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2
알퐁스 도데 외 지음, 박정임 옮김 / 부광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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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이라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한 이유를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프루스트 읽기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아무리 목차를 들여다보아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프루스트를 다시 읽다보면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인 까닭에 일부분이라도 읽어볼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인 이 책에서는 모두 9명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생소한 작품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각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오랜 기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목을 중심으로 발췌 번역을 했기 때문에 한 권의 가벼운 분량으로 다양한 작품들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옮긴이가 마지막 작품 <한 줌의 흙>을 소개하면서 작가 헨리 반 다이크가 뭔가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르면 노트에 적어두고 식탁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이 바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될 것을 상정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을 어떻게 키워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작곡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지만, 그의 삼촌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쓴 거야. (…) 음악의 세계에서는 교만해져서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 음악은 겸손하고 성실해야만 돼. 그렇지 않다면 음악이란 신에 대한 불신이고 신을 모독하는 거야.(46쪽)‘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발췌한 내용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이야기의 핵심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소설가 비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다랑어 낚시>는 어느 해 다랑어 잡이가 호황을 이루자 배를 산 어부가 뒤이어온 흉어기를 버티기 위하여 아홉 살짜리 아들을 배에 태우고 먼 바다에 나갔다가 만난 커다란 다랑어를 잡아올리는 과정에서 아들을 잃고 만다는 이야기인데, 돌아온 배에서 아들을 발견하지 못한 어머니가 발작하듯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죽었어.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어. 나도 머지않아 그곳으로 가겠지. 바다로 먹고사는 우리들은 어차피 바다에 먹힐 운명이지. 어쩔 수 없는 거야. 태어난 사람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잖아.(72쪽)“라고 체념한 듯 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절절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겠지요.

 

학교에서 친구의 나이프와 은화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게 된 슈라의 억울한 사정을 그린 미하일 숄로호프의 <신체검사>에서도 엄마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구나. 좀 더 크면,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더 지독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단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으니까(90쪽)”라고 위로 같지도 않은 말로 아들을 달래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외지로 떠난 페르디난트 삼촌이 돈을 많이 벌어올 것이라고 믿는 크누트의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찬 엘스터의 <페르디난트 아저씨>도 결말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찾아온 페르디난트는 2천 크로넬을 맡기고는 다시 고향을 등지고 마는데, 고향에 찾아온 이유도, 다시 고향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벤저민 플랭클린의 <나의 소년시절>은 그의 <자서전>의 일부이며, 아나톨 프랑스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의 소설 <피에르 노젤>의 일부라고 합니다. 전체 이야기를 발췌하여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 골라서 제목도 다르게 소개하고 있어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전체가 아닌 일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읽기에 경험이 별로 없는 탓이지 싶으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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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이강훈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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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 되어 아직까지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고양이 요람>의 저자로 알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7년 4월 11일 생을 마감한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라고 소개되어 큰 기대를 품고 책을 읽었습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은 저자가 1999년에 내놓은 에세이집인데 2011년에 번역이 되었으니 소개가 늦은 셈입니다. 별도 설명은 없습니다만, 닐 게이먼(아마도 영국의 소설가일 듯합니다만)이 2010년 9월에 쓴 서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보네거트 사후에 나온 것을 저본으로 번역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 <고양이 요람>, <제5도살장> 등을 어렸을 적에 읽고 사랑하게 되었고, 나아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힌 그는 기자로 일할 때 보네거트를 인터뷰하려고 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바람에 생전에 보네거트를 만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가   책의 서문을 쓰기 위하여 저자의 방식대로 사후의 만남을 통하여 대화하는 형식을 취하는 독특한 발상을 해낸 것 같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천국의 황금아치 밖으로 나와 완벽하게 다듬어진 잔디밭에서 풀을 깍고 있었다. ‘사후의 만남을 다룬 선생님의 책에 대해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는군’ 그는 말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이보게, 자네 좋을 대로 쓰게나. 난 죽었으니 상관하지 않겠네.’(6~7쪽)”

 

