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라는니체의 말을 믿으며 견디고 또 견딥니다. 한계와 흠결이 많은사람의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목에 칼을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입법자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때문에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 내 의견이 공적인 일에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고 해도 나는 한 자유국가의 시민이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공무에 관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 역시 당연히 갖게 된다.
한편 "정치에 관심 갖지 마!"라는 윽박지름과 함께 "정치가 너와 무슨 상관이야?"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있습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나 봅니다. 루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나랏일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나라는 망한다는 것이죠. 정치는 한 나라의 운명과 주권자 국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는 납세자, 즉 우리에게서 얼마의 세금을 걷을지 결정합니다. ‘슈퍼리치 super rich로 불리는 ‘초세부자’들을 대상으로 증세를 할지 감세를 할지정합니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도 결정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어떻게 해서 이처럼 뒤바뀐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되는 문장입니다. 수사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바로 이문장으로 인해프랑스를 포함한 절대왕정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렸고, 근대민주주의의 ‘인민주권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소의 말처럼, 강고한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노예나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대부분 평생 노예나 노비로 살다가 죽었고,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농민으로 살다가 죽었죠. 신분제가 폐지된 근대사회에서도 ‘쇠사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쇠사슬‘의 종류와형태가 달라지죠.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쇠사슬‘이 있습니다.
이어 루소는 "자연은 보존 목적에 따라 어떤 존재들은명령을 하도록, 또 어떤 존재들은 복종을 하도록 창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월한 자질을 가진 목동이 가축 떼를 이끄는것처럼, 인간들의 목자들도 국민보다 우월한 자질을 갖고 있다", "왕은 신이고 국민은 가축이다" (칼리굴라) 등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를 비판합니다. 루소는 이러한 관계의 근원은 ‘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힘‘이 기성 질서를 만들었다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사회계약론》의 위대함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힘이 다했을 때 같이 사라지는 권리는 도대체 무슨 권리란말인가? (…) 강도가 으슥한 숲에서 나를 공격했다고 하자. 억지로 지갑을 내줘야겠지만 그 지갑을 감출 수 있을 때조차 양심적으로 내줄 필요가 있는가? 결국 강도가 가지고있는 권총 역시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힘이 권리를 만드는 게 아니며,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데 동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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