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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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것과 연극의 바탕이 되는 희곡을 읽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연극이 연출에 의하여 해석되고 배우들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을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곡은 모든 연극적 요소들이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대하여 성격을 부여하고, 무대장치와 대, 소도구들이 안배된 무대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배우들이 주고받을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게 되면 쉽게 빠져들 수 있지만 공연을 미리 보지 못한 희곡 작품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막상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려고 보니,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업극단이나 대학극단에서도 자주 올리던 레파토리인데도 저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젠 이오네스코는 ‘부조리극의 기수’라고 불릴 만큼 부조리극을 써낸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는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카프카 등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이라고 부조리극을 설명하고 있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http://blog.joins.com/yang412/13393269>가 효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를 우리말로 옮김 오세곤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부조리극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부조리극은 비록 관객들이 현실로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기존의 연극이 ‘사실임 직한 비사실’을 추구하는 데 반해, 부조리극은 ‘비사실임 직하지만 엄연한 사실’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186쪽)”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소개하고 있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집 <대머리 여가수>에는 표제인 「대머리 여가수」와 함께 「수업」 그리고 「의자들」 등 세편의 희곡을 싣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세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불합리한 의사소통에 의해 결국 살인까지 이르는 언어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의자들」은 언어의 허구성과 공허함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189쪽)”

 

사실 무대를 설명하는 지문이 온통 ‘영국식~’으로 시작하는 「대머리 여가수」는 무언가 비비꼬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서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내 등장인물들이 뱉어내는 대사들이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묘하게도 말꼬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스미스씨의 엉뚱한 대사 가운데 가슴 저미는 장면이 있어 꼭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같이 회복되지 못하면 환자랑 같이 죽어야죠. 양심적인 의사라면. 선장은 파도 속에서 배하고 같이 죽잖아요. 혼자 안 살아남고.(13쪽)” 영국의 뱃사람들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일이기는 하지만 승객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의사와 비교해서 환자를 고치지 못하면 의사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수업」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치통을 호소하는 학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에 예정된 교과를 강행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오늘날 경직되어 있는 사회제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학생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교수 역시 교수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헷갈리게 만드는데, 정작 문제는 교수가 매일 살해한 학생이 마흔 명 째에 이르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교수나 교수댁 하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했다는 정황은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안전망의 구조적 문제점이 연상되었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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