닐 게이먼이 서문에 썼듯이 보네거트는 임사체험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 이미 죽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써냈습니다. 그 가운데는 셰익스피어와 아돌프 히틀러, 아이작 뉴턴과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도 적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작업이 텍사스 헌츠빌에 있는 주립교도소의 독극물주사 사형실이라는 점과  시술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하여 잭 키보키언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독자 가운데 임사체험을 따라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서문에 적은 “천국의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내가 어렵사리 깨달은 것처럼, 그쪽에 있는 인터뷰 대상자가 아무리 매혹적이라도 변덕스러운 성 베드로가 기분에 따라 다시 내보내주지 않을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나폴레옹과 애기를 나누기 위해 천국의 문을 넘으면 당신의 친구와 친척이 얼마나 비통해할지 생각해보라. 사실상 그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니까.(13쪽)라는 구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잭 키보키언은 알츠하이머병 등과 같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가 발명한 자살장치를 제공하여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1990년 최초 시술 이후에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아낸 이래 1998년까지 무려 130여명의 환자를 죽음의 세계로 안내했습니다. 결국 1999년 2급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키보키언은 이 책의 무대가 된 헌츠빌 주립교도소가 아닌 미시간 주 콜드워터 레이크랜드 교도소에 수감되어 8년 6개월간 복역한 다음에 2007년 더 이상 안락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가 2011년 6월 3일 숨을 거두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239880).

 

보네거트는 뉴욕의 라디오방송국 WNYC에서 방송하기 위하여 녹음한 것이라고 전제하긴 했습니다만, 사후의 세계에 만난 사람과 나눈 이야기들을 녹음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헷갈리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때로는 가슴을 울리는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요즘말로 돌직구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를 만나서는 그에게 사람들이 그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모든 희곡과 시를 직접 썼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성 베드로에게 물어봐!(80쪽)”라고 답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사후세계에서 이루어진 죽은 이들과의 짤막한 인터뷰들은 다시 현세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형식이지만 닐 게이먼이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던진 “인생의 목적은, 누가 그것을 지배하든 주변의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7쪽)”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5쪽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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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
양윤선.이소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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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있는 국회에서 무슨 일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에는 일가견이 있다고들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우리나라 국민, 아니 모든 국민들이 정치라고 하면 고개를 내젓는다.(5쪽)”고 하신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신율교수님 말씀에 무조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에 있는 연구소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저는 의료분야에 대한 자문도 하고, 국회의원실과 현안에 대한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조금은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 아니면 굴절된 시각을 가진 누군가를 통해서 듣는 것으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 그들처럼 정치를 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국회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3자적 시각으로 지켜보아온 분들이 대한민국 정치1번지 국회의 진면목을 가감없이 정리한 책이 나왔습니다. 국회방송의 양윤선, 이소영기자님들입니다. 두 분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처럼 적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정치도 재미있는 것이고, 생각처럼 쉽게 욕할 수만은 없는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정치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공유하고 싶었고, 머나먼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정치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17쪽)”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크게 국회가 하는 일과 해온 일을 정리한 ‘국회, 대한민국 정치의 시작’과 국회의원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확대경을 들이댄 ‘국회 들여다보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저자들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 ‘국회방송 기자로 사는 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회의원은 할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세금을 축내는 부류로 치부해왔다.(25쪽)”라는 저자들의 말씀에 대부분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만, 그래도 그 분들은 바로 우리를 대표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고 우리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해임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님의 인사청문회 장면을 인용하여 국회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장관 내정자는 해당부처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기자분들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근래 들어서는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저자들 역시 그 대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인 집단이다. 