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때려치우고 엄마 집에 내려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내려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한주를 보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서른 살 인생 동안 이만한 쉼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제구실하며 살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제구실하며 살려다 보니 어느새 망가져버렸고, 제구실따위 못 하게 됐다. 스스로 멈춰버린 일주일. 그 시간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였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마치 길가의 쓸모없는 돌멩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엄마에게 털어놓자 엄마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돌멩이가 많이도 먹네."

부주의가 부른 불운이 쌓이고 쌓여 불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쉼없이 달려온 삶의 커리어가 한 방에 무너지고 나서야 내 것이 아닌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도내 것이 아니었고 내가 이룬 성과도 내 것이 아니었다.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했지 내 몫을 챙기는 데 부주의했고, 영악하게, 때론고약하게 굴면서라도 나를 지켰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필사하는 거예요?"
"그건 말이다. 음・・・・・・ 돈키호테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누구도 『돈키호테』를 필사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한국어로 된 최초의 『돈키호테』 필사본이지."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줘요? 스페인 사람들이 알아주려 해도한국어로 된 거면 알아볼 수도 없지 않나요?"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저는 그런 장영수 씨의 번역을 도우며 그가 소설 속 돈키호테와 동화되는 과정을 목격이라도 하는 듯했어요. 어느덧 회사에 완전히 적응한 그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요. 대표는 그런 장영수 씨에게 너보고 『돈키호테』 번역을 하라 했지 돈키호테가 돼라 했냐며 타박했고, 장영수 씨는아랑곳없이 사소한 직원 복지부터 저자들의 미지급 인세까지 따지고 들어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죠.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배가 이런 부정의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할 거냐며 막몰아붙이면, 대표가 참다못해 화장실로 숨어버리기도 했어요. 사실 대표도 친한 후배인지라 무작정 장영수 씨의 말을 무시할 수는없었고, 장영수 씨는 그런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저희들의 방패막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승아 씨는 그제야 아저씨의 행동이 단지 자신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키호테』 번역은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돈키호테』 이거 일이 년 해서 될 게 아닙니다. 평생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내가 영어 강사로 탑이긴 했지만 번역은 다른 문제더군요. 나는 번역보다 중요한 돈키호테의 꿈을 배웠어요. 이제이 책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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