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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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면서 안전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짚어보려는 생각에서 송해룡, 김원제 교수님의 <한국사회 위험특성과 한국인의 위험인식 스펙트럼; http://blog.joins.com/yang412/13425236>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의 원인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만, 화물과 차량들을 제대로 묶지 않은데다가 갑작스럽게 배의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화물들이 쏠리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우리사회의 문화어로 자리 잡은 ‘빨리빨리’가 불러온 인재(人災)였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뒷짐을 지고, 한껏 어깨를 뒤로 젖힌 채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걸어야 체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숨넘어가듯 바쁘게 돌아가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일입니다. 해방에 이은 6.25동란을 계기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외래문물을 보면서 우리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될까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온 서구의 발전과정을 압축해서 따라잡으려다 보니 그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빠르면서도 정확하다면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아무래도 빠르다보면 뭔가 빠지는 것도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빠진 것이 있더라도 별 사고 없이 지나가는 일이 쌓이다 보니 결국은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인지 숨넘어갈 듯 빠르게 움직이던 세계적 분위기에 딴죽을 거는 듯 ‘슬로우 시티 운동’이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절차와 과정에 대한 의논이 오가던 중에 모 보건의료신문에 제가 속한 심평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개하는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인 보도자료나 안내에 머물던 것을 고객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변도 드리는 쌍방향 소통 채널로 활용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획의도를 설명하는 글에서 대학시절 읽었던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내용을 조금 인용하였는데 놀랍게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보다 조금 뒤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인기와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북소리]를 통하여 소개해보려 합니다. 빨리 움직이는 사회의 끔찍한 모습을 1973년에 예견하고 슬로우 시티 운동을 제안한 미하엘 엔데의 혜안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1929.11.12. ~ 1995.08.28.)은 남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텐에서 태어났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엔데는 부모의 예술가적 기질을 물려받아 글, 그림, 연극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떨쳤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극배우, 연극평론가, 연극기획자로 활동하다가 1960년에 발표한 <기관차 대여행>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모모(1970)>와 <끝없는 이야기(1979)>은 판타지적 요소를 가진 동화이면서도 문명에 의한 자연의 파괴(끝 없는 이야기)와 소비중심의 문명(모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는, 그가 죽은 다음에 단순한 동화작가에 머물지 않고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비판한 철학가’로 재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 철학자인 데이비드 로이와 린다 굿휴는 <모모, 도건, 시간의 일반화(2002)>라는 책에서, “이 책은 1973년에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도둑의) 악몽이 현실이 되고 있다”라며 <모모>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 중의 하나로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1973년 발표된 <모모>는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차경아님의 번역으로 1977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청람문화사에서 나온 이 번역본에는 미하엘 엔데의 <한국 어린이에게 부치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76에는 1975년에 공쿠르상을 수상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모모입니다. <모모>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인데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열세살 남자아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1978년 광주 전일방송의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김만준의 <모모>가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 <모모는 철부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는 등, 모모의 열풍이 이어졌습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 짓 하면 /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 우우우~”라는 가사말의 <모모>가 유행할 때는 몰랐는데, 이 노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영향도 조금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뒤늦게 밝혀진 것입니다만,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가 사용한 여러 필명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결국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이미 수상한 바 있었던 로맹 가리는 한 사람에게 두 번 주어지지 않은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작가가 된 셈입니다.

 

본격적으로 <모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몇 천 년 전에 화려했던 커다란 옛 도시의 터에 자리 잡은 커다란 도시, 그 도시의 남쪽 끝머리에는 밭이 시작되고 갈수록 누추해져가는 오두막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이야기의 무대입니다. 마을 뒤 소나무 숲에는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이 숨어 있는데, 이 극장은 그 옛날에도 화려하지 않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극장이었기 때문에 이웃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원형극장 터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스며들어왔습니다. 키가 작고 대단한 말라깽이에 다 낡아빠지고 헐렁한 남자 웃옷에 색색가지의 알록달록한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치마를 입고 있는 아이는 여덟? 아니면 열두 살로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백 살 혹은 백두 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까만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모는 놀랄 만큼 예쁘고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모모가 원형극장의 무대 밑에 무너진 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돌보아주기로 합니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모모의 행운이었을까요? 아니면 마을 사람들의 행운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삼대가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만, 삼대까지 갈 것도 없이 마을 사람들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모모의 놀라운 재능 덕분입니다. 그 놀라운 재능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습니다.

