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반쪽을 만나야겠다는 바람은 더 좋은 반쪽이 되고싶다는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희망하게 되었어요. 나의 성장을 이끌고 그의 성장이 또 나를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
남편이 화가인데 아내가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그 가정생활은 다소 절름발이 격이 되지 않을까. 부부란 서로의 호흡을 공감하는 데서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인 줄로안다. 자기가 전공한 것이 미술이 아니라도 미술가와 결혼을하게 되었다면 미술에 대한 기본 공부를 해보는 것이 남편의세계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려니와 자기 자신의 정신생활 또한그만큼 폭넓게 하는 길이 될 거다.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거나 같이 자거나 여행을 하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는 것을, 너무 젊어 기운이 넘쳤던 시절에는 그렇게 담담한 인간관계를 알지 못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스위트 히어애프터』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꼭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지 않아도 소중한관계일 수 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또 한 번 느낍니다. 여러분은 "매일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의 성이 생긴다"라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저 역시 그런 적이 있습니다. 특히 몹시 노력했던 일이 형편없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더 이상 열심히 살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장을 덮을 때쯤 ‘무의미의 축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무의미하다는 것은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반대죠. 이 세상 모든 것에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는 것, 무의미한 것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해 축제‘로 만들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상실과 슬픔마저도요.
사탕 더미의 무게인 79.3킬로그램은 바로 작가의 연인의 체중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아요. 시간이 연인을 갈라놓을 순 있다(작품이 전시되는 동안 사탕이 사라지는 것).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회복되고영원히 기억되고 이어지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매일 아침사탕의 무게가 다시 회복되어 채워지는 것). 작가는 연인을 잃은슬픔에 빠져 자신을 해치는 대신, 상실마저도 예술로 승화시켜 자신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빛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