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무엇인가 살림지식총서 338
이향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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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번역에 대한 관심도 같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송준호교수님의 <좋은 문장 나쁜 문장; http://blog.joins.com/yang412/3391769>에서 좋은 번역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돌아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 4종류이고, 13종의 전문서적의 집필에 참여해왔으니 적지 않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문서적의 경우에는 번역서도 있을뿐더러 외국자료를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초벌 번역이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번역은 마쳤지만, 빛을 보지 못한 책도 몇 권 책상 어딘가에 처박혀 있기도 합니다. 처음 번역을 할 때는 원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무래도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 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겨 보겠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한 셈입니다만, 이향교수님의 <번역이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1. 번역이란 무엇인가, 2.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3. 번역능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4. 직업으로서의 번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번역이 필요했을 터이니 번역가라는 직업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쉽게 정의가 가능할 것 같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저자는 ‘번역은 일의적(一義的)으로 정의가 불가능하다’라고 답합니다. 결국 번역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및 문화에서 결정하는 범주 안에서 번역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번역 개념은 아포리아(aporia)이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포리아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해 대화의 상대를 궁지에 빠뜨린 소크라테스에서 유래한 그리스어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17쪽)

 

저자는 결국 번역의 정의를 명쾌하게 하지 못한 채 번역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번역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번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정리하지 못하는 가운데 ‘좋은 번역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번역문의 충돌하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번역문을 논할 때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이라는 비유가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원문에 충실하지 않더라도 이국의 작품을 최대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페로 다블랑쿠르라는 번역가가 유려하고 가독성이 높은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당시 대학자 메나쥐가 1654년경 “그의 번역은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이었다.”라고 비판한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린 대로 원저자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번역가에게는 ‘1.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간다, 2.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간다,’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선택은 가독성은 떨어지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원문에 다가서는 수고를 하게끔 하는 번역, 즉 원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번역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가독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하는 번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원문의 성격에 따라서 번역자의 선택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좋은 번역이란 “다양한 변수를 적절히 충족시키며,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번역이다. 따라서 가독성과 충실성 개념을 상화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관건.(44쪽)”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호주의 번역학자 핌(Pym)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좋은) 번역사는 첫째, 하나의 원문을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그중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번역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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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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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기도하는 심정으로 한 주일을 보내는 가운데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실종된 탑승객들이 환하게 웃으며 돌아오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인재로 밝혀진 무수한 사건 사고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안전한 사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극단 ‘산울림’이던가 무대에 올린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본 것이 70년대 중반, 그러니까 대학 연극반에서 동아리활동을 할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 희극을 많이 무대에 올리던 터라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유복한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익혔고, 트리니티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할 정도로 어학에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1933년 부친 사망 이후 유럽을 방랑하다가 1937년 파리에 정착했는데,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숨어서 레지스탕스운동을 돕는 한편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베케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바로 1953년 무대에 올려진 <고도를 기다리며>가 성공리에 무대에 올려지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영국의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이 ‘반연극’ 또는 ‘부조리 연극’이라는 새로운 연극사조의 등장을 알리면서 헤럴드 핀터, 에드워드 올비 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무대에서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저 역시 ‘고도’가 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 희곡으로 만난 ‘고도’는 무엇이든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은 앞서도 말씀드렸던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안전한 사회를 기다리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한적한 시골길에 서 있는 한 그루 앙상한 나무 아래서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다가 이제 그만 떠나자는 말이 나오면서 이들이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떠날 생각을 접고 다시 기다리는 사이에 포조와 그 종자인 럭키가 등장하는데 그들도 고도가 아닙니다. 네 사람이 뒤엉켜 또다시 의미없는 말을 한바탕 주고받다가 포조와 럭키가 떠난 다음에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이 모습을 나타낼 때 에스타라공이 ‘또 시작이구나’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두 사람이 고도를 기다린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어제 오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가 ‘너 어제도 오지 않았니?’라고 물었을 때, 처음 온 것이라고 답변하는 것을 보면 애매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두 사람이 오랫동안 고도를 기다려온 것이 분명합니다.

