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졸라를 만나다
레몽 장 지음, 김남주 옮김 / 여성신문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해 봄에 다녀온 프랑스 여행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하여 르아브르, 지베르니, 아를, 엑상프로방스 등 인상파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을 두루 돌아보는 미학기행이었습니다. 우연히 들른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세잔 졸라를 만나다>를 읽었습니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와 말년에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던 언덕도 돌아보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책읽기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졸라의 <목로주점>, <나나> 등 잘 알려진 작품들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나는 고발한다...!>로 만나본 바 있습니다.

<세잔 졸라를 만나다>를 쓴 레몽 장교수는 엑상프로방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과 미술을 아우리는 작품활동을 해왔는데, <책 읽어주는 여자> 등이 있습니다. 졸라가 인상파화가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탈리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살다가 중학교 무렵 엑상프로방스로 이사와 성장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세잔이 파리에서 이사와 놀림감이 되곤 했던 졸라를 편들어주면서 자연히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묘한 점은 세잔이나 졸라 모두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모두에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잔의 경우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는데, 라틴어에 뛰어났고, 문학과 역사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헨리8세를 대상으로 희곡을 쓰기도 했지만, 정작 데생에서는 2등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졸라는 문학에서 재능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세잔이 졸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간단한 스케치를 곁들이는데, 세잔의 경우 아버지가 법률공부하기를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에 갈등을 빚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림이야. 뛰어나지는 못하지만’이라고 적어 보낸 세잔의 편지에 대하여 졸라는 예술의 본질을 스스로 이해하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예술가 속에는 시인과 노동자라는 두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잔은 배워서는 얻을 수 없는 번득임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가 하면 졸라 역시 이면에 탁월한 화가가 숨어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플로베르도 졸라의 <나나>를 읽고는 “대단한 작품일세 이 친구야! <나나>의 끝부분은 미켈란젤로를 연상시키는군”이라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밀착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가정환경 등 두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건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세잔이 성장하면서 남긴 데생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곁들이고 있어서 두 사람이 살아간 흔적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졸라가 쓴  <작품>이라는 소설은 당시 살롱전의 배경을 다루면서 재능이 부족하여 걸작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다가 자살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세잔을 암시하는 느낌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절친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정리가 필요한 대목도 있었습니다. 만년에 정착한 메당의 집에 있는 세잔의 서재는 박물관이나 교회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는데, 루이13세 풍의 의자 뒤에 있는 벽난로에는 황금빛 글씨로 “Nulla Dies sine linea”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이 구절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쓸 것’이라고 옮겼습니다. 하지만 이 경구의 배경을 생각하면 ‘선 긋기를 하지 않고서는, 즉 드로잉을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보내지 말라’고 해석함이 옳다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나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꼭 볼 수 있던 라틴어 경구입니다.

이 경구는 1세기 무렵 로마의 군인이자 철학자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가 쓴 자연사(Naturalis Historia)라는 백과사전에서 기원전 그리스의 코스에서 활동한 화가 아펠레스(Ἀπελλής)에 대하여 평가하면서 그보다 앞서거나 뒤에 활동한 어느 예술가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아멜레스가 좌우명으로 삼던 경구가 바로 “Nulla Dies sine linea”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경구는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쓸 것’보다는 이 구절을 ‘하루에 한 줄이라도 그릴 것’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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