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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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것과 연극의 바탕이 되는 희곡을 읽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연극이 연출에 의하여 해석되고 배우들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을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곡은 모든 연극적 요소들이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대하여 성격을 부여하고, 무대장치와 대, 소도구들이 안배된 무대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배우들이 주고받을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게 되면 쉽게 빠져들 수 있지만 공연을 미리 보지 못한 희곡 작품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막상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려고 보니,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업극단이나 대학극단에서도 자주 올리던 레파토리인데도 저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젠 이오네스코는 ‘부조리극의 기수’라고 불릴 만큼 부조리극을 써낸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는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카프카 등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이라고 부조리극을 설명하고 있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http://blog.joins.com/yang412/13393269>가 효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를 우리말로 옮김 오세곤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부조리극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부조리극은 비록 관객들이 현실로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기존의 연극이 ‘사실임 직한 비사실’을 추구하는 데 반해, 부조리극은 ‘비사실임 직하지만 엄연한 사실’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186쪽)”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소개하고 있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집 <대머리 여가수>에는 표제인 「대머리 여가수」와 함께 「수업」 그리고 「의자들」 등 세편의 희곡을 싣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세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불합리한 의사소통에 의해 결국 살인까지 이르는 언어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의자들」은 언어의 허구성과 공허함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189쪽)”

 

사실 무대를 설명하는 지문이 온통 ‘영국식~’으로 시작하는 「대머리 여가수」는 무언가 비비꼬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서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내 등장인물들이 뱉어내는 대사들이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묘하게도 말꼬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스미스씨의 엉뚱한 대사 가운데 가슴 저미는 장면이 있어 꼭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같이 회복되지 못하면 환자랑 같이 죽어야죠. 양심적인 의사라면. 선장은 파도 속에서 배하고 같이 죽잖아요. 혼자 안 살아남고.(13쪽)” 영국의 뱃사람들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일이기는 하지만 승객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의사와 비교해서 환자를 고치지 못하면 의사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수업」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치통을 호소하는 학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에 예정된 교과를 강행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오늘날 경직되어 있는 사회제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학생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교수 역시 교수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헷갈리게 만드는데, 정작 문제는 교수가 매일 살해한 학생이 마흔 명 째에 이르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교수나 교수댁 하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했다는 정황은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안전망의 구조적 문제점이 연상되었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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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라파엘 보넬리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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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도 벌써 두 주일이 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하나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어 어느 젊은 이 말대로 우리는 미개한 나라에 살고 있음이 들림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하나 제 몫을 하는 사람이 없고,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남을 탓하는 습관이 몸에 밴 민족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제 몫을 해내면 사고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설사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다!’라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가톨릭 정신이 새삼 생각나게 합니다. 가톨릭 정신도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우리 사회를 일깨우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 전문의인 저자 라파엘 보넬 리가 쓴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입니다. 원제가 ‘자기 잘못이다’라고 번역되는 <Selber Schuld!>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을 남의 탓으로 미루거나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즉 억압하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잘못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 고통에서 가장 쉽게 벗어나는 방법이고, 잘못의 인식을 억압하여 회피하는 것이 다음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쉽게 자신의 잘못을 피해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전문서적에서 ‘피해자의 덫’이라고 일컫는, 정신적인 막다른 골목이기 때문(5쪽)”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자신의 죄를 의도적으로 숙고하게 함으로써 치료로 유도하려는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쓰게 된 것이고 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질책함으로써 병적인 죄의식을 더 많이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여지를 넓히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얻게 되는 심리적 고통은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하여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1. 