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는 우연적 확률에 기반하는 반면,
유신론은 필연성으로서의 창조주에 기반하여 우주와 생명의 시작을 설명합니다.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는 과학으로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과학의 무한한 능력을 강조하는 반면, 유신론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없는 영역, 즉 초자연적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듯이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 두 가지를 고려해볼 때 그 법칙들을 활용하는 물리학자들조차도 그 법칙의가장 중요한 부분이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못함을 우리는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물리학은 "왜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리학은 ‘이 세상에 시간과 공간이 있고, 모든 물질들은질량과 전하가 있다.‘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서 그 전제위에서 모든 자연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학문입니다. 그래서이 세상에 시간과 공간이 있고, 모든 물질들은 질량과 전하가 있다.‘라는 것은 물리학에 있어서는 수학에서 말하는 공리axiom‘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의 존재, 질량과 전하의 존재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전제인 것이지, 그존재에 대해서 물리학이 설명해야 하는 대상은 되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비록 물리학은 이 세상의 대단히 많은 자연 현상을 잘 설명해 주는 학문이지만, 그러한 현상들이 이 자연에 ‘왜 존재하는지, 왜 그러해야만 하는지, 그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은 다만 그러한 경험적현상들을 최대한 간단한 개념과 이론과 모델을 통해 기술describe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학문이지 그 현상들이왜 일어나야만 하는지,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학문은 아닌 것입니다.

결국 과학은 스스로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법칙들조차도 그 법칙들이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는한계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법칙들도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과학이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해 논하는 신앙 · 종교의 문제에 관해서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신앙적 · 종교적 문제에 대해 과학은 과연 과학만능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의미 있는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창세기에서 창조와 관련한 부분을 읽으면 우리는 하느님이 마술사로서 강력한 마술 지팡이를 갖고서 모든걸 끝내셨다고 상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존재들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각각에게 부여하신 내적인 법칙들에 따라서 그것들이 발전해 나가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발전하고 그들의충만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주의 기원으로서 제안되고 있는 빅뱅 이론은 창조주 하느님의 개입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개입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자연 안에서의 진화는 창조에 대한 관념과 갈등하지 않습니다.
진화는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황께서는 진화하는 존재의 ‘창조‘가 전제되어야그 이후의 진화가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하고계십니다.

어느 순간 ‘창조주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 지구상에 생명체가출현하였다. 그 후 그 생명체의 후손들이 오랜 기간의 진화과정을 거침으로 인해 현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형성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진화론을 통해 유신론을 옹호하고계신 것입니다. 바로 이 견해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아마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하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진화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하버드대학교의 수리 진화생물학 교수인 마틴 노박(Martin Nowak, 1965년-현재)이 2011년에 한 언론 인터뷰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진화에 관한 순수한 과학적 해석은 무신론을 선호하는 주장을 만들지 않는다. 과학은 하느님을 부정하거나 종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중력이 그렇지 않듯이, 진화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주장이 아니다.

진화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펼쳐지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스도교의하느님은 ‘그분이 없으면 절대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 분인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과학으로 설명불가능한 초자연적 세상, 기적으로채워지고 있는 세상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자연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이 기적들은 ‘하느님께서 분명히 계시다!‘라는 점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여전히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21세기 과학 시대에서도 여전히 신앙은 필요한 것입니다.

‘확실certainty‘은 과학의 객관적인 지향점이지만, 확신certitude‘은 과학자들의 주관적인 현실적 태도입니다.
과학만능주의자들의 "그렇다!"라는 응답은 사실 ‘확신‘의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내적 확신은 그들이 지닌일종의 믿음, 신념, 더 나아가 ‘신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학만능주의의 근간에 있는 이 확신을 ‘비종교적 신앙‘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따라서 과학만능주의는 일종의
‘비종교적 신앙‘인 것입니다.

분명한 점은, 과학은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등의 존재론적인 질문들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등 의미론적이거나 윤리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도 답을 주지 못합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재현성과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가살아가면서 접하는 많은 질문들은 사실 개별적이고 시간이지나면서 답이 변하는 것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 과학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이 이 세상의모든 질문들 · 현상들에 대해 답을 해 주지는 못하다는 점을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 시대에 맞는 인간의 태도는 바로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겸손되이 깨어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학science과 신앙faith 이 십자가의 두 축과 같이우리 삶의 두 축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과학은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게될 것이고, 우리의 신앙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맹목적인 신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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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언니가 그렇게 말한 건 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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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이가 다른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들어온 질서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것.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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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관점을 바꾸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와 언어장벽에 상관없이 보편적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입장 바꾸기다. 차이의 비밀을 풀어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가장 활력 넘치는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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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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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라는니체의 말을 믿으며 견디고 또 견딥니다. 한계와 흠결이 많은사람의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목에 칼을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입법자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때문에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 내 의견이 공적인 일에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고 해도 나는 한 자유국가의 시민이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공무에 관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 역시 당연히 갖게 된다.

한편 "정치에 관심 갖지 마!"라는 윽박지름과 함께 "정치가 너와 무슨 상관이야?"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있습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나 봅니다. 루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나랏일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나라는 망한다는 것이죠. 정치는 한 나라의 운명과 주권자 국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는 납세자, 즉 우리에게서 얼마의 세금을 걷을지 결정합니다. ‘슈퍼리치 super rich로 불리는 ‘초세부자’들을 대상으로 증세를 할지 감세를 할지정합니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도 결정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어떻게 해서 이처럼 뒤바뀐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되는 문장입니다. 수사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바로 이문장으로 인해프랑스를 포함한 절대왕정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렸고, 근대민주주의의 ‘인민주권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소의 말처럼, 강고한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노예나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대부분 평생 노예나 노비로 살다가 죽었고,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농민으로 살다가 죽었죠. 신분제가 폐지된 근대사회에서도 ‘쇠사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쇠사슬‘의 종류와형태가 달라지죠.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쇠사슬‘이 있습니다.

이어 루소는 "자연은 보존 목적에 따라 어떤 존재들은명령을 하도록, 또 어떤 존재들은 복종을 하도록 창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월한 자질을 가진 목동이 가축 떼를 이끄는것처럼, 인간들의 목자들도 국민보다 우월한 자질을 갖고 있다", "왕은 신이고 국민은 가축이다" (칼리굴라) 등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를 비판합니다. 루소는 이러한 관계의 근원은 ‘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힘‘이 기성 질서를 만들었다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사회계약론》의 위대함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힘이 다했을 때 같이 사라지는 권리는 도대체 무슨 권리란말인가? (…) 강도가 으슥한 숲에서 나를 공격했다고 하자.
억지로 지갑을 내줘야겠지만 그 지갑을 감출 수 있을 때조차 양심적으로 내줄 필요가 있는가? 결국 강도가 가지고있는 권총 역시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힘이 권리를 만드는 게 아니며,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데 동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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