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차례의 런던 여행이 모두 1박2일로 짧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고른 책읽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런던 스케치』는 1987년부터 1992년에 발표된 영국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입니다만,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고 하는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에 담긴 단편들을 읽다보면 제목 그래도 런던과 런던사람들의 모습을 참 꼼꼼하게도 들여다보았구나 싶었습니다. 1919년에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레싱은 지금은 짐바브웨가 된 남부 로디지아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이런 성장과정이 그녀의 작품 활동에 녹아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눈 인종간의 불화와 착취, 불평등을 목격하면서 문화의 충돌과 갈등,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찰하는 눈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영국은커녕 아주 짧은 시간 런던에 머물렀던 것만으로는 이 단편집에 담긴 작가의 생각의 한 조각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 「데비와 줄리」에서는 대학에 다니던 줄리가 생각지 못하게 임신을 하고 가출해서 간 곳이 워털루 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데비를 만난 것이 줄리로서는 행운이었습니다. 데비가 줄리를 데려간 곳은 줄리 같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수상쩍은 곳이었지만, 데비는 줄리가 그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감싸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분만일이 되어서는 새롭게 만난 남자친구를 따라 떠나고 말았기 때문에 줄리는 혼자서 출산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흔히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폐가에서 몸을 푼 줄리는 아기를 공중전화부스에 내려놓고 지켜보다가 구급차가 와서 데려가는 것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린 미혼모를 위한 쉼터가 마땅치 않기는 런던도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줄리를 보면 영국의 젊은이 역시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작품의 배경이 20세기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장애아의 어머니」를 보면 런던의 또 다른 문제를 알게 됩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이국 사람들의 삶이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대영제국이 만들어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레싱은 런던에 사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직접 묘사하거나, 혹은 동물원의 동물 혹은 새들에 에둘러서 묘사하기도 합니다. 런던 지하철과 그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레싱은 옛날의 런던을 그리워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살기가 팍팍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런던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지금은 런던이 끔찍할 뿐이에여. 끔찍한 사람들로 들끓어요(118-119쪽)이라고 말합니다.

런던의 병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응급실이나 병실을 이용하는 환자가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건조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자들이 꿈꾸던 영국식 의료체계가 과연 이용자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을 주는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금년 들어 전세계를 위기에 빠드린 중국 우한발 코로나 대감염의 사태를 보면 의료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미국이 오히려 문제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세의 페스트는 물론 20세기 초반에도 스페인독감 등 유행병으로 홍역을 치렀던터라 국가나 국민들이 전염병이라는 위기상황에 잘 대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