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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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이나 삶이 언제 끝날지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 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소설가 로버트 판타노는 남아있는 나날을 글쓰기를 중심으로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따라가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악성뇌종양으로 진단받은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삶과 죽음을 화두로 한 사색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수필입니다. 때로는 치료과정을, 때로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한번쯤 짚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의 삶과 철학을 읽다보면 저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자를 죽음으로 이끈 악성뇌종양은 악성 별세포종양입니다.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받았지만 재발하였고, 교아세포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별세포종양도 양성인 경우에는 일생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악성의 경우는 진단받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에 관한 철학도 흥미롭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취해서 흐느적거리거나 말이 꼬이는 어른들이 한없이 멍청하고 한심해보였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녀 난생 처음으로 술에 취해 보기도 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고 어릴 적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152)”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도 술 마시기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약을 먹지 않아 치명적이지 않다고 보아 술을 마시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도를 넘어 과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반면 젊었을 적의 저는 그러지 못했던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고, 그렇기에 나를 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112)”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도 몹쓸 일도 아니다.(224)’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몸과 머리는 단지 우주로부터 임대한 대여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천지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원자론을 생각하고, 인도에서는 윤회를 생각했습니다. 만물의 삶이 끝나면 형체가 와해되어 구성원자의 형태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새로 삶을 얻은 물체의 구성원이 되는 셈이니, 원자론이나 윤회가 모두 사실인 셈입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방식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서 진실 한 조각을 붙잡기 위해서,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삶과 생명을 쥐어짜내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보기 위해서 나는 덧없는 시도를 또 해보려 한다.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27)”는 방향을 세웠던 것입니다.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저자는 자신이 그동안 쓴 작품들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예전에 썼던 글에서 나라는 사람, 나의 목소리를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감성이나 생각에는 깊이 공명하지만 단어나 문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쓴 것만 같아서 내가 아닌 타인이 쓴 글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천연스럽게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지는 저도 장담할 수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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