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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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는 전공 탓에 주검과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음을 이해하고 좋은 죽음을 맞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죽음을 이야기는 것을 기피하여왔습니다. 어쩌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근래들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좋은 생각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죽음에 관한 좋은 책입니다. 가정의학과를 전공하고 병원에서 호스피스를 담당하고 있는 저자는 특히 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비참한 죽음의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내고, 좋은 죽음이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수련의 과정을 밟을 때만해도 병원에 왔던 환자도 임종에 이르면 퇴원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통적으로 객사는 피해야 한다고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자들이 퇴원할 때는 수련의가 인공호흡 주머니를 쥐어짜며 집에까지 환자를 모시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임종에 가까워진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연명치료에 매달리려는 환자도 있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아야 병원의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를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끝까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려 애를 씁니다. 갑자기 심정지라도 오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수액줄이나 감시 장치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연명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이것들을 제거합니다.


의료진들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주력하는 이유는 최선을 다해달라는 보호자들의 요청에 따르는 경우고 있고, 혹여 치료를 태만히 하여 의료사고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보호자들이 없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같은 설명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의료계가 환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국민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상세하게 추적하였습니다. 또한 의사조력자살을 비록하여 안락사와 존엄사 등의 개념과 세계적인 현황도 소개합니다. 특히 의료계에서 임종에 가까운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유지하도록 만든 보라매사건의 전말로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 김할머니 사건의 개요도 충분히 설명합니다.


이어서 자연스러운 죽음의 형태를 설명합니다. 필자 역시 환자를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게 되고, 먹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집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죽음을 맞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인데,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집에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최대한 집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임종에 즈음하여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모두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사회에서 변해야할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종합병원에 임종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둘째는 연명의료결정법에 규정된 물과 영양공급 의무조항을 삭제하며, 셋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적극적인 확대, 넷째는 간병 등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한 사회적 대책 마련, 마지막으로 의과대학 교육과정과 병원 수련과정에서 죽음 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며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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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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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이나 삶이 언제 끝날지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 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소설가 로버트 판타노는 남아있는 나날을 글쓰기를 중심으로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따라가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악성뇌종양으로 진단받은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삶과 죽음을 화두로 한 사색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수필입니다. 때로는 치료과정을, 때로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한번쯤 짚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의 삶과 철학을 읽다보면 저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자를 죽음으로 이끈 악성뇌종양은 악성 별세포종양입니다.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받았지만 재발하였고, 교아세포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별세포종양도 양성인 경우에는 일생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악성의 경우는 진단받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에 관한 철학도 흥미롭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취해서 흐느적거리거나 말이 꼬이는 어른들이 한없이 멍청하고 한심해보였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녀 난생 처음으로 술에 취해 보기도 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고 어릴 적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152)”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도 술 마시기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약을 먹지 않아 치명적이지 않다고 보아 술을 마시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도를 넘어 과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반면 젊었을 적의 저는 그러지 못했던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고, 그렇기에 나를 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112)”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도 몹쓸 일도 아니다.(224)’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몸과 머리는 단지 우주로부터 임대한 대여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천지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원자론을 생각하고, 인도에서는 윤회를 생각했습니다. 만물의 삶이 끝나면 형체가 와해되어 구성원자의 형태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새로 삶을 얻은 물체의 구성원이 되는 셈이니, 원자론이나 윤회가 모두 사실인 셈입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방식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서 진실 한 조각을 붙잡기 위해서,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삶과 생명을 쥐어짜내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보기 위해서 나는 덧없는 시도를 또 해보려 한다.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27)”는 방향을 세웠던 것입니다.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저자는 자신이 그동안 쓴 작품들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예전에 썼던 글에서 나라는 사람, 나의 목소리를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감성이나 생각에는 깊이 공명하지만 단어나 문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쓴 것만 같아서 내가 아닌 타인이 쓴 글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천연스럽게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지는 저도 장담할 수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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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존 버거.이브 버거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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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무엇을 배우게 됩니다. 영국 출신의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 등으로 활약한 존 버거는 중년 무렵부터는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에 있는 시골 마을에 살면서 농사일과 글쓰기를 했습니다. 2013년 아내 베벌 리가 사망한 뒤로는 파리 외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떤 그림>을 같이 꾸민 이브 버거는 존 버거의 아들로 아버지의 시골집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한 화가입니다.