내인성 장애로 인한 경우로 뇌의 신진대사가 비정상으로 작동하여 엉망이 된 결과 생기는 고통입니다. 정신분열증이나 내인성 우울증과 같은 경우로서 당사자나 주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2. 반응성 장애인데, 외상 혹은 정신적 충격(외상)으로 번역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연 재해나 타인에 의하여 뿐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3. 정신신경증이라고 번역되는 노이로제(neuroses)에 의한 경우입니다. 저자는 마지막 세 번째 원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정신신경증에 의한 심리적 고통의 특징은 “자아가 자신의 내면으로 얽혀들고, 갈수록 자신의 주위를 맴돌아 결과적으로 완벽주의, 자기집착, 엄살, 감상, 피해자 의식, 자기연민이 따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동안의 심리치료가 실제로는 환자들의 죄의식을 없애줌으로써 아예 양심에 거리낌 없는 행동을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당사자의 무죄변명에 급급해온 기존의 심리치료를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45명의 환자사례를 분석하여 치료효과를 설명하고, 문학작품 가운에 사례에 적합한 주인공들의 모습과 대비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은 죄를 저지른 후에 책임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해석하는데, 그 판단 기준은 자신의 욕구와 심적 상태에 두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21세기의 심리치료의 현장에서 이런 사례들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미루는 경향이 심각해지는 것은 어쩌면 사회가 갈수록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연히 강박성 노이로제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 역시 나 자신은 늘 옳은 판단을 하는데, 남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일상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한 점을 바로 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결론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세계문학에 등장하는 아홉 가지의 운명을 소개하고, 그 운명의 인간들이 죄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죄를 변화시켜 실패를 결실로 만든 경우, 두 번째는 자신들의 죄를 인정할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들, 세 번째는 자신을 중심으로 맴돌며 죄를 억압하고 공격적으로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는 식으로 도피하는 우울한 인간들입니다. 저자는 죄를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결국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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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 현대 중국의 건설자
에즈라 보걸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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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북경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9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만해도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였지, 불과 10년 뒤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철의 장막에 숨겨진 나라 소련과 비교하여 죽의 장막에 숨겨진 나라라고 불리던 중국의 문을 열어 개방하고 국가의 체질을 개혁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핵심인물은 덩샤오핑이라고 합니다. 1904년 8월 22일 태어나 1997년 2월 27일 92세를 일기로 사망한 덩샤오핑의 삶과 정책적 과오를 담은 <덩샤오핑 평전>을 읽게 된 것도 남다른 인연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10년 전쯤이던가 택시를 타고 가는데 운전하시는 분께서 백미러로 저를 바라보더니 등소평을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는 분께 이 이야기를 했다가 “전혀 아니거든요?”라고 핀잔을 들은 것처럼 당시에는 저 역시 “그런가요?”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덩샤오핑 평전>을 읽으면서 외모는 지인의 말대로 ‘아니올시다’인지 모르겠지만, 내면적으로는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10년 전 택시기사님께서 ‘저의 관상을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셨나보다’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덩샤오핑 평전>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페어뱅크 센터와 아시아센터의 소장을 지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동아시아문제 전문가 에즈라 보걸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이들은 “이 책은 덩샤오핑에 대한 단순한 평전이나 전기가 아니라 중국 전체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혁기를 단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의 형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에 대한 기록이면서도 기존의 덩샤오핑 평전 또는 전기에 관한 저작물과 크게 다르다(1092쪽)”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어 번역판에 붙이는 서문에서 저자는 “중국의 변화는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 변화의 본질을 한국인들이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적었습니다. 현재도 중국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국가의 핵심국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그 속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는 중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 붙어 있는 우리나라가, 특히 중국의 심장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으로 맞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116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옮긴이들이 정리한 전체의 얼개를 미리 조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전체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덩샤오핑의 인생 경력,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덩샤오핑 시대 개막, 덩샤오핑 시대, 덩샤오핑 시대에의 도전, 덩샤오핑의 역사적 위치 등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덩샤오핑 주도하에 개혁 개방이 시작된 1978년 전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1092쪽)”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만, 중국 공산당의 혁명 1세대를 이끌었던 마오쩌둥은 변덕이 심하고 누구도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마오쩌둥은 매력적이고 거시적 안목과 지혜를 갖춘 탁월한 전략가였기 때문에 재능 있는 군인 장제스와 대륙을 놓고 불리하게 시작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또한 영리하고 교활한 권모술수의 대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마오쩌둥 같은 스타일의 지도자를 모시려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는 