따라서 정당끼리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싸우지 않는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된다.(93쪽)”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싸움에도 기술이 있고 예의가 있다. 싸움의 목적이 정당을 지지해준 국민들을 수긍케 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생산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에는 금도를 깨는 발언으로 주목받으려고 혈안이 된 분들이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발언은 극단적 추종세력의 카타르시스를 해결해줄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작 얻어야 할 국민들의 마음은 멀리 떠나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거대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라고 하면서도 “다만 나와 같은 정치 무관심 세대가 조금만 더 똘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297쪽)”라고 적고 있어,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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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즈음에 - 우리 시대 인문학자 김열규의 마지막 사색
김열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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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즈음에>의 출간소식에 김열규교수님께서 지난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곁들여져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흔 즈음에>가 유고집이 된 셈입니다. 노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 <메멘토 모리; http://blog.joins.com/yang412/4271393>, <노년의 즐거움; http://blog.joins.com/yang412/12373810> 등을 통하여 그를 만나면서 많은 배움을 얻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남는 것 같습니다. ‘더 오래 사셔서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유고집이 되고 말았지만, 저자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는 와중에도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농익는 목숨 기운’이라는 제목의 여는글에 “새벽녘 해돋이에 맞겨룰 저녁노을 같은 마무리로 아흔이 내일모레인 여든 넘은 나이를 가다듬고 싶다. 아니, 싶은 정도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야 말 것이다.(13쪽)”라는 희망을 담으셨던 것이겠지요. 이렇게 시작한 글은 ‘나이가 든다는 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글쓰기에 기대어’, ‘그리운 시절’, ‘함께 산다는 것’, ‘자연의 품에서’로 이어지면서 아흔을 목표로 한 인생살이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정리해내신 것 같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야말로, 나이 든 사람들 누구나 인생살이에 유종의 미를 꽃피우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13쪽)”라고 여는글을 마무리하신 것을 보면, 이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에 묵직한 무엇을 남겨주시려고 말입니다. 그것도 타계하시기 하루 전까지도 말입니다. 어쩌면 타계하시기 하루 전에는 “내일, 모레, 글피쯤이면 아흔이 될 이 나이에 마음만은 어김없이 나무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소슬하되 다소곳하고, 우람하되 고즈넉하게 노년의 삶을 다듬고 싶다.(225쪽)”라고 마무리하신 닫는글을 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유족들이 고인의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원고가 바로 이 유고집이라고 합니다. 생전에는 미처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선친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들을 묶어 <소운집(嘯雲集)>이라는 제목으로 488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으로 낸 적이 있습니다. 소운은 선친께서 쓰시던 호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자식이 넷이나 되다보니 걱정하실 일이 끊임없이 생기곤 한 삶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남기신 글들은 대부분 평소에 자식들이 바른 생각과 행동을 가지도록 당부하시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제가 술을 많이 줄였습니다만, 선친께서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인정을 하시면서도 술을 이기지 못하는 저를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49재를 지내는 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금주하면서 선친께서 남기신 유고를 정리하였고, 49재를 올리는 날에는 유고집을 영전에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일찍 별도로 써두셨던 것으로 보이는 사세(辭世)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당신께서 살아오신 날들을 정리하시면서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1. 우리 가문(家門)에 대한 긍지(矜持)를 가져라, 2. 근면역행(勤勉力行)하여 질소검약(質素儉約)하게 살아달라, 3. 부모에 효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 4. 제가제일주의(齊家第一主義)로 하라, 등입니다. 이 리뷰를 쓰면서 다시 읽어보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기에 조만간 따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열규교수님의 영애께서는 추모의 글에서 병중에 계신 어머니의 병구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는 냉정하다고 느껴온 선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적었습니다. “엄마에게 헌신하고 몸을 낮추는 아버지는 내게는 작은 경이감의 대상이 되었다. (…) 여든이 넘은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 엄마 수발을 드셨다.(235쪽)” 김열규교수님의 모습과 제 선친 모습이 꼭 겹쳐 보이는 것을  보면 옛날 분들은 마음속에는 뜨거운 사랑을 품고 계시면서도 정작 밖으로는 내보이는 것을 꺼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친께서도 어머니를 당부하시는 대목을 이렇게 남기셨습니다. “애비 기세(棄世) 후에 홀로 남을 너희 모친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온다. 어떠한 전생의 인연으로 나 같은 사람을 만나 (…) 오늘날 이만큼 우리 가정이 성장한 것도 너희들 어머니의 피나는 내조의 공이라 생각한다. (…)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은 마음 편하고 복되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써 달라.”