<어떤 그림>은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15-16년 사이에 아들 이브 버거와 주고받은 편지 묶음입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나름대로의 답변이 오고 가는데, 주제에 맞춤한 그림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아들이 쓴 서문 격의 글 당신 차례야!’는 시골집 헛간에 탁구대를 들이고 부자간에 탁구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승부는 우리가 탁구를 치는 진짜 이유의 피상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리 운을 어디까지 시험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주고받는 과정을 얼마나 우아한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려는 의지였다. 물론 아주 드물었지만, 때때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 리듬, 그 움직임과 몸짓, 그 타이밍,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 조화로운 단 한 번의 연극이 되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와 똑같은 기쁨과 희망을 품고 그림을 다루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부자 간에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탁구가 부자를 통하게 만드는 장면은 영화 <어바웃 타임>이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이 탁구경기를 통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정어리 매장식>은 사순절의 마지막날 벌어지는 정어리 축제를 그린 것으로 거대한 군중이 만들어내는 떠들썩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 그림에서 존 버거는 소음과 침묵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우리에겐 소음과 침묵이 있구나. 소음은 설명을 덮어버리고, 침묵은 계속해서 현재를 따져 묻는 질문들을 내놓지. 둘 다 온전히 살아 있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아(41)”라고 정리하는 것을 보면, 중용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눈물과도 연관을 짓고 있습니다. “사육제 군중은 자기들 세상을 모욕하며 프란시스코를 부둥켜안고 그의 웃음을 나누고 있어. 그리고 잠시 후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웃음과 상실이 모두 눈물을 불러온다는 것이 흥미롭구나(48)” 사실 기쁠 때나 슬플 때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이란 무언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이라는 화두를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브는 이렇게 답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은 정말로 그림이 짊어진 거대한 배낭 같아요. 끔찍하게 무거운 짐이지만, 이상하게도 화가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경계 너머 보기, 아니 그보다는 외양을 뚫고 내면 보기, 그것을 계속 추구해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이 아닐까요? 시간을 그 뼛속까지 드러내겠다는 목표를 잡는다면, 일생의 헌신 정도는 치러야 할 사소한 대가 같아야. 그림은 충족시킬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희밍이고여. 가망 없는 희망이죠?(65)” 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사명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그림과 서예의 기원이 천상에 있되 그 성취는 인간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천상시각의 관계를 인간촉각의 관계와 비유하면서 이브는 눈을 감고 아버지의 등을 떠올린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등을 떠올리다보면 그 등을 주무르던 손이 그 장면을 선명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보니 어렸을 적에 아버님의 팔 다리를 주물러드리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손 끝에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화가와 미술평론가가 주고받는 그림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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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동서문화사 월드북 162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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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추천한 철학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서문화사의 월드북으로 읽은 <정신현상학>572쪽에 달하는 분량이나 되고, 난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한 책읽기였습니다.


책 말미에 붙여놓은 헤겔의 사상과 <정신현상학>’이라는 글에 나오는 이런 대목이 이해되었습니다. “이른바 작가로서 그의 글솜씨는 칸트처럼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형편없다. 애매하고도 지나치게 점잔빼는 투로 글을 쓰는데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표현이 얼마나 불명확한지 때로는 악마같이 정말로 말해야 할 내용은 숨겨버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애매함을 더욱 애매하게 만들면서 얼렁뚱땅 글을 끝맺어 버린다.(530)”


“‘현상학이 체계적인 구상 아래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기나긴 사색이나 면밀한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집필되기 시작했다고 헤링은 말했습니다. 게다가 출판사의 강한 압박으로 상당도 못할 만큼 짧은 기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글내용이 난삽한 이유를 알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차가 나열된 순서를 보면 헤겔은 자연 그대로의 의식이 참다운 앎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A ‘의식은 감각적 확신, 지각, 오성의 요소로 발전을 시작하여 B ‘자기의식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C ‘이성으로 완성되며, 이는 정신으로 구축되어 종교를 거쳐 절대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절대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종교가 들어가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은 앎이 부족한 저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헤겔이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수준 낮고 단순한 의식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의식에 이르기까지 의식이 거치는 모든 전개과정을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거나, ‘의식을 통한 인간의 자기형성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등입니다.


