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끊임없이 도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그와 동시에 사회는 난폭해진다. 공손함이 사라진다.진정성 숭배는 공손함을 경멸한다. 아름다운 교제 형식들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이런 면에서도 우리는 형식에 적대적이다. 도덕은 사회의 야만화를 배제하지않는 것으로 보인다. 도덕은 형식이 없다. 도덕적 내면성은 형식 없이 작동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있을 것이다. 사회는 도덕화 경향이 강할수록 더 불손하다. 이런 형식 없는 도덕에 맞서 아름다운 형식의 윤리를 방어해야 한다."
힘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을사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끝까지행사되는 힘은 사람을 문자그대로 사물로 만듭니다. 사람을시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잠시 후엔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일리아스가 우리에게 끊임없이제시하는 광경입니다.
우리는 다음 조건을충족시켜야만 사랑할 수 있고정의로울 수 있습니다. 힘의제국을 인식하고, 힘의 제국을존중하지 않을 줄 알아야한다는 것.
삶은 우리 안에서 조용히 작용한다. 너무 조용해서 듣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단순한 삶을 선택한 사람은 주변에서 그리고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조용한 작용에 계속 귀 기울인다.이 책에서 살펴볼 많은 사례에서 단순한 삶이란 바쁜 생활의 소음을 잠재우고 생명이 발산하는 나직한 음성을 듣는 일이다. 한때 모든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조용한 작용은 전체로 경험되는 세계, 말 그대로 ‘단순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차이를지운다. ‘단순함simplicity‘ 이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 ‘심플렉스simplex‘에서 유래되어 프랑스어 ‘심플리시테simplicité‘를 거쳐 생겨났다. 어원은 인도 유럽 고어인 sem 하나과 plek다이 합쳐진 것으로 한 겹 또는 ‘전체‘를 말한다. 우리 내부와 주변에서 들리는삶의 나직한 음성은 개념적 범주로 분리된 모든 것을 통합시킨다. ‘살아 있음은 삶의 양식으로서 단순함을 실천할 때 경험되고 활력을 얻는 조용한 에너지의 이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과 해방을 주시는 성령의 법에따라‘로마 8,2 그리스도 안에서 걷고 뿌리내리고 자신을 굳건히세우려‘콜로 2,6-7 한다면, "빛 속에서" 1요한 1,7 그리고 "사랑 안에서 에페 5,2 새로운 삶의 길을 걷고로마 6,4 싶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중심에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는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나를 좋아해도 되는것일까? 우리에겐 마음도 있고 심장도 있습니다. 그 질문을던질 때 그것들이 다 움직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태어난 것, 그 이유를 찾는 데 우리는 늘 결정적으로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지금 우리 자신의 삶에 우리가 아주 약간의 원인 제공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는 사실상 타인에의해 결정되는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힘센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하는 한도 안에서만 우리는 유연할 수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는 매일매일 묶여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시지프스이면서 동시에 반항하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합니다.내가 원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이렇게 행동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세계는 …… 우리가 자신을 알기 위하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 거울이다. 요컨대 나는 세계가 나의 교과서가 되기를 바란다.『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박홍규.
내가 당신 마음에 들고 당신에게 중요해진 건 내가 당신에겐 일종의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내 내면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받고 서로조응하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 같은 기인들은 괴팍하고 쉽게 마술에 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수 없고 읽어낼 수도 없고 세상 어느 것 하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 기인이 느닷없이 그를 정말로 응시하는 얼굴을, 그에게 어떤 대답을 줄 것 같고 어떤 친밀함을 풍기는 그런 얼굴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거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얼굴에서 우리는 ‘최고의 나‘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