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참으로 따뜻했던 ‘불편한 편의점’ 덕분에 김호연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신간 ‘나의 돈키호테’는 따스함위에 정체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설렘이 가득했다.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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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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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그럼 산초였던 나는, 나는 어떡하란 말이에요?"
"내 생각엔, 솔이 네가 돈키호테다. 나는 네가 비디오 가게에서늘 TV 프로그램 보며 깔깔 웃던 게 기억이 나거든. 마치 브라운관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두했지. 그런데 나중에 네가 그런 TV 프로그림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는 얘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 저렇게 솔이는 자기 꿈을 이루며 사는구나. 그때 나는 이미 널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단다."

・미안하다."
"미안할 거 없어요. 산초로 한 몇 년 지내시다 다시 돈키호테처럼 도전하면 되죠. 영화감독."
"하하. 돈키호테가 산초가 될 순 있어도 산초가 돈키호테가 될순 없단다."
"왜죠?"
"열정이 사라졌으니까. 열정이 광기를 만들고 광기가 현실을박차고 나가는 인물을 만들거든. 나는 고갈된 열정 대신 현실에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할 거란다. 어른 진솔은 이제 아저씨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다."

마드리드의 레지던스에 입주해 있던 소설가의 기행문엔 이런대목이 있었다.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 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 요인으로 신대륙에 가일하고 싶었으나 고작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 징수원으로 고용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꿈꿨다. 신대륙에 가는 바람을 이루기는커녕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다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크게 허리를 숙여 그의 동상에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도 꿈을 꾼 자의영혼을 위해 건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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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때려치우고 엄마 집에 내려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내려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한주를 보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서른 살 인생 동안 이만한 쉼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제구실하며 살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제구실하며 살려다 보니 어느새 망가져버렸고, 제구실따위 못 하게 됐다. 스스로 멈춰버린 일주일. 그 시간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였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마치 길가의 쓸모없는 돌멩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엄마에게 털어놓자 엄마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돌멩이가 많이도 먹네."

부주의가 부른 불운이 쌓이고 쌓여 불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쉼없이 달려온 삶의 커리어가 한 방에 무너지고 나서야 내 것이 아닌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도내 것이 아니었고 내가 이룬 성과도 내 것이 아니었다.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했지 내 몫을 챙기는 데 부주의했고, 영악하게, 때론고약하게 굴면서라도 나를 지켰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필사하는 거예요?"
"그건 말이다. 음・・・・・・ 돈키호테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누구도 『돈키호테』를 필사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한국어로 된 최초의 『돈키호테』 필사본이지."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줘요? 스페인 사람들이 알아주려 해도한국어로 된 거면 알아볼 수도 없지 않나요?"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저는 그런 장영수 씨의 번역을 도우며 그가 소설 속 돈키호테와 동화되는 과정을 목격이라도 하는 듯했어요. 어느덧 회사에 완전히 적응한 그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요. 대표는 그런 장영수 씨에게 너보고 『돈키호테』 번역을 하라 했지 돈키호테가 돼라 했냐며 타박했고, 장영수 씨는아랑곳없이 사소한 직원 복지부터 저자들의 미지급 인세까지 따지고 들어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죠.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배가 이런 부정의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할 거냐며 막몰아붙이면, 대표가 참다못해 화장실로 숨어버리기도 했어요. 사실 대표도 친한 후배인지라 무작정 장영수 씨의 말을 무시할 수는없었고, 장영수 씨는 그런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저희들의 방패막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승아 씨는 그제야 아저씨의 행동이 단지 자신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키호테』 번역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돈키호테』 이거 일이 년 해서 될 게 아닙니다. 평생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내가 영어 강사로 탑이긴 했지만 번역은 다른 문제더군요. 나는 번역보다 중요한 돈키호테의 꿈을 배웠어요. 이제이 책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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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뮌헨 사람들은 모두 맥주에 소시지를 먹고, 주말이면 축구 보고,하나같이 BMW를 모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미지는 뮌헨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선입견, 그러니까 그저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뮌헨의 상인들이나 우리나라의 여행사들이 이 이미지를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매일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 집에 가서 태권도를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삶은 선입견 바깥에 있다. 이제 진정한 뮌헨의 모습을 찾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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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인생이 비극임을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이 비극에서조차 성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이위대한 전환이다! 모든 것이 우리가 과연 내려감(down)을 올라감(up)으로 볼것인지 또는 칼 융이 말하는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한다는 사실을받아들일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레이디 줄리안은 그것을 더욱 시적인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먼저 추락이 있다. 그 뒤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

이 분명하고 정직한 말에서, 우나무노가 보는 인생이 곧장 앞으로나아가는 직선 코스가 아니었음을나는 읽는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삶은 전체적이고 완벽한 질서보다 훨씬 많은 예외와 무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성경이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인생은 상실이면서 회복,죽음이면서 부활, 질병이면서 치유로 이어지고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것들의 알력 또는 충돌처럼 보인다. 우나무노는 ‘신앙‘(faith)이라는 개념을, 너무나 강하여 죽음마저도 포함시키는 저변의 생명력에 대한 ‘신뢰‘(crust)와 동일시한다. 신앙은 이성(理性)을 포함하지만,우나무노에게는, 이성보다 큰 범주다. 진실은 문제를 해결하고 사물을 돌아가게 하는 실질적인 무엇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들을 화합시키는 무엇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비참한 결과를 빚는다고 해서 그것이진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떤 것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한 것 또한 아니다. 인생은 태생부터 비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근사한 논리보다 오직 신앙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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