 

1막과 2막으로 구성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역시 시골길에 서있는 나무 아래서 두 사람이 만나 고도를 기다리다가 해질 무렵이면 잠자리를 찾아 떠났다가 다음날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는 기본구조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3막이 있다면 역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영화가 있습니다. 해롤드 래미스 감독이 1993년에 발표한 <사랑의 블랙홀>입니다. 원제목 ‘Groundhog day’는 우리나라의 입춘에 해당하는 날로서 봄맞이 축제가 열리는 펜실베니아 펑츠토니에 나간 기상캐스터가 폭설로 도시에 갇히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와 꼭 같은 일이 반복되는, 즉 시간의 쳇바퀴에 갇히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절망하던 주인공은 결국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해서 자신의 계발하고,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면서 영원히 반복될 것 같던 시간의 쳇바퀴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때는 날짜만 바뀐 것이 아니라 자신도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남을 섬기는 만인의 친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에게는 변화가 생기게 될까요? 1막에서는 앙상하던 나뭇가지가 잎으로 뒤덮여 있고, 포조와 럭키의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데, ‘그럼 갈까’라고 말하는 블라드미르에게 에스트라공이 ‘가자’라고 대답하면서도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지문을 남겨놓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여전히 고도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연출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이해했는데, 희곡을 읽어보니 대부분 작가가 지문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마틴 에슬린이 말하듯 작가가 만들어낸 비극 속의 희극을, 동시에 희극 속의 비극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새겨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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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앨런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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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장성해서 의업을 잇게 된 큰 아이는 말을 늦게 배웠습니다. 곤지곤지와 같이 아이를 어르는 짓을 해도 쉽게 따라하지 않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옹알이면서 무언가 손짓을 하곤 했습니다. 혹시나 자폐성향이 있나 해서 마음 조리며 지켜보던 기억이 납니다. 걷는 것도 늦어서 돌이 지나서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늦었던 말문이 트이고 나서는 금세 말이 늘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책장에 꽂아둔 화집을 펼쳐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처럼 건너뛰는 디딤판으로 사용하는 등 남다른 놀이를 혼자서 즐기기도 해서 걱정이 남기도 했습니다. 뜬금없이 큰 아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얼마 전에 들은 학교 선배님의 걱정 때문입니다. 손자 아이가 성장이 더디고 말이 늦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아이 이야기를 해드리면서 늦되는 아이도 또래 아이들을 빠르게 따라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 현대의학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담은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가 의학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여 문제점들을 발굴하여 집대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저자가 세운 나름대로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들만 선별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바로 문제점을 짚을 수 있습니다만, 건강우려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의 경우 쉽게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의사라고 하시는 분들 역시 이런 종류의 책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파고들어 보면 의사이기는 하지만 전문영역이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근심과 고난마저 정신병으로 둔갑하는 시대, 범람하는 정신 장애에서 현대인을 구원하라!’라는 카피가 달린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을 받아들었을 때, ‘한 정신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라는 부제가 없었으면 앞서 말씀드린 종류의 책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앨런 프랜시스교수는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코넬 의과대학의 외래병동 책임자를 거쳐서 듀크대학교 정신의학부 학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신장애진단편람 3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DSM-III)와 3판의 개정판(DSM-IIIR)을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하였고, 정신장애진단편람 4판(DSM-IV)의 작성책임을 맡아 팀을 조직하고 이끌어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DSM-IV를 정리하면서 저자가 주도하는 팀이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서 정신장애를 정의하고 진단기준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 속도가 눈부시다 보니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남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DSM-5가 요구되었습니다. DSM-IV를 끝으로 공적활동을 정리했던 저자는 DSM-5에서는 정신장애의 진단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되어 정신질환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그 이면에는 정신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에 DSM-5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은 저자의 이러한 의도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의 우려는 머리말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DSM-IV를 작성하면서 정신질환의 진단과열현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강박적일 정도의 기법을 적용하여 보수적인 결과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폐증, 주의력 결핍장애, 소아 양극성 장애의 세 가지 정신장애가 유행하는 현상을 예측하지도 막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비교적 조심스럽게 작성된 DSM-IV이 결과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았는데, 방만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DSM-5가 가져올 결과는 한 마디로 끔찍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DSM-5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오진할 것이고, 진단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며,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을 장려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데이터가 포함된 자폐증의 경우는 심각한 것 같습니다. DSM-IV 이전에는 극히 드물어, 아이 2,000명에 한명 꼴로 진단을 받았던 자폐증이 지금은 미국에서는 80명 중 한명 꼴로 뛰었고, 더 놀랍게는 한국에서는 38명 중 한명 꼴로 뛰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습니다만, 예방접종이 자폐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부모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게 되었던 것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는 신호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부모들은 자폐증을 의심하고 병원순례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아내고 치료를 시작해야 안심하게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요? 불과 20년 만에 자폐증의 유병률이 20배나 증가한 것은 진단 관행이 급변한 것이지 아이들이 갑자기 더 자폐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정신병이 정상을 잠식하다’에서는 정신장애라는 진단을 붙이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 ‘정신 질환에도 유행이 있다’에서는 정신질환의 역사적 흐름을 살피고 있습니다. 마귀 들림에서 다중인격에 이르기까지 과거에 유행하던 정신질환 진단에서부터 자폐증에서 사회공포증에 이르기까지 요즈음 유행하는 진단명, 그리고 건망증에서 폭식장애에 이르기까지, 곧 불어 닥칠 것으로 예견되는 진단의 의미를 짚고 있습니다. 3부 ‘범람하는 정신장애로부터 나를 지켜라’에서는 정신진단 인플레이션을 바로잡는 방법에서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전공한 병리학은 우리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해당 장기에 생긴 변화를 진단하는 학문입니다. 당연히 정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비정상이라고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을 익히기 위하여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자궁경부암을 진단하는 경우처럼 전암성 변화에서부터 완전하게 암이라고 진단하게 되는 변화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단계적으로 똑 떨어지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전문가들끼리 모여서 진단의 눈높이를 맞추고 진단기준을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경우도 누구나 동의할 수준의 진단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정상과 비정상은 연속되는 스펙트럼 가운에 어딘가에 존재하는 경계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고, 기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미터법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면 기준을 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P. 크리스의 <측정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035187>에서는 고대로부터 측정법이 발전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하고, 인쇄술 이후 인간의 창의력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여겨지는 미터법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랜시스교수는 다양한 학문적 영역에서 정상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로부터, 철학, 통계학, 의학, 정신의학, 심리학 등으로 점점 좁혀 가보지만, 궁극적으로 정신장애가 질병인지, 신화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호접몽에서 깨어난 장자가 자신과 나비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정신의학은 생물학적 검사법이 없기 때문에 정상/질병 경계를 조작하는 행위에 유달리 취약하기 때문에 제약사의 약삭빠른 마케팅에 쉽게 좌지우지되는 주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65쪽)