고도의 생존기술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반대의견을 내놓는 것은 물론,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엎드리는 것도 의심을 사서 몰락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마오쩌둥에게 충성을 다한 덩샤오핑도 세 차례나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나서 실각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지로 내몰리지 않고 결국은 돌아와 마오쩌둥 사후에 대권을 장악하는 뚝심을 보여 오뚝이를 의미하는 부도옹(不倒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위기상황에서 분노하거나, 달아나거나, 포기함으로서 자멸의 길을 밟았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덩샤오핑은 “노골적으로 분노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며, 감정에 따르기보다는 당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조심스러운 분석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43쪽)”시킨 결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지금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오면서 편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여전히 제가 이 시대에 태어난 소명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일이 무슨 일이 될 지는 저도 아직 가늠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현안에서 미래에 해야 할 일을 골라내는 눈은 여전히 밝은 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을 이끌고 장제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1949년에는 청나라 말기에 외국에 할양되었던 대부분의 영토를 되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소련의 도움으로 현대적인 공업건설에 착수하여 1956년에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1966년 시작되어 마오쩌둥이 사망하던 1976년까지 이어졌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주도하여 중국을 정체와 혼돈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요소가 공산당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소련의 수정주의가 중국에까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여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함이라고 천명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자본가와 지주는 물론이고 지식인들까지도 모조리 제거되어 국가운영의 동력이 꺼질 위기에 봉착했던 것입니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967년부터 1973년까지 하방(下放)되어 있던 장시(江西)에서 지내는 동안 중국사회의 모든 체제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다듬는 한편, 마오쩌둥에게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 끝에 문화혁명으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을 정돈할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덩샤오핑의 국정 운영에 관한 철학 가운데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덩샤오핑은 효과적인 국가 정부를 조직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정 부처에 지도자를 배치하고 그들에게 실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155쪽)” 즉 각급 기관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함으로써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중국은 영토가 넓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의사결정체계를 운용하다보면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오쩌둥의 죽음에 임박해서 국정을 정돈하는 임무를 맡아 당지도부를 강화하고, 군대와 지역을 정돈하여 원활하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교육제도의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칭화대학을 둘러싸고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과 충돌을 빚으면서 다시 실각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76년 4월 5일 텐안먼 광장에서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고 덩샤오핑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자리를 차지한 화궈펑이 마오쩌둥 사후에 사인방을 체포하면서 덩샤오핑은 재기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원로들의 요구에 따라 1977년 현업에 복귀하게 되는데, 이때 덩샤오핑의 나이는 일흔 두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젊어졌습니다만, 원로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할 때입니다. 오랫동안 쌓인 경험이 정책결정의 바탕이 되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보수적인 방향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이 처음 착안한 것은 지식계층의 확대였다고 합니다. 낙후된 중국의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젊은 지식인들의 양성이 시급한 과제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과학 선진국, 특히 미국으로 젊은이들을 유학을 보내고, 국내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던 관행을 무너뜨리고 대학입학시험을 부활시켰습니다. 1975년 덩샤오핑은 중국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를 방문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한 모습들이 중국과는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으로 몰락해 있어야 할 서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본 덩샤오핑은 결국 국정의 방향을 개방으로 잡게 되는데, 덩샤오핑은 각급 지도자들의 외국방문을 추진하여 자연스럽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베트남을 통하여 중국을 포위하려는 소련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하여 동남아국가 순방을 통하여 베트남을 견제하는 한편 단기간 베트남을 침공하여 경종을 울리는 강수를 두기도 합니다.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의 꽃은 1972년 닉슨의 중국방문으로 빗장을 푼 이후로 미온적이던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1979년에는 공식 수교를 맺게 한 것입니다. 이는 소련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과 경제발전을 위한 다각적 포석이 어우러져 이룬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별도 항목으로 다루고 있는 덩샤오핑의 통치술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권위 있는 말과 행동을 근본으로 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정책이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여 이해를 시키고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추진하는 끈질긴 면모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또한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단결을 강화하고 분열을 최소화했다고 합니다. 