 

평소 따님께 “우리 각자 열심히 일하자”라는 교수님 말씀은 릴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로댕이 비서로 일하는 릴케에게 “언제나 오직 일하라!”고 당부했다는 부분을 읽고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체코출신인 릴케가 로댕을 만난 것은 27세 때였고, 당시 로댕은 62세로 명성의 절정에 올라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했다고 하는데, 당시 릴케는 영감이 떠올라야 글을 쓸 수 있었던 자신과는 달리 로댕은 작업을 통하여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릴케는 로뎅을 통하여 “값싼 감정에서 벗어나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 앞에서 일하며 대상을 엄격하게 파악하고 묘사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미술평론가 유경희님은 전하고 있습니다.(경향신문 2013년 9월 16일자 기사, ‘[유경희의 아트살롱] 릴케와 로댕의 섬세한 인연’) 그리고 보면 저 역시 잡문 한 줄을 쓸 때도 머리 속에 무언가 퍼뜩 떠오를 때까지 뭉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생각을 구슬려 가다듬다보면 좋은 글이 써진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자가 남긴 말씀들을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즈음이야 주변에서 예순 넘은 분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예로부터 예순 살 이상은 특별한 나이로 쳐왔다. 살 만큼 산, 아니 그러기를 넘어선 나이로 치부해왔다.(21쪽)”라고 적어 예순 나이를 특별하다고 하였습니다. 금년에 예순을 맞는 제 입장에서는 저자의 말씀대로 특별한 나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그 이유는 팔순을 갓 넘긴 저자가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친 이유가 “마침내 하늘을 찌르는 태산준령의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이다. 아흔, 곧 구순을 당당하세 들먹일 수 있는 나이에 다다랐다. 으쓱대고 싶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 우쭐대고 싶기도 하다.(17쪽)”고 적은 것처럼 예순을 넘어야 칠순, 팔순, 그리고 구순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이들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순이 넘으면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정리하고 한 걸음 물러서 여생이나 즐기라는 은근한 강요가 느껴지는 나이입니다만, 여생(餘生)이 마치 쓰다 말고 남은 생애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완전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 <노트북; http://blog.joins.com/yang412/3857206>은 시작부분에서 아름다운 황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강 위로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석양과 붉게 물든 저녁놀을 향해 말없이 노 젓는 남자. 미끄러지듯이 좌우로 갈라지는 물결. 소용돌이를 지는 잔물결을 밀어내는 노.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머리 위를 비상하듯 날갯짓하며 따르는 하얀 백조. 이 배가 도착하는 곳은 강변에 우뚝 서있는 새하얀 집. 그 집의 창가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백발의 할머니..... 어둠이 내리는 황혼을 향하여 나아가는 보트는, 치매환자가 결코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심정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여생을 굳이 여광(餘光)과 비교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생각처럼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 제일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여유가 있는 여생이 더 아름답고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일에서 물러나게 되면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만, 바로 그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겠습니다.

