만 전혀 생소한 장소도 적지 않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며긴 시간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들이 담겨 있다.(23)”이라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추구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레이 커즈와일이 <마음의 탄생>에서 시간이 흘러도 지속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146)’이라고한 설명을 인용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기억으로 귀결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의 원동력은 바로 기억인 셈입니다. 그 기억은 의식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기억이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에 맞서는 우리의 저항이다(197)”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이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기억으로 귀결되는 셈인데, 그래서인지 기억에 관한 글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기억이란 눕고 싶은 곳에 누워버리는 개와 같다.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의 소설 <의식>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읽어볼 책의 목록에 올려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던 또 하나의 화두 기억을 더욱 천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