 

프랜시스교수는 정신질환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일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짧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주술사가 질병의 치료를 담당하던 고대로부터 히포크라테스시대를 거쳐 린네가 생물들의 소속을 찾아준 분류법을 도입한 것을 계기고 하여 필리프 피넬이 정신질환을 분류하기에 이르렀고,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하여 DSM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9772557>에서 광기를 이성의 대척점에 서는 비이성으로 보고 시대에 따라서 광기를 보는 사회적인 시각의 변화를 살펴보면 정신질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2486806>에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수집, 처리에 관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은 여기에 더하여 수집된 정보를 분류하여 종합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류의 역사>에서는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신화학, 수도원 생활, 인쇄의 역사, 과학적 방법, 18세기 분류학,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도서관 사서직, 초기 컴퓨터 역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으로부터 자료를 뽑아, 결국은 인류가 살아남아 현세에 이르게 되기까지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정보처리에 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의학에서의 질병분류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방법을 구하고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병을 진단하는 기준을 정하여 같은 눈높이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함으로써 여기에서 얻어지는 자료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질병분류 체계는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의사라면 누구나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의 증상이나 검사결과 등에서 기존의 질병과 다른 점을 추출해서 임상적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쌓이게 되면 새로운 질병이 분류체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병분류체계가 보수적으로 운용되다 보면 새로운 질병의 추가가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 후보군을 내놓은 의사들이 반발하게 됩니다. 이런 반발이 커지다보면 새로운 질병을 확대하는 진보적 성향이 세를 얻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하게 되면 그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나아가 질병의 초기단계에서 적용하면 완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질병의 초기단계에 새로운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진단기준을 완화하려는 압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바로 DSM-5가 진보적 시각에서 개정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정신의약품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단 인플레이션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합법적 향정신성 의약품 산업은 그릇된 정보를 공격적으로 퍼뜨림으로써 번영을 일구어왔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하여 제약회사의 마케팅전략을 차단하고 부작용이 큰 약은 퇴출시키며, 적절하지 않은 처방을 남용하는 의사도 단호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정신과 진단은 정신과 의사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라는 폭탄선언도 불사합니다.

