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윤태호 작가는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나를 좋아해도 되는것일까? 우리에겐 마음도 있고 심장도 있습니다. 그 질문을던질 때 그것들이 다 움직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태어난 것, 그 이유를 찾는 데 우리는 늘 결정적으로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지금 우리 자신의 삶에 우리가 아주 약간의 원인 제공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는 사실상 타인에의해 결정되는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힘센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하는 한도 안에서만 우리는 유연할 수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는 매일매일 묶여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시지프스이면서 동시에 반항하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합니다. 내가 원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행동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세계는 …… 우리가 자신을 알기 위하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 거울이다. 요컨대 나는 세계가 나의 교과서가 되기를 바란다.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박홍규.
내가 당신 마음에 들고 당신에게 중요해진 건 내가 당신에겐 일종의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내 내면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받고 서로조응하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 같은 기인들은 괴팍하고 쉽게 마술에 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수 없고 읽어낼 수도 없고 세상 어느 것 하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 기인이 느닷없이 그를 정말로 응시하는 얼굴을, 그에게 어떤 대답을 줄 것 같고 어떤 친밀함을 풍기는 그런 얼굴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거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얼굴에서 우리는 ‘최고의 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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