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스트럭처라는 개념은 비교적 새롭고 완전히 현대적인 개념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가리켜 "사업 ·하부구조 기반 등 하위 요소를 통칭하는 단어"라 정의한다. 인프라가 지탱하는 상위 활동들은 경제적·군사적·사회적 활동일수 있다. 과학과 기술을 연구했던 사회학자 수전 리 스타susan Leigh Star는 대표적인 논문 「인프라스트럭처의 민족지학적 연구The Ethnography of infrastructure에서 인프라란 "말뜻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른사업의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프라는 "다른 구조물, 사회적배치, 기술 등의 내부로 파고들어가 그 내부에 자리 잡는다"고 덧붙였다. 인프라는 목표에 따라 매번 재고안하거나 새로 조립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용자가 뚜렷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해당 목표 달성을 도우며, 또한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다. 인프라는 한 번에 혹은 전체적으로가 아니라 조립식 증강을 통해 갖추어진다.
인프라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집단 구성원들은 시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프라는 무너졌을 때 가장 명백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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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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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가 컸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폭염을 가장 잘 견뎌낸 지역 주민들과 같은 가치들을 중시했으며, 평상시건 유사시건 다른 이들을 도우려고 진심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차이점은 문화적인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혹은 공동체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엥글우드 같은 지역에서는 조악한 사회적 인프라가 사람들의 교류를 억제했고 상호 지지를 방해했지만, 오번그레염 등에서는 사회적 인프라가 교류와 상호 지지 등을 북돋았다는 점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엥글우드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한반면, 시카고에서 폭염 현상을 가장 잘 견뎌낸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가 거의 없었다. 1995년 오번그레섬 주민들은 걸어서 식당 ·공원·이발소·식료품점 등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동네 반상회와 교회 모임에도 참여했으며, 서로서로 알고 지냈다.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그들이 사는 곳에서는 가벼운 교류가 일상적으로 자연스레 일어났다.
이 평범한 일상은 곧 폭염이 닥쳐왔을 당시, 사람들이 노인과 아픈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서로가 괜찮은지 확인해보기 쉽게 만들었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 때면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죠." 50년 가까이 오번그레셤에 거주한 베티 스완슨 Betty Swanson이 말했다. 심지어 폭염이 점점 더 빈번하고 심각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오번그레셤처럼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에 살면 집집마다 에어컨을 갖춘 것과 별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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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대인 네트워크를 가늠하는 데 흔히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는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지칭한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 식당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전한 사회적인프라를 갖춘 장소에서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이 같은 장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준하게 반복해서 모여들 때, 특히 즐거운 일을 하며 교류할 때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싹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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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이 무감각해졌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나는 정직하게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문명인인 데 반해, 이런 것을 누리지는 못해도 원주민은 대부분 ‘풍요로운’ 원주민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만약 문명이라는 말이 개선된 상태의 인간 삶을 칭하는 것이라면(나는 그 말이 맞다고 보지만,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문명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 문명은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도 인간에게 더욱 나은 주거 여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란, 내가 삶이라 칭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대가로 지금 당장이든 장기적으로든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삶을 지불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어 봐야 얻게 되는 이득이란,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껏해야 자신의 장례비용 정도 치르는 용도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자신의 장례를 자기가 직접 치를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미래를 대비하는 성향은 바로 문명화된 인간과 원주민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문명화된 삶을 제도화해서 개개인의 삶 또한 대부분 그 제도에 흡수시킨 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완성시켜 모두에게 이득이 되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현재 그 이익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지고 있는가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어떠한 불이익으로 고통받는 일 없이도 그 모든 이득을 얻으며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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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리를 가슴에 품었던 것을 후회하네. 내가 지킬수 없는 진리를 버리기로 한 것일세.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내가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진리는 내가 지킬 수 있을 때만 진리일 뿐이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진리가 아닌것일세. 그런 점에서 서학은 내게 진리가 아니네..
서학이 말하는 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진리를 지키고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서학을 버리기로 했네. 지킬 수 없는 진리를 부여잡고 번민하고 끙끙거리고 울부짖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짓을 더이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천주를 부인하네.
그래도 또 묻고 싶은가? 왜 천주를 버렸느냐고?
자네가 다시 물으니 다시 답을 함세. 힘이 들었네. 천주를 믿는 일이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 한 번 믿는다고 고배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네. 신앙은 내게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용기를 요구했네, 신앙은내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했네. 신앙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삼아 성장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줄능력이 없었네. 아무나 천주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
조선처럼 신앙의 뿌리가 없는 나라에서 믿는 일이란 지극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네. 지쳤어. 그 고통을 계속 이겨 나가는 일이 버거웠어.
끝이 보이지 않는 수난의 길을 계속 갈 힘이 없었네. 그래서 나는 포기했어. 신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지.
자네가 아는 것처럼 나는 몇 번이나 천주를 부인했네. 그리고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떤 때는 죽을상을 지으며 교회로 돌아오곤 했지. 배교와 회개를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어. 그러는 사이에 내 육신과 영혼이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졌네. 내 양심이 뭉개졌어. 양심이 철저히 뭉개지더라고, 그 행동을 반복할 수가 없네. 더이상 배교와 회개를바보하고 싶지 않아.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백기를 던지네. 나는 정직한 배교자로 남으려네

... 맡기 싫다고 피할 수도 없었고 맡고 싶다고 맡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 그것은 절대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사람의 뜻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그때는 믿었네. 어쨌든 우리는 그 일에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했네. 그점은 우리 서로 인정하기로 하세. 우리는 서품 받지 않은 임시신부였지만제대로 된 신부로 살려 했고 사제답게 처신하려고 애썼네.
그때 처음으로 사는 보람을 느꼈어. 하늘에 계신 천주와 가까워지는듯했고 주님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네. 나의 은밀한 기도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내 어깨 위에 다정하게 손올려 위로해 주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나는 여러 차례 실감할 수 있었어..
늘 감시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기에 몸은 고단하고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행복했네. 사람이 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복을 주시겠다고하신 주님의 말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위로와 영적 보상은 물론이고 친구와 교우들로부터 풍성하고 분에 넘치는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것이 권력의 맛이란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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