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라파엘 보넬리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도 벌써 두 주일이 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하나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어 어느 젊은 이 말대로 우리는 미개한 나라에 살고 있음이 들림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하나 제 몫을 하는 사람이 없고,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남을 탓하는 습관이 몸에 밴 민족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제 몫을 해내면 사고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설사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다!’라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가톨릭 정신이 새삼 생각나게 합니다. 가톨릭 정신도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우리 사회를 일깨우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 전문의인 저자 라파엘 보넬 리가 쓴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입니다. 원제가 ‘자기 잘못이다’라고 번역되는 <Selber Schuld!>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을 남의 탓으로 미루거나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즉 억압하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잘못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남에게 미루는 것이 고통에서 가장 쉽게 벗어나는 방법이고, 잘못의 인식을 억압하여 회피하는 것이 다음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쉽게 자신의 잘못을 피해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전문서적에서 ‘피해자의 덫’이라고 일컫는, 정신적인 막다른 골목이기 때문(5쪽)”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자신의 죄를 의도적으로 숙고하게 함으로써 치료로 유도하려는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쓰게 된 것이고 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질책함으로써 병적인 죄의식을 더 많이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여지를 넓히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얻게 되는 심리적 고통은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하여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1. 내인성 장애로 인한 경우로 뇌의 신진대사가 비정상으로 작동하여 엉망이 된 결과 생기는 고통입니다. 정신분열증이나 내인성 우울증과 같은 경우로서 당사자나 주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2. 반응성 장애인데, 외상 혹은 정신적 충격(외상)으로 번역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연 재해나 타인에 의하여 뿐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3. 정신신경증이라고 번역되는 노이로제(neuroses)에 의한 경우입니다. 저자는 마지막 세 번째 원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정신신경증에 의한 심리적 고통의 특징은 “자아가 자신의 내면으로 얽혀들고, 갈수록 자신의 주위를 맴돌아 결과적으로 완벽주의, 자기집착, 엄살, 감상, 피해자 의식, 자기연민이 따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동안의 심리치료가 실제로는 환자들의 죄의식을 없애줌으로써 아예 양심에 거리낌 없는 행동을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당사자의 무죄변명에 급급해온 기존의 심리치료를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45명의 환자사례를 분석하여 치료효과를 설명하고, 문학작품 가운에 사례에 적합한 주인공들의 모습과 대비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은 죄를 저지른 후에 책임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해석하는데, 그 판단 기준은 자신의 욕구와 심적 상태에 두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21세기의 심리치료의 현장에서 이런 사례들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미루는 경향이 심각해지는 것은 어쩌면 사회가 갈수록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연히 강박성 노이로제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 역시 나 자신은 늘 옳은 판단을 하는데, 남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일상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한 점을 바로 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결론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세계문학에 등장하는 아홉 가지의 운명을 소개하고, 그 운명의 인간들이 죄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죄를 변화시켜 실패를 결실로 만든 경우, 두 번째는 자신들의 죄를 인정할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들, 세 번째는 자신을 중심으로 맴돌며 죄를 억압하고 공격적으로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는 식으로 도피하는 우울한 인간들입니다. 저자는 죄를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결국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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