 

작가는 모모의 재능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듯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23쪽)” 사람들이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라고 권하는 바람에, 이 말은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상어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사실 어떤 문제든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모모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바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원형극장은 모모의 재능이 꽃을 피우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모는 밤이면 원형극장에 앉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정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는데,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던 것입니다. 독일 하노버에 있다는 조각상이 커다란 귀를 안고 있는 모모의 모습을 새긴 이유일 것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요? 모모와 함께 살고 있어 영원히 행복할 것 같던 이 마을에도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원래 나쁜 일은 시나브로 끼어들어 쌓이는 문제들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우리사회가 평소 조심해서 지키면 피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간과하듯 말입니다. 이 마을에도 회색옷을 입은 신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납회색 서류가방을 들고 작은 회색시가를 뻐끔대는 회색신사는 잿빛 목소리로 자신이 시간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사람들마다 세상살이가 의미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회색신사들은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해서는 현란한 계산을 통해서 시간을 절약하면 나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 절약한 시간을 시간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쳐서 예순두 살이 되는 해에 엄청난 양의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꼬이는 것입니다.

 

계약이 성립되면 그 다음부터는 회색신사들은 계약자들이 단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도록 엄중하게 감시하면서 미리 짜인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쌓여가고 상냥한 기미하고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도시의 모습까지 변해갔는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꼭 같은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맞추자면 각기 다른 집을 지어야 하겠지만, 꼭 같은 집을 지으면 돈이 훨씬 적게 들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회색신사들과 시간저축을 계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모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이번에는 모모가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결국은 회색신사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친구들이 모모를 만나느라 사용하는 시간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모모를 찾아온 회색신사는 얼결에 자신들의 정체와 속셈을 모모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역시 모모의 들어주는 재능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려.... 우리는 시간을 끌어모아... 저장하는거야....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즉 회색인간들은 사람들의 시간으로 연명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모모는 친구 베포와 기기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 함께 회색인간들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는 모임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회색신사들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회색신사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모모의 친구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여 모모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모를 잡아들이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북이 카시오페아의 안내로 ‘언제나 없는 거리’에 있는 ‘아무데도 없는 집’에 사는 세쿤두스 미누티우스 호라 박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박사의 이름이 독특하죠? 그렇습니다. 초, 분, 그리고 시간을 나타내는 라틴어 이름입니다. 모모는 시간의 근원지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거대한 지붕 밑에 있는 둥그런 연못으로 별의 추가 움직이는 대로 커다란 꽃봉오리가 떠오르고 스러지기를 반복하는 곳입니다.

 

