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중간적 존재입니다. 삶과 죽음의 중간적 존재. 이룬것과 이루지 못한 것의, 현실과 꿈의, 어둠과 빛의, 기쁨과 슬픔의, 출발점과 목적지의, 어제와 내일의 중간적 존재입니다.
까뮈의 문장이 있습니다. 까뮈는 "나는 비참하였다. 그러나그렇게 비참하진 않았다. 나에게는 태양이 있었다."라고 말했지요. 비참과 태양 사이에서 그는 태양 쪽으로 걷고 싶어 했습니다. 태양이 있는 쪽으로, 빛 쪽으로, 또다시 빛 쪽으로 결코눈을 떼지 않고 그러나 환상은 없이. 그렇게 걸음을 걷는 것이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중간적 존재인 우리에게 그 중간 지대에서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그게 별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위로받고 싶어 하는 거, 그게 아주 독입니다. 그건 끔찍하고 비겁한 일입니다.
저는 그때 3년 어디 가서 조용히 지내야 했던 겁니다.

이젠 주장하지 않고 듣고 싶어졌습니다. 누가 "난 쭉쭉빵빵이 좋아." 그러면 예전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젠 묻습니다. "왜 좋아? 언제부터 그랬어? 촉감 때문이야? 아니면 야동을 많이 봐서 그러니?"
듣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싫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나요?"란 질문이 가능함을. 그리고 그 질문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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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내가 이 세상 앞에서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이문재)

우리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도 우리는그런 방식으로 배워왔다. 결국 우리는 생소한 것에 대해 선의와 인내, 공정함과 온후함을 베푼 보상을 받게 된다. 생소한 것이 천천히 자신의 베일을 벗고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아름다운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친절에 대해그것이 보내는 감사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런 길을 거쳐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길은 전혀 없기때문이다. 우리는 사랑도 배워야만 한다.

피천득 시인은 『인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한 테크닉이 필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 요컨대, 인간관계에서 꼭 마음에 새겨둬야 할 원칙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꼭 진실이고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바닷가에 대하여」라는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경청은 무섭다. 귀 열고 허리 펴고 상체를 조금 상대방 쪽으로 기울인 채 듣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열린다. 상대의 말이 내마음을 삼킨다. 그날이 꼭 그랬다.

나는 인간이란 커다란 여행 가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동댕이쳐지고 덜컹거리며 보내지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지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아니면 더 꽉꽉 채워지다가 마침내 궁극의 짐꾼이 궁극의 기차에 핵 올려놓으면 덜그럭거리며 사라져버린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집 『가든파티』에 수록된 단편「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에서는 인간을 가방에 비유하는…

우리의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의 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은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중대한 순간들을 모두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은 채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죽음까지 가려 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의 한 구절입니다.

갑자기 나는 비둘기들을 지켜보면서 배고픈 것을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에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배고픔은 단지 치통 정도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주의를 다른곳으로 돌리면 그걸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갑자기 나는 몸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마치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 에릭호퍼 ‘길위의 철학자’ -

인생의 문제들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게 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큰 어려움에처해 있거나 스트레스에 파묻혀 계신다면, 잠시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멀리서 자기 모습을 지켜보세요. 아니면 다른일에 몰두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어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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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반쪽을 만나야겠다는 바람은 더 좋은 반쪽이 되고싶다는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희망하게 되었어요. 나의 성장을 이끌고 그의 성장이 또 나를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

남편이 화가인데 아내가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그 가정생활은 다소 절름발이 격이 되지 않을까. 부부란 서로의 호흡을 공감하는 데서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인 줄로안다. 자기가 전공한 것이 미술이 아니라도 미술가와 결혼을하게 되었다면 미술에 대한 기본 공부를 해보는 것이 남편의세계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려니와 자기 자신의 정신생활 또한그만큼 폭넓게 하는 길이 될 거다.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거나 같이 자거나 여행을 하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는 것을, 너무 젊어 기운이 넘쳤던 시절에는 그렇게 담담한 인간관계를 알지 못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스위트 히어애프터』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꼭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지 않아도 소중한관계일 수 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또 한 번 느낍니다.
여러분은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라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저 역시 그런 적이 있습니다. 특히 몹시 노력했던 일이 형편없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더 이상 열심히 살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장을 덮을 때쯤
‘무의미의 축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무의미하다는 것은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반대죠. 이 세상 모든 것에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는 것, 무의미한 것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해 축제‘로 만들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상실과 슬픔마저도요.