 

두 번째 화두는 ‘죽음’입니다. 저자는 이미 <메멘토 모리>를 통하여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을 “사람의 목숨 그 자체에 관련되어서 직설적으로 쓰이는 죽음이란 낱말은 기피하면서도, 사람의 목숨과 관련이 직접적으로는 없는 사물이나 현상에 관련되어서는 은유법 도는 과장법의 테두리 속에서 죽음이란 낱말을 심하게 과용하고 또 남용하고 있음을 위의 보기 등을 통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목숨에 관련된 죽음의 낱말이 극단적으로 기피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데 대한 역설적인 사례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김열규지음, 메멘토 모리, 72쪽, 궁리, 2001년)”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나아가 저자는 <아흔 즈음에>에서는 “죽음이 마지막 결의이고 도전이게 해야 한다. 머지않아 구순을 내다보는 나로서는 더한층 그래야 할 것이다.(79쪽)”라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화두는 글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고 하면 흔히 책읽기도 어려운데 글쓰기까지 해야 하느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든 그것을 ‘일’, 즉 ‘노동’으로 생각하면 괴로운 법입니다. 세상만사를 ‘일’이 아닌 ‘재미’로 하게 되면 괴로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자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글을 쓰셨던 것처럼 글쓰기를 ‘괴로운 일’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이라고 여기셨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짓기는 잘만 되면 창작이 될 것이다. 잘만 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 남다른 생각을 비로소 지어내는 경지에 올라설 것이다.(85쪽)”라고 적었습니다. 책을 읽고 느낀 무엇을 그냥 나열하다보면 생각이 생기고 그렇게 생긴 생각을 정리해가다 보면 글짓기가 점점 쉬워진다는 느낌이 생길 것입니다. 요즈음 나이 드신 남자 분들이 아내의 치맛자락에 껌처럼 붙어 다니려고 해서 눈칫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아내가 외출할 때는 쿨하게 다녀오라 하십시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혹은 영화를 보고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다보면 벌써 아내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는 어떻게 했느냐는 조금은 미안함이 배어있는 인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따로 또 같이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함께 산다는 것’에서는 작가께서 터득하신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고유의 정(情)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1959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 가수 박재홍이 부른 <유정천리>의 2절의 마지막 대목, ‘유정 천리 꽃이 피네, 무정 천리 눈이 오네’를 인용하여 “유정도 그렇고 무정도 그렇듯이, 우리의 정은 끝이 없을 것이다. 캐고 또 캐고 풀고 또 풀어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157~8쪽)”고 적었습니다. 노래 <유정천리>는 그때 당시에 학교도 다니지 않는 꼬맹이였던 제가 배워 회식자리에서 부르실 노래가 마땅치 않으시다는 선친께 가르쳐드렸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묘한 것은 미운정도 정이라고 하는데, 요즈음은 황혼에 이르러 그 정을 단칼에 잘라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들 합니다. 저자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 쌓는 정에 더하여 나이가 들수록 이웃이 소중해지는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남들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사람다워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사람됨이 제대로 갖추어지는 것(168쪽)”임을 깨닫게 합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극한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른 요즈음 세태에 꼭 새겨들어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 화두는 ‘자연’을 꼽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과의 관계를 넘어 자연에까지 이르렀으니 저자는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되살펴 본 셈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함께 성장해온 저자가 은퇴하고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살아내셨다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하여 “바다며 산, 자연을 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보다 더한 삶의 축복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188쪽)”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바닷가를 거닐고, 또 다른 하루는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저자의 고향은 천혜의 고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다에서 물로 멱을 감고 그리고 산에서는 바람에 멱을 감을 수 있으니 구순에 드실 수 있었을 터인데 혈액암이라고 하는 병마에 붙잡히신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이신 곽진석교수님께서도 추모의 글에 적은 것처럼 아직도 받아야 할 가르침이 남아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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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버그 - 공정한 판단을 방해하는 내 안의 숨겨진 편향들
앤서니 G. 그린월드 & 마자린 R. 바나지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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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한참일 때의 고민 가운데는 저의 생각이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반대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논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습니다. 이런 경향을 인지적 편견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런 경향은 1. 착각하는 자아, 2. 억측에 가까운 예측, 3. 어설픈 경험, 4. 허점투성이 논리, 5. 관성화된 습관 등 다양한 심리적 원인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착각의 심리학; http://blog.joins.com/yang412/12899785>을 통하여 공부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편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인드버그>는 이러한 인식의 편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사회적 맥락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해온 앤서니 G 그린월드와 마자린 R 바나지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태도를 측정할 수 있는 IAT (Implicit Association Test, 내재적 연관검사)를 개발하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편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Blindspot(맹점)입니다. 눈의 망막에 흩어져 있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들로부터 나온 신경다발이 뇌로 향하기 위하여 망막에서 빠져나가는 장소를 이르는데, 이곳에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 도달하는 빛은 뇌의 시각영역에서 인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좋은 사람들의 숨은 편향’입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편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숨은 편향이란) 사회 집단에 대한 ‘지식 조각들’이다. 이 지식 조각들은 뇌에 저장된다. (…) 숨은 편향은 일단 정신 속에 자리 잡으면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을 향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영향을 전혀 모른다.(15쪽)” 저자들은 우리말 제목 <마인드버그>는 “뿌리 깊이 박힌 사고 습관이 사물을 인식하고 기억하고 추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킨다는 의미(24쪽)”를 담은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인드버그는 인류가 환경적 압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사회적 선택의 기제로 발전시켜온 것이라는 진화론적 설명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마인드버그’의 정체와 작동원리, 마인드 버그가 개인에 미치는 영향, 마인드 버그 찾기와 다루기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인드버그가 이성적 사고의 해안선을 침식하고 더 나아가 정당하고 생산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침식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적 정신과 회적 행동에 격차가 발생하는 근원에 자리 잡은 마인드버그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46쪽)”인 것입니다. 제3장에서는 내 안에 숨겨진 마인드버그를 찾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는 IAT입니다. 처음 제시되는 문제는 곤충과 꽃 그리고 기분 좋은 단어와 기분 나쁜 단어들을 각각 두 그룹으로 묶어서 표시하는데 처음에는 곤충과 기분 좋은 단어 그리고 꽃과 기분 나쁜 단어로 각각 같이 묶어서 표기하고, 이어서는 조합을 바꾸어서 곤충과 기분 나쁜 단어 그리고 꽃과 기분 좋은 단어를 각각 같이 묶어서 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의 테스트를 시행하면서 소요되는 시간을 초 단위로 재서 비교해보면 두 번의 테스트가 유의하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검사에 응하는 사람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편향적 사고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검사에는 기억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기억은 저마다 질감을 갖고 있고, 우리는 감촉으로 비단의 질을 판단하듯 기억을 ‘느낌’으로써 그 질감을 판단한다. 이름에 대한 익숙함은 기억에 특정한 질감을 부여한다. 유명하지 않지만 낯익은 서배스천 바이스도르프 같은 이름의 경우 이런 익숙함이 혼동을 불러온 것(160쪽)”이라고 합니다. 즉 최근에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유명인과 같은 그룹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인드버그의 효과를 제거하기 위하여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채점을 할 때 이름을 가리는 것과 같이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표시를 가리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제한점이 있습니다. 내일이면 개막하는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피겨스케이팅시합의 채점방식이 마인드버그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방향의 마인드버그가 작동해서라도 우리나라의 김연아선수가 좋은 성적으로 우승을 거두기를 기대합니다.

 

저자들은 마인드버그를 속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상적인 내집단의 선호에 따라 의도치 않게 외집단이 불이익을 겪는 것이 가장 골치 아픈 일이이라서 부제에 들어 있는 ‘좋은 사람들’에는 이와 같은 숨은 편향이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하여 편견을 배제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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