 

진단기준의 완화로 인하여 정신장애가 범람할 위기상황을 맞아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저자가 정리해둔 <정신과 상담을 받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을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신장애 진단은 의사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의사의 협동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선 정신 장애 진단의 열쇠는 환자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는데서 출발하는 자기보고(self report)에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나타난 증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진단을 스스로 검토해봅니다. 다만 섣불리 자가진단을 내리지 말고, 유행하는 진단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이때 가족이 동행해야 합니다. 진단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납득되지 않을 때는 다른 의사를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제약회사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자연이 치유력을 발휘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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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 나쁜 문장 살림지식총서 376
송준호 지음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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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까지 치면 벌써 네 번째 책이 됩니다만, 교정지를 받아들 때마다 마음에 차지 않는 구절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편집하시는 분들은 오탈자가 없다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은 손을 봐야 안심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특히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바로 맞춤법입니다. 한글 프로그램이 개선되면서 맞춤법까지도 표시를 해주고 있어 크게 도움이 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헷갈리기도 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맞춤법을 제대로 공부했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고, 그 사이 맞춤법이 개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정된 맞춤법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개정된 맞춤법을 제대로 안내하는 책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송준호교수님의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은 좋은 참고서가 되었습니다. 송준호교수님은 이미 <나를 바꾸는 글쓰기; http://blog.joins.com/yang412/13370247>를 통해서 만나본 적이 있어서인지 책읽기가 수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많이 읽어보고 자주 써보라”라고 답을 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진리라서 “에이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라고 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제가 찾아낸 좋은 문장을 쓰는 비결은 “낯설거나 생뚱맞지 않게 쓰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 표준어 규정에 맞는 단어를 골라서 주어와 서술어가 조화를 잘 이루도록 연결할 줄 아는 능력(5쪽)”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쓰기에도 틀이 있다는 것인데 ‘그의 생각은 나에게 감동이었다.’와 같이 실제로는 이런 틀에서 벗어난 문장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평소 주고받는 말을 글로 옮긴 구어체의 문장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일 것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교수과정에서 혹은 책읽기를 통하여 발견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좋은 문장을 쓰는 법을 <좋은 문장 나쁜 문장>에 담았습니다. 예문을 가져다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면 어떻게 다듬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개선된 문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고유의 전통문화를 중요시하게 생각한다.(25쪽)’라는 문장에서 ‘고유’와 ‘전통’에 담긴 뜻이 일부 중복되며, ‘중요시(重要視)’의 ‘시(視)’에도 ‘바라보다’, ‘생각하다’의 뜻이 들어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고유의 문화를 중요시하다, 혹은 ’전통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저 역시 문장을 길게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길면 잘 쓴 문장이라고 착각하는 버릇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정을 볼 때면 이어붙인 문장을 잘라서 짧게 만드는데 골몰하기도 합니다. 문장이 짧으면 읽어서 이해하기 쉽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법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작성한 보고서를 보신 선생님께서는 두 가지를 지적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첫 번째는 가급적이면 복문으로 쓰지 말고 단문으로 써라, 두 번째는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말라, 묶어서 한 번에 표현하거나,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 바꾸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영어문장을 쓰는 원칙은 우리말 문장을 쓰는 요령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뜻이나 모양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는 건 전달하려는 것을 필요 이상 강조하거나 문장에 멋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쓰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읽는 이를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26쪽)”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어 더 많은 것들을 리뷰에 남겨두고 싶었지만, 번역문에 관한 내용만 추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전문서를 몇권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나온 책보다 영국에서 나온 책을 번역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문장이 길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추장에 버무린 파스타’라는 제목을 읽으면서 정곡을 찌른 제목이다 싶었습니다. 