사탕 더미의 무게인 79.3킬로그램은 바로 작가의 연인의 체중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아요. 시간이 연인을 갈라놓을 순 있다(작품이 전시되는 동안 사탕이 사라지는 것).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회복되고영원히 기억되고 이어지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매일 아침사탕의 무게가 다시 회복되어 채워지는 것). 작가는 연인을 잃은슬픔에 빠져 자신을 해치는 대신, 상실마저도 예술로 승화시켜 자신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빛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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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쓰셨다. "때론 시련이 큰 그릇을 만든다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은 작은 그릇마저 찌그러뜨리기 일쑤란다." ‘찌그러진 작은 그릇으로 민주주의를 일굴 수는 없다.

마르크그라프 알브레히트가는 베를린의 번화가인 쿠어퓌르스텐담과 맞닿아 있는 중산층 거주 지역이다. 100미터 남짓한 이아담한 거리에 유태인을 추모하는 황동판이 무려 36개나 심어져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 아름답고 평온한 거리가 아우슈비츠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일상에 불현듯 틈입한 역사에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거리에 황동판을 심는 일을 시작한 이는 군터 뎀니히라는 예술가다. 그의 목적은 "번호로 불리며 살해당한 희생자들이 자유인으로 살았던 마지막 거처에 그들의 이름을 되돌려놓는 것이다. 가로, 세로, 높이 10센티미터의 돌 위에 황동판을 붙여놓은이 작은 추모석을 그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말로는 ‘걸림돌이다. 아직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다는사람은 없다. 땅을 파고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독일인도 없으리라. 그들의 끔찍한 과거를매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허리를 굽히고 앉아 ‘걸림돌을 보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름답지 않아요? 이렇게 과거를 불러내는 것이. 더욱이 희생자의 과거를 잊지 않고 매일같이 만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매일 집 앞에서 아우슈비츠를 만나야 하는 독일인의 심정이궁금해, 한 중년 여성에게 걸림돌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에 대해물었다.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마땅히 짊어져야 할 부담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걸림돌은 이제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에 6만 5천 개넘게 심어졌다. 공적 역사에 묻혀온 개인적 역사가 집 앞에 되살아나고, 익명의 희생자들이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 있다. 독일인들은 아침마다 과거의 걸림돌에 걸려 비틀거릴 테지만, 바로 그렇게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배우고, 결국 과거를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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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더 좋아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는 걸요."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괴로운 고립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누군가 내 편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혼자있을 때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던 불행과 걱정도, 친구나 연인과 수다를 떨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해결하기 힘들 것 같던 문제의 해결책을 너무 쉽게 찾기도 하죠. 인간은 결코 ‘개인‘ 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즉 ‘우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람에게 사람이, 우리’ 에게 우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이면서 둘도 없이 특별한 존재다. 세계의 모든 일은 그 안에서 오직 한 번씩만 교차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 판결문을 읽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상처를 주는 일보다 그 사람이 혼잣말만 하도록, 즉 계속 고립된 상태에 있도록 방치하는 게 더 나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혼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면, 그 고독은 좋은 것일 수 없습니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자기 위안은소한의 사회적, 심리적 관계가 바탕이 되었을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고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불과하다는 사실을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항상 반대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이 둘이 있어야만 하죠. 빛에다 빛을 더해도 아무 의미가없습니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올 때, 그걸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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