특히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쌓인 사회적 갈등 요인에 대하여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묻어 두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자’고 권고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쟁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난제는 우리보다 총명하여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는 후세들이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521쪽)’고 하는데, 역시 연륜이 묻어나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덩샤오핑의 성공적 조직관리 철학의 핵심은 ‘계파를 지양하고 능력을 갖춘 관리를 선발’한데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계파가 조직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요건이 되곤 하는데, 안으로 굽게 되는 팔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었던 것도 덩샤오핑의 돋보이는 통치술입니다. 덩샤오핑의 통치업적 가운데 하나는 원로정치를 종식시킨 것입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권력을 쥐고 있었던 마오쩌둥과는 달리 나름대로 정한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홀연히 차세대의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넘기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원로들 역시 자신과 동반하여 권력에서 물러나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덩샤오핑의 통치기간 중에 일어난 텐안먼 사건은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입니다. 후야오방이 사망한 1989년 4월 15일부터 5월 17일까지를 ‘베이징의 봄’이라고 합니다. 주언라이에 대한 추모와 덩샤오핑의 복귀를 요구한 1976년 텐안먼 광장의 시위와 비슷하게 시작한 베이징의 봄은 후야오방에 대한 추모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보이다가, 요구수준이 확대되고 시위내용도 과격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중국 정부가 6월 4일 군대를 동원하여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서야 질서를 회복한 불행한 사건입니다. 덩샤오핑은 시위 초기부터 강력하게 대응하여 수습하기를 바랐지만 책임을 맡은 자오쯔양이 소극적 대처로 사태를 키운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덩샤오핑은 평생 무력진압이라는 카드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당시 그는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 여파가 중국에까지 미칠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으며, 강경진압만이 국가단결을 유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텐안먼 사건 이후 20여년이 흘렀는데,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회와 기적 같은 성장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소규모 항의는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고, 중국 정부는 텐안먼 사건의 재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덩샤오핑은 1992년 정치무대에서 물러났습니다만, 지난 150년간 중국을 지배한 어떤 영도자도 이루지 못했던 사명을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중국 인민을 부유하게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덩샤오핑은 전환 과정에서 전면적인 영도력을 발휘한 총지배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898쪽)” 이제 중국은 아시아 문명의 중심에서 세계 속의 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덩샤오핑의 후계자들은 사회보장의 확대, 환경보호, 부패 척결, 자유에 대한 한계설정, 그리고 통치의 합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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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글쓰기 - 효과적인 설득을 위한 살림지식총서 471
여세주 지음 / 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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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기처럼 남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도 있겠고, 여행기처럼 예전의 경험을 회고할 때 읽어보거나 남에게도 읽히는 글쓰기도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읽히기 위한글쓰기도 있겠습니다. 특히 다른 이가 읽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글쓰기의 경우 그 형식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글쓰기를 겁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요? 이런 분들에게는 일단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일단 써보기를 시작하면 조금씩 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일단 써보는 것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서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 일단은 성공적으로 출발한 셈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나면 글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하겠지요? 이런 분들이라면 글쓰기 훈련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연습을 해보아야하겠습니다. 이런 단계에 들어선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합니다. 여세주교수님의 <효과적은 설득을 위한 논리적 글쓰기>입니다. 제 경우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다 좋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던 참에 만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겨둘만한 내용을 요약해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일단 몇 가지 글쓰는 방식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쓰는 법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1. 자료를 조사해 쓰기, 2. 관찰해 쓰기, 3. 면담 후 쓰기, 4. 경험 살려 쓰기, 5. 상상해 쓰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는 자료를 조사해 쓰기, 관찰해 쓰기, 경험 살려 쓰기 등은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만, 면담 후 스기와 상상해 쓰기는 아직 시도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어떤 종류의 글쓰기라도 수월할 수 있습니다. 배경지식을 활성화시키려면 직접 경험하거나 아니면 읽어서 간접 경험을 늘리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경험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료를 찾아 읽는 것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읽어서 글을 쓰더라도 남의 글을 그대로 짜깁기해서 쓴 글을 아무래도 좋은 글이 될 수 없겠습니다. 따라서 남의 글을 읽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하여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글읽기에는 수동적 글읽기와 능동적 글읽기가 있습니다. 수동적 글읽기는 글쓴이가 이끄는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반면 능동적 글읽기는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논지를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세워나가는 글읽기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글을 쓰는데 능동적 글읽기가 더 보탬이 될 것입니다.

