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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원재훈 지음 / 가갸날 / 2018년 12월
평점 :
시인이자 소설가 원재훈의 장편소설(掌篇小說)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를 읽었습니다. 엽편소설(葉篇小說)이라고도 하는 장편소설(掌篇小說)은 200자 원고지 30매 내외로 단편보다 짧은 소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인생의 한순간적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적절히 묘사한 소설로서, 사건의 전복적 결말이나 대화의 운행이 매우 지적이고 기지에 차 있어 놀라운 효과를 유발한다. 이야기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자마자 급전하여 결말에 이르는 수법도 간결한 처리로 이루어진다.”라고 장편소설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후기의 첫 머리에 ‘가끔, 나는 손바닥에 글자들을 쓴다’라고 적었습니다. 장편소설(掌篇小說)이라는 글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소설에 담고자 하는 주제를 손바닥에 적어두는 버릇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짧은 내용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해서 담았지만 의미전달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두 40편의 이야기가 ‘태엽감는 쥐’, ‘소원을 들어주는 집’, ‘고양이 상처’ 등의 소제목으로 묶여있습니다. 첫작품 ‘태엽감는 쥐’부터 허를 찌르는 내용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를 희인(喜引, parody)한 작품을 그것도 하록기(河錄基)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여 대박을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록기와 대담에 나선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역시 허를 찌르는 내용입니다. 개들 세상에서 개들이 사람을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 그대로를 담았습니다. 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국의 늙은이여, 대동단결하라’, 역시 젊은이와 늙은이가 반목하는 작금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그런 내용으로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생각해보라. 젊은이들이 의지하는 것은 늙은이들의 사상이었고, 지혜였으며, 경험이었다. 늙은이는 거인이었으며, 젊은이는 거인의 등에 올라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 거인은 쓰러져 버렸다. 오호, 통재라.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32쪽)”
“벌레를 보고 놀라는 소녀처럼, 인생의 어느 날 번개가 떨어진 것처럼,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35쪽)”라는 ‘나만 생각해야겠다’를 여는 첫 문장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쑤시개’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한 대목도 새겨둘만 합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한 시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참 다정하고 착했던’ 그가 보고 싶다면서 “그런데 말이요… 그에게 갈 길이 없네. 갈 길이 없어.” 이어서 작가는 “누군가에게 갈 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47쪽)라고 말합니다.
‘마법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사람들이 표정을 잃어버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두들 힘들고 지친 표정이다. 자신의 진짜 얼굴 대신에 가면을 쓰고 있다.’라고 운을 뗀 주인공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는 그것을 이루게 해주는 마법사임을 밝힙니다. 나아가 아예 ‘소원을 들어주는 집’이라는 소제목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결국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변해버린 세태를 고발하는 그런 내용보다는 변한 세상에서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러 이야기들로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멋대로 해석한 것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