호라박사는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지정되어 있는 시간을 나누어 주는 관리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합니다. 회색신사들 역시 호라박사의 존재를 잘 알고 있고, 이곳을 봉쇄하여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단숨에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을 속여서 조금씩 갈취한 시간으로 연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병들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저 산다는 것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점점 커지면서 종국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해지고,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색신사들이 호라박사의 집을 에워싸고 공격을 퍼붓자 모모의 아이디어로 반격을 시작합니다. 1 시간동안 시간을 멈추고 그 사이에 회색신사들이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저장해둔 사람들의 시간을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정지되고 당황한 회색신사들을 뒤쫓아 시간저장창고로 찾아간 모모는 카시오페아의 도움으로 회색신사들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데... 카시오페아는 30분 뒤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회색신사의 추적을 따돌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동네 수퍼마켓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지하에 있는 손바닥만한 곳이었지만 아이를 찾느라 한 시간 동안을 헤맸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열장 사이로 엇갈리다 보니 마주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았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모모와 카시오페아의 활약 덕분에 회색신사들의 음모는 분쇄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색신사의 꼬임을 받고 있지 않으십니까? 우선은 달콤하게 들릴지 모릅니다만, 결국 당신의 감정을 병들게 하고 사건사고로 얼룩진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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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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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진보 지식인 혹은 강남 좌파라고 불리는 조국 교수님이 자신의 인생과 학문의 역정을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써냈다고 합니다. 이석영교수님의 <초신성의 후예>를 읽은 다음이라서인지 책읽기도 흐름을 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학문’과 ‘참여’가 자신의 삶의 두 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과연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이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저 역시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학문’에만 몰입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책에 대하여 몇 가지 짚어보려 합니다. 저자가 지었다고 하는데, 정리해준 분의 역할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근래까지 살아온 이야기에 대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작가가 정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것과 글로 써내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인데 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은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신화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디케(Dike)가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였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디케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형평을 지킨다는 의미로 저울이 더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정의의 여신은 맹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의 판정함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연수원에 서 있는 디케는 눈을 띠로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여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이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책을 펼치고 저자께서 법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찾아보려 노력하였습니다만, 어디에서도 똑 떨어지게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추론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될만한 구절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그 첫 번째는 호기심이 출발이었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무렵에 인기리에 방영되던 TV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 논리적 토론을 벌이고 공부하는 것에 로망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학습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은 모르셨나 봅니다. 결국 입학 뒤에는 법학보다는 사회과학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농활과 봉천동 혹은 구로동 등 사회의 밑바닥을 돌아보면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의 전위에 서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매 순간 갈등과 두려움과 흔들림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70년대 대학을 다닌 저 역시 교내 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벌어진 ‘서울의 봄’ 무렵 가두시위에 참여하겠다는 동아리 후배들을 말리는 입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의학공부는 정해진 시기에 해야 할 공부가 있는데 그것을 건너뛰게 되면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전문지식이 절름발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의 완성된 의사가 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후배들을 설득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치열하게 사회개혁에 나서지 못한 얼치기가 된 셈입니다.

 

북한체제에 관한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정치적으로 억압적이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체제였고, 이는 우리가 바라는 대안사회가 아니었다.(107쪽)”라고 적고, “북한 체제의 온갖 문제점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남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117쪽)”라고 적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하고 남한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논하는 것을 연계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닐까요?

 

