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리를 가슴에 품었던 것을 후회하네. 내가 지킬수 없는 진리를 버리기로 한 것일세.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내가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진리는 내가 지킬 수 있을 때만 진리일 뿐이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진리가 아닌것일세. 그런 점에서 서학은 내게 진리가 아니네..
서학이 말하는 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진리를 지키고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서학을 버리기로 했네. 지킬 수 없는 진리를 부여잡고 번민하고 끙끙거리고 울부짖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짓을 더이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천주를 부인하네.
그래도 또 묻고 싶은가? 왜 천주를 버렸느냐고?
자네가 다시 물으니 다시 답을 함세. 힘이 들었네. 천주를 믿는 일이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 한 번 믿는다고 고배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네. 신앙은 내게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용기를 요구했네, 신앙은내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했네. 신앙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삼아 성장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줄능력이 없었네. 아무나 천주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
조선처럼 신앙의 뿌리가 없는 나라에서 믿는 일이란 지극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네. 지쳤어. 그 고통을 계속 이겨 나가는 일이 버거웠어.
끝이 보이지 않는 수난의 길을 계속 갈 힘이 없었네. 그래서 나는 포기했어. 신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지.
자네가 아는 것처럼 나는 몇 번이나 천주를 부인했네. 그리고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떤 때는 죽을상을 지으며 교회로 돌아오곤 했지. 배교와 회개를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어. 그러는 사이에 내 육신과 영혼이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졌네. 내 양심이 뭉개졌어. 양심이 철저히 뭉개지더라고, 그 행동을 반복할 수가 없네. 더이상 배교와 회개를바보하고 싶지 않아.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백기를 던지네. 나는 정직한 배교자로 남으려네

... 맡기 싫다고 피할 수도 없었고 맡고 싶다고 맡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 그것은 절대자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사람의 뜻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그때는 믿었네. 어쨌든 우리는 그 일에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했네. 그점은 우리 서로 인정하기로 하세. 우리는 서품 받지 않은 임시신부였지만제대로 된 신부로 살려 했고 사제답게 처신하려고 애썼네.
그때 처음으로 사는 보람을 느꼈어. 하늘에 계신 천주와 가까워지는듯했고 주님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네. 나의 은밀한 기도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내 어깨 위에 다정하게 손올려 위로해 주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나는 여러 차례 실감할 수 있었어..
늘 감시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기에 몸은 고단하고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행복했네. 사람이 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복을 주시겠다고하신 주님의 말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위로와 영적 보상은 물론이고 친구와 교우들로부터 풍성하고 분에 넘치는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것이 권력의 맛이란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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