요즈음 퓨전 음식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되어 파스타에 고추장 양념이 주목을 받는다고는 합니다만, 외국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면 아무래도 읽을 때 겉도는 느낌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직역해서 만든 초벌번역을 읽어가면서 부드럽게 손질을 하기도 합니다. ‘가정주부로서의 생활자세의 검소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여러 차례 수정하여 ‘가정주부는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라는 문장에 이르는 과정이 쉽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좋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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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K.G. 캠벨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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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서울에서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를 촬영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미 초능력을 가진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의 슈퍼히어로들이 S.H.I.E.L.D.의 국장 닉 퓨리의 주도 하에 팀으로 뭉쳐 로키와 치타우리 종족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2012년 주목받았던 <어벤져스>의 후속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이런 슈퍼히어로는 우연한 사고를 통해서 혹은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한 초능력을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점에서 악당들과 차별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에 소품으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321642>의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신작동화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는 바로 사고로 초능력을 얻게 된 다람쥐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벌이는 특별한 활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다람쥐가 주인공인 셈입니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플로라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오히려 이혼한 아버지와 의기투합하는 냉소적인 소녀입니다. 플로라의 이웃에는 틱햄씨네가 살고 있는데,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날 마침 투티부인의 종손자 알프레드 슬리퍼가 집에 와 있어 이야기에 끼어들게 됩니다. 알프레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재혼한 어머니와 불화를 일으켜 종조할머니집에 와있는 것이었는데, 일시적인 충격으로 인하여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플로라네 집과 틱햄씨네 집 그리고 아빠와 함께 갔던 도우넛 가게에서 소란이 생기는 바람에 찾아가게 되는 블런더미이센 출신의 미이스챔박사의 집이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틱햄씨가 아내의 생일날 선물한 강력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다람쥐가 그만 죽고 말았는데, 플로라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나면서 청소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시를 쓰는 초능력을 얻게 됩니다. 평소 엄마가 질색하는 ‘놀라운 인캔데스토의 번뜩이는 모험’이나 ‘당신에게도 터질 수 있는 끔찍한 일들!’과 같은 만화에 심취해 있는 플로라에게는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플로라는 초능력을 얻게 된 다람쥐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마침 딸을 만나러 온 남편에게 다람쥐를 죽여서 땅에 묻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슈퍼히어로 이야기에 없어서는 안될 악당역을 엄마가 하게 되는 셈입니다.

 

다람쥐를 데리고 아빠를 따라나선 플로라와 알프레드 그리고 아빠는 일단 도넛을 먹기로 하는데, 도넛가게의 여종업원이 다람쥐를 발견하면서 소란을 빚게 되고 결국은 미이스챔박사의 상담을 받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뜯어보면 플로라의 가족이나 알프레드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빚고 있어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들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가 조금씩 정체가 드러나고, 율리시스와 미이스챔박사의 적절한 중재로 문제를 해결할 고리를 찾아내게 된다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플로라의 어머니는 “나는 평범했으면 좋겠어. 나는 명랑한 딸을 갖고 싶어. 친구들을 사귀는건 좋은데 다람쥐를 친구로 두는건 싫어. 나는 내 딸이 사랑받지도 못하고 체상의 외톨이가 되어 버리는 거 싫어.(235쪽)”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플로라는 좋은 쪽으로 별난 아이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소리가 많아지고 그런 딸을 두둔하는 남편과도 사이가 점점 벌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나친 사랑은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저 자신도 그런 점은 없는 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플로라가 좋아하는 만화와 재미있는 삽화가 눈길을 붙드는 바람에 잠시 쉬어가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책읽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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