“나는 법과 법학이 우리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학자로서 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160쪽)”라고 적은 구절이 혹시 저자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추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서 적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선망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사(士)’자 들어간 직종에 관한 이야기(69쪽)입니다. 의사(醫師)는 당연히 ‘사(士)’자 들어가는 직종이 아니라 교사(敎師), 목사(牧師) 등과 함께 ‘사(師)’자 들어간 직종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여건이 과거 잘 나가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첨병이라는 자만심(?)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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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뒤집어보기 살림지식총서 8
장석정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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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구경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미국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마침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에 미국에 관하여 요약해놓은 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읽어서 참고해볼 생각입니다. 그 첫 번째가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계신 장석정교수님의 <미국 뒤집어보기>입니다. 사실 무엇이든 겉만 보아서는 제대로 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살을 들여다 볼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는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6.25동란으로 한반도가 공산화될 위기를 막아준데 대하여 감사하는 생각이 있는가 하면, 저자의 말대로, “일찍이 일본의 한국 병탄을 눈감아 주었고, 한국전쟁을 일으켜 반도를 두 동강 내더니만(무엇에 근거한 주장인지 모르겠습니다.) 군사독재를 도와 한국의 민주화를 저해해왔고, 최근에는 일방적인 패권주의로 일관하면서 세계화, 신자유주의라는 간판 뒤에 숨어 미국화의 속셈을 펼치고 있다.(4쪽)”라는 생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와 같이 상충되는 생각들이 부딪히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우리가 미국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과 미래의 큰 부분이 미국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몰이해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 있습니다. 결국은 친미, 반미를 논하기 전에 용미(用美)를, 그보다 전에 지미(知美)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9.11사태가 일어난 다음에 테러조직을 뒤쫓는다는 명분으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랑과 존중, 이해와 동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와 정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이라는 ‘가치’와 ‘이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하여 미국이 선택한 방법론에 대한 세계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내부의 갈등을 봉합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어서 미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다룬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31662>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한 이유를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유시장경제는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즉, 정부가 은행을 중심으로 자본을 통제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을 자유시장경제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경제의 큰 틀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미국의 교육제도, 언론 그리고 문화와 스포츠부문의 특성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체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만, 학습장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미국의 교육제도는 분명 보이지 않는 힘이 들어있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소위 엘리트 체육으로 글로벌 스포츠계에서 급부상해온 우리나라는 최근 문화 부문에서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적용한 엘리트주의로 한류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만, 과연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이민을 받아들여 출발하였고 지금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이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인종 국가일 수밖에 없는 미국을 일컬어 용광로, 샐러드 그릇, 모자이크, 무지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고 하고, 뉴욕 같은 대도시를 마치 인종박람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국새화 주화에는 'E Pluribus Unum'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는 ‘One Out Of Many’, 즉 ‘다수로부터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로서 저자가 ‘아흔 아홉 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 미국’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다양성과 복잡성이 바로 미국의 힘이라는 설명입니다. 단일민족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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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북 : 유럽 건축을 만나다
유성지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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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받아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유성지님의 <화이트 북 유럽 건축을 만나다>입니다. 일단 제목을 보면 유럽에서 주목할만한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책인가 보다 싶습니다. 책을 받아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물의 외관과 내부를 담은 사진으로 이어지고 있어 사진첩처럼 보입니다.

 

우선 놀라운 점, 저자와 편집자는 제목과 저자의 이름만 검은 색으로 박은 채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하얀 표지를 내세웠을까요? 서문을 읽어보면, “내게 책이란 텍스트와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 오브제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란하여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단순하되 기품이 있어 오랫동안 시선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 놀라운 점, 건축물이 주제라면 ‘저자는 건축학도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경영학을 공부한 저자는 디자인을 통하여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에 흩어져 있는 모두 48개의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새기면서 각각의 건물에 디자인적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에 대하여 ‘파리는 내게 가장 로맨틱한 도시다’라는 통합적 이미지를 매기고, 첫 번째 건축물인 에펠탑에는 ‘디자인은 사랑이다’라는 메시지를 붙였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시점에 찍은 여덟 장의 에펠탑의 사진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사진들을 직접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책의 말미에 보면 이 책에 실린 책들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3.0에 의거해서 사용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 번째 놀라운 점, 그럼 저자는 유럽 건축 디자인 여행을 언제 떠났느냐 하는 점입니다. 군을 제대하고서 3일 만에 짐을 싸고 128일에 걸쳐 유럽 20개국 62개 도시를 돌았다고 하는데, 결국은 3년에 걸쳐 일본, 미국, 중국 등을 추가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는 3년 동안 30여 개국을 여행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약관 20세에 달랑 500달러만 가지고 요코하마를 출발 러시아의 나홋카를 경유하여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레닌그라드, 핀란드를 거쳐서 파리에까지 여행하면서 서양 건축을 구경하면서 ‘건축이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안도 다다오 지음,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 62쪽; http://blog.joins.com/yang412/13384160)’임을 실감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좀처럼 해뢰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였습니다. 동남아 혹은 유럽의 관광지를 가보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저자처럼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해외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저자는 단순하게 건축물을 둘러보는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았을 때, “오랑주리 미술관은 왜 인공 빛이 아닌 자연 빛을 썼을까?”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자연 빛을 통해서 ‘수련’을 보게 되면서 한평생 빛을 그려냈던 모네를 생각하게 되고, 또 빛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자연의 빛은 연속적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다. 이러한 자연의 빛을 그대로 살린 채 모네 필생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련을 감상하는 건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57쪽)”