그런가하면 스토아주의 철학에서부터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제시된 철학적 주제에 대한 비평을 담을 것을 보면 인류의 학문사, 즉 철학의 역사를 담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주에 읽을 예정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헤겔은 정신은 단일한 진리일 때는 의식으로 나타나서 자신의 각 요소를 분해한다(293)’면서 인륜이 참다운 정신이라 하였습니다. 인륜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이 작용하는데, 각각 가족 내에서의 인륜이 국가라는 공동체에 적용될 인륜에 미치지 못하고, 국가 공동체에 적용하는 인륜은 신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륜에 미치지 못한다는 해석입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이후 테바이의 왕위를 놓고 대립하던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전투를 벌인 끝에 서로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테바이를 지키려던 에테오클레스에게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 반면, 외국의 군대를 끌오 테바이를 치러온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방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을 내릴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방치되어 썩어 가는 오빠의 주검을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족으로서의 인륜에 부합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으로서의 인륜이 대립되는 국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인륜을 뛰어넘을 수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예를 갖추어 오빠를 묻는 것은 천륜이라 주장합니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그 법은 어제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히 살아 있고, 그것이 언제 생겨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요(소포클레스, 안티고네, 민음사, 146-147)”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공동체의 인륜이 신의 법칙인 천륜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책읽기에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은 힘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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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한빛비즈 문학툰
SunNeKo Lee 그림, 김성은 옮김, 샬럿 브론테 원작, Crystal S. Chan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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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의 문학툰 연작 가운데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샬럿 브론테 원작의 <제인 에어>입니다. 이 작품도 <빨강머리 앤>처럼 원작을 읽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만화로 그려진 <제인 에어>를 읽고서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8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910년 미국에서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이래 영화와 연속극 등 수십 편의 영상물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등장인물의 성격이 독특한데다가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상물에 대한 평가는 출연한 배우들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었다고 합니다. 뮤지컬과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는데 만화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고아소녀 제인이 외삼촌 집에 얹혀살게 된 제인은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 외숙모와 외사촌들의 학대를 받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평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다가 외숙모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로우드 자선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현실을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엄격한 교육과 열악한 복지로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지만 친구 헬렌과 템플선생님의 덕에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로우드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전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손필드의 로체스터 가에서 아델의 교육을 맡게 된 것입니다. 손필드에서 못생기고 괴짜인 주인 로체스터와의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결혼식에서 로체스터의 본부인이 살아있음이 밝혀지고 두 사람의 결혼은 맺어보지 못하고 파경을 맞게됩니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혼외의 관계를 유지하자고 제안하지만 제인은 무작정 손필드를 떠나고 맙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촌형제들에게 의지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되지만 로체스터와의 운명의 실이 끊어지지 않았던 탓에 손필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인이 떠나있는 사이에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가 일으킨 화재로 건물이 불타고 로체스터도 눈과 한 팔을 잃는 장애를 입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처지가 전만 못한 로체스터지만 제인은 오히려 사랑으로 그를 돌보겠다는 생각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나는 결국 로체스터 씨와 결혼했다라는 유명한 대사는 만화에서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한빛비즈의 만화툰 연작의 <제인 에어>는 샬럿 브론테가 그려낸 제인의 존재를 잘 묘사해냈다는 생각입니다. 외삼촌 집와 로우드 자선학교에서의 핍박받는 환경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손필드에서도 부자인 주인 로체스터와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입니다. 로체스터가 본부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로체스터가 제안한 혼외관계를 거부하고 떠나는 모습도 당시의 영국사회의 현실에서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만화) 제인 에어)에서는 제인이 로체스터와 결혼하고 보낸 10년의 세월을 불과 6쪽에 담아냈습니다만, 제인과 로체스터 부부가 꾸려낸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상태로 조화롭고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행복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한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를 갈고 닦아 성숙해진 다음에 이를 수 있는 경지라는 생각입니다.


원작에 등장하는 로체스터는 못생기고 괴짜라고 하는데 만화에서는 각이 진 얼굴 선으로 그려낸 로체스터는 못생겼다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인은 그런 로체스터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느낀 것을 아닐 것입니다. 많이 압축된 만화에서 챙기지 못한 부분은 무엇일까 궁금해져 원작을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빨강머리 앤>에 비하면 읽는 부담이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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