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환상과 기도라는 두 극점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일상사에 정신없이 빠져서 ‘기도‘ 라는 말
이 성가시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가 쉽고 당연해서 삶이라는 말과 거의 똑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그 중간 어디쯤엔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한 손으로는 우리의 귀중한 소유물을 잡은 채 기도하면서 그것이 지닌 미혹성을 어렴풋하게나마 겨우 의식할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때 우리는 반쯤은 잠들고 반쯤은 깬 흐리멍텅한상태에서 다시 한 번 깨어나게 됩니다. 전쟁의 위기나 급작스런 가난, 병, 죽음 속에서 ‘인생의 부조리들‘ 에 맞닥뜨리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중립적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고 어떻게든 반응을 보이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많은 경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눈에 띄는 반응은 우리의 당황스러움에서 터져나오는 반발심입니다. 자신의 환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고 우리의 반항심을 기도로 바꾸라는 요구를 받는 때가 바로 인생의 힘겨운 순간들입니다. 이것은 아주 어렵지만 우리를 실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일이 아니라 오히려 실체에 더 가까이 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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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그 사람이 이미 우리의 삶을 참으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들에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이 멀리 떠나 있을 때 더 깊어질 수 있듯이, 자녀는 집을 떠났을 때에야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있듯이, 또 연인들이 서로 오래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한 관계는 하나님의 부재라는 정결한 체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갈망에 귀기울임으로써 하나님이 그 갈망을 지으신 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기 고독을 접하면서 자신이 이미 사랑의 손길로 만져졌음을 느낍니다. 사랑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친밀함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친밀함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점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길을 끈기 있고 공손하게 기다리기 위해 마음을 계속 열어두기란 아주어렵습니다. 그 물음들의 타당성을 묻기보다는 빠른 해결책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손쉬운 치유를 약속하는 제안이라면 무조건 거기에 믿음을 두려는 경향이 너무나 강해서, 영적인 체험들이 아무데서나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으며 또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상품인 양 가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은 사람이 꾸며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와 ‘아직‘ 사이, 부재와 임재 사이,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심리적인 구별을 뛰어넘으시는 분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중에만 환상에서 서서히벗어나 시편 기자가 기도했듯이 우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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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자신의 불길로 너 자신을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길 바랄 수 있겠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말처럼 스스로를 불태워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결단이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판단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반복적인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들,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주변을 관찰해야 주위를 넘어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잘못간주되고, 거의 관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223쪽). 가장 사소한 것과 가장 일상적인 것에 무지하고 예리한 안목이없다는 것, -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재앙의 초원으로만드는 것이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사소한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일상을 비상하게 만드는 사건을 만들 수없다. "우리가 이 작은 잡초를 조심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때문에 몰락한다(341쪽)." 《아침놀》의 435절에 나오는 말이다. 전복과 파괴는 일상에 대한 비상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무조건 뒤집어엎고 파괴하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건축과 시작이 보장되지 않는다. "인간은 왜 사물들을 보지 못하는가? 이는 인간 자신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물들을 은폐한다(342쪽)." 《아침놀》 438절에 나오는 니체의 말, 통찰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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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뛰어든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제 생각, 그제 생각, 내일 생각, 모레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바로 이 순간, 오늘이라는 짐승은 자신을 잡으라고 다양한 헤르메스를 우리에게 보낸다. 그것은 태양일 수도, 바람일 수도, 꽃일 수도,계곡일 수도, 애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뛰어들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알몸의 무게"를 감당한다면, 우리는 다른어느 날도 아닌 바로 오늘을 향유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 혹은 ‘무상을 잡는 일은 이렇게 완성된다. 김선우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근사한 아침은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만들거나 커피를 마시려고 불을 켜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건 잠을 깨기 위해서이거나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이는 쓸데없이 성냥을 켠다. 불을 가지고놀거나 장난치기 위해서다. 불놀이나 불장난으로 불을 켜는 것에다른 목적은 있을 수 없다. 불을 켜는 행위 자체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의 성냥 켜기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다면 아이의 성냥 켜기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호모루덴스(Homo Ludens)』(연암서가, 2010)에서 노동과 놀이를 구분한 것도이런 이유에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노동‘이고, 반대로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면 ‘놀이‘라는 것이다.
휴가철이면 해변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삽이나 바가지를 들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해변에다양한 모래성을 진지하게 만들며 즐거워한다. 바로 이것이 ‘놀이‘
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성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모래성을 만들 뿐이다. 아이가 ‘놀이‘로 즐기던 모래성 만들기를
‘노동‘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엄마가 아이에게 "모래성다섯 개를 만들면 밥을 줄게"라고 명령하면 아이의 ‘놀이‘는 그 즉시 ‘노동‘으로 바뀐다. ‘모래성 만들기‘는 이제 ‘수단‘이 되고, 밥 먹기‘가 목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모래성 만들기‘는 더 이상 아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고, 아이가 마음대로 그만할 수 없는 ‘노동‘이 되고 만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북한산 꼭대기에서 출석을 부른다고 하면 학생들은 출석 체크를 위해 힘들게 산을 오를 것이다. 이들에게 ‘산행‘은 출석 체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곤혹스런 노동이다. 반면 이 학생들과 나란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있다. 그들은 즐거워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기에 힘이 들면 언제든그만둘 수 있는 ‘놀이‘로서 산행을 즐기는 것이다. ‘놀이 자유명랑‘이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노동 의무 우울‘은 또 다른 계열을이룬다. 우리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삶을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수단과 목적이 분리되는 삶을 지향할 것인가? 혹은 놀이로서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키팅 선생의 가르침대로 ‘오들을 잡은 것이고, 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오늘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카르페 디엠!" 의 가르침은 오늘 하루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어야 한다는 명령인 셈이다.