 

쓰는 글의 성격에 따라서 글쓰기의 전략을 다르게 가져가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한 목적을 가진 칼럼을 쓸 때는 전체의 얼개를 구상하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 과정을 저자는 ‘주제를 분명히 확정하고, 제제와 소재를 찾아 정리’하라고 권합니다. 다음 단계로는 전체의 틀을 조직적으로 구상해가면서 써보라고 권합니다. 당연히 구상의 개요는 자세할수록 좋겠죠? 한 단락씩 글을 써보기 시작하는데, 단락의 내용을 펼쳐놓는 전략으로는 1. 시간적 배열과 공간적 배열, 2. 연역적 구성과 귀납적 구성, 3. 인과적 구성과 열거식 구성 등이 있다고 합니다. 논리적 글쓰기에도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서론쓰기의 유형입니다. 즉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어떤 미끼를 사용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사회적인 문제나 일상생활의 경험으로 일끌기, 2. 글쓰는 목적이나 의도 등을 밝히며 이끌기, 3. 통계 자료 등을 제시하면 이끌기, 4. 명언이나 속담을 인용해 이끌기, 5. 자신의 주장과 상반되는 견해 제시로 이끌기, 6. 인식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끌기, 7.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끌기, 8. 개념 정의를 하며 이끌기, 9. 비유를 통해 이끌기, 10. 논의하려는 핵심주제 제시로 이끌기 등입니다. 본론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1. ‘문제점-원인-해결방안’식 본론 쓰기, 2. ‘두 가지 입장비교-한 가지 선택 또는 제3의 방안 모색’식 본론 쓰기, 3. ‘긍정적 측면-부정적 측면-부정적 측면의 극복 방안’식 본론 쓰기, 4. ‘상대방의 주장 비판-자신의 주장 피력’방식의 본론 쓰기 등입니다. 그리고 결론 쓰기 형식에도, 1. 요약하고 강조하는 마무리, 2. 대책이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마무리, 3. 기대나 당부를 하는 마무리, 4. 전망을 제시하는 마무리, 5. 당위성을 강조하는 마무리 등입니다.

 

이와 같은 글쓰기의 전체 틀을 구성할 때 고려할 형식들을 구체적인 예문을 들어서 이해가 쉽도록 돕고 있으며, 끝으로 글쓰기의 효과를 강조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도 덤으로 붙이고 있어, 좋은 글쓰기를 바라는 분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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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 웰니스 삶을 위하여
오길창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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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꿈을 제대로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재난을 겪으면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를 담은 <인간탐구>가 시선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쓴 오길창교수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게 사는 삶인가는 주관적이므로, 철학과 심리학, 종교가 무지를 깨우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시면서 여기에 ‘인간탐구’의 목적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 담은 내용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것은 서울 남산에서 도를 닦는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과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인간탐구의 편린들을 모아가는 과정이다. 기본적으로는 ‘몸이 마음을 만들고, 마음이 몸을 만든다’는 큰 틀 안에서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올려 나가는 과정이다.” 이 책의 주된 화두는 ‘건강과 행복’인데 궁극적인 목표를 웰니스(Wellness)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웰니스에 도달하는 과정을 우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 탐구한 결과를 1부에서 설명하고, 2부에서는 특히 한국인의 체질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건강을 추구하는 일은 개인마다 다른 체질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겠습니다. 3부에서는 웰니스이 개념을 설명하고 이렇게 다듬은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어떻게 지혜로운 삶을 영위할 것인가를 4부에서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경구들을 분야별로 구분하여 모아두었습니다.

 

저자의 인간탐구는 자못 심오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서양철학 혹은 다양한 종교적 개념이 버무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프롤로그에서 통섭적 접근을 하고 있다는 언급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로 이해하고 전체에서 개체가 쓸모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존재의 의미는 존재의 틀과 밖의 틀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고, 삶의 의미는 삶 밖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삶은 시작과 끝이 있고, 끝은 시작에 맞물려 돌아가게 되며, 삶의 흐름은 늘 오르내림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삶과 그러하지 못한 삶은 각 삶의 흐름의 국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는 심신시스템을 움직이는 에너지체계가 원활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한편 인간탐구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9가지 성격이라거나 11가지 비합리적 신념, 11 가지 자기보호 수단으로서의 방어기제, 기력 활성화를 위한 6단계 훈련 등에 관한 설명은 특정한 수련과정을 통하여 얻게 된 내용으로 보이는데, 일반화시켜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근거는 분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체질이야기는 사상의학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오래되었습니다만, 게놈지도를 해독하는 일이 시작될 무렵 개인별 맞춤의학의 개념으로 사상의학을 소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상체질이라고 하는 것이 분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에 도달한 전문가라면 모든 사람들을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막상 전문가들마다 분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체질의학을 바탕으로 분류를 하면서 현대의학의 진단에 의한 질병을 맞추어 넣는 것이 적절한 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 책의 가장 핵심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웰니스가 건강과 행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넘은 1961년에 미국 국립 인구통계청의 감독관 덩(Dunn)이 처음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제안된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웰빙이 나와 가족을 중심으로 한 협의의 건강과 행복 개념이라면 웰니스는 나와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우주를 통할하는 광의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공부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도의 수련이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구체적인 앎이 없는 탓에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듯하여 앞으로 관심을 두고 더 공부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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