 

일 때문에 유럽의 몇 곳을 가본 것에 불과하지만 저자의 관찰대상이 된 48개의 건축물 가운데 파리의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런던아이 등 세 곳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데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저와 같은 독자를 배려한 위로의 구절을 에필로그에 담아두었습니다. “이 책은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만드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내가 갔을 때 전혀 이런 느낌은 안 받았는데’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유럽에 갈 계획이 있는 독자가 ‘이 건축은 한번 볼까?’하고 생각하거나, 이미 갔다고 온 유럽이지만 ‘다음번에는 여길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저자의 생각대로, 여기 소개된 건축물 가운데 유럽에 가는 기회에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실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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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 지금 당장 실천 할 수 있는 노후 준비법
백정선.김의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직은 현직에서 일하고 있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는 형편에서 진즉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스24에 다시 감사할 일이 생겼다. 지난 해의 북켄드 활동의 선물로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를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의 최성환소장님은 추천사를 통하여 빨라서 좋은 세 가지로 짜장면 배달, LTE속도 그리고 노후준비를 들고, ‘이 책은 나의 은퇴를 준비된 은퇴, 즉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행복한 노후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최소장님은 은퇴소장을 맡은 다음에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은퇴하지 마십시오’라는 대답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젊어서는 적당한 나이에 일을 놓고 노후를 즐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은퇴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건강이 허락한다면 일을 하는 모습이 훨씬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최소장님은 이 책에 담긴 핵심내용 두 가지를 이렇게 짧게 정리했습니다. “자식을 버려라!”, “퇴직 후 창업, 웬만하면 하지 마라.” 자식과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그으라는 충고는 우리네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점이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서도 보면 자식을 챙기다가 정작 부모가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IMF 사태 이후 정년퇴직이 앞당겨지게 되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기대여명이 길어진 것이 노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큰 틀을 이해하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 본인의 상황에 맞는 노후 준비를 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2부에서는 노후자금 마련의 가장 큰 적이 자식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식에게 투자하면 노후가 편해진다고들 하였지만, 과연 우리들의 자식들도 그리 생각할까요? 저자는 자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도 높은 주장을 내놓았지만, 사실은 자식을 버리면 부모가 살고, 부모가 준비된 노후를 보내면 결국은 자식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3부는 창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노후를 위한 모험으로 창업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실제로는 많은 분들이 창업에 실패하고 노후자금을 탕진하는 바람에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4부와 5부에서는 본격적이 노후준비를 위하여 생각할 것들을 설명하였는데, 국민연금과 보험사의 개인연금, 노후의 마지막 선택 주택연금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노후준비를 시작하는 연령에 따른 차별화된 전략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6부에서는 노후준비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특히 행복한 노후를 위한 5단계 플랜은 평범한 듯하지만 실행하려면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노후준비에 관한 저자의 실무적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고도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힘든 상황에 몰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오로지 신자유주의의 도입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몸집 부풀리기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 정경유착으로 인한 대기업 특혜 주기의 관행은 신자유주의에서 대기업의 독식을 국가가 도와주고 눈감아주는 양상으로 이어진다.(67쪽)”라고 진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 이후로 우리는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그리고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되는 정치의 민주화를 이미 이룬 바 있습니다. 진보정권에서는 기업활동을 범죄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활동을 얼어붙게 만들어 결국은 서민들이 먹고사는데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모든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결국은 왕성한 기업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부를 거두어들여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원인에 대한 진단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각론에 들어가 적절한 노후준비를 위한 대책은 크게 공감이 간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식들과의 관계설정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역시 은퇴를 최대한 미루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의 노후대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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