"아름답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이 사랑이 싹트는 순간이라는사실도 중요하다. 벚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벚꽃이 지는 순간 어떻게 애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 돌리지 않고 무상에 직면해야 자비의 마음이 싹트는 법이다. 그러니 매너리즘에서탈출하는 첫걸음은 세상의 무상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변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매일 최소한 세 가지씩 변한 것을 찾아내자. 기온이나 바람이어도좋고, 흘러가는 뭉게구름이어도 좋고, 화려하게 꽃이 핀 나무여도좋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여도 좋고, 녹음이 짙어진 가로수여도 좋다. 아니면 아내의 얼굴빛이어도 좋고,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이어도좋고,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여도 좋고, 직장 후배의 멍한 표정이어도 좋다.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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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지나치게 사람 중심이라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원이라고 봐. 지금의 동물원은 동물의 복지나 권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이번 퓨마 사건 때도 동물원이 제대로 대처했다면충분히 생포할 수 있었을 거야. 동물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점이 됐지. 이제는 전시된 동물을 보고 좋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생각해."

100년 전, 인도의 민족 해방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는말한다. "한 국가의 권위는 그 나라가 동물을 다루는 방법으로판단할 수 있다."
동물을 바라보던 기존의 세계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3년,미국의 동물 운동가 알렉스 허쉐프트 Alex Hershaft는 간디의 생일10월 2일을 ‘세계 농장 동물의 날(World Farm Animals Day)‘로 지정했다. 오늘날에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채식을 실천하면서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있는데, 동물원이라고 예외겠는가?

동물의 복지를 위한다고 해서, 어떤 동물에게도 손끝 하나 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주장도 아니다. 그보다 동물을 대하고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 더 나아질 수 없는지 고민하자는 거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1965년, 동물과 관련된 전문가들로 이뤄진 영국의 브람벨 위원회는 동물에게 ‘5대 자유 지침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허기와 갈증에서의 자유 쉴 수 있는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충분히 움직일수 있는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인간이 동물을사육할지라도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철학자 』터 싱어Peter Singer는 1975년 그의 저서 『동물 해방』을 통해 고통은 주체가 무엇이든 고통 그 자체‘라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해 주장했고, 세계는 기존의 생각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 은 동물 복지를 배려한 가축 시설을 설계했다. 자폐 증상을 앓던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능력 덕분에 동물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했고, 좀더 편안하게 소가 죽을 수 있는 시설‘을 설계했다. 현재 미국의도축 시설 절반이 이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인 남성이 캐나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성 소수자였던 그는 한국 군대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 차별과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캐나다 정부는 이를받아들였다. 그 사람의 재산을 따지지도 않았고 ‘한국에는 개를잡아먹는 문화가 있다‘는 소문을 심사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한편 한국에는 사업차 체류하던 중에 종교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한 이란인 부자(父子)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천주교 신자가되었는데,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이를 배교‘ 행위로 보고엄중 처벌을 내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난민은 단순히 빈곤 문제에서 비롯되지만은 않는다. 그보다 어떤 이유로든 개인의 존엄성이 사회로부터 탄압받는가‘가 중요한 난민 신청 사유가 된다. (참고로, 이란인 아버지는 2016년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으며, 아들만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이제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생활이 위태로워졌을 뿐이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잘 살다가 운명의 기로에 서야 했다. 이런 식이다. 반군이 지역을 점령하면, 정부군을 지지했던 사람은 사형시킨다. 반군을 환영하면 군대에 끌고 간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는 죽을 목숨 아니겠는가. 그러니 의사도 교사도,심지어 연예인도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특정 이미지로 ‘난민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타국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자격시비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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