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경주를 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돌멩이가 날아와서 넘어진사람은 ‘운이 나빴다‘는 위로를 받을 만해. 그러나 인간이 노력할수 있는 세계에 운을 끌어들이면 안 돼. 커트라인 1점 차로 누군가는 시험에 붙고 떨어지지만, 그것도 근접한 수준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야. 세상은 대체로 실력대로 가고 있어. 그래서나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좋아하지 않아, ‘노력해봐야 소용없다‘
는 자조를 경계해야 하네."

"질문 하나 하겠네. 한밤의 까마귀는 눈에 보일까? 안 보일까?"
"한밤의 까마귀는 안 보이겠지요."
"한밤의 까마귀가 안 보이더라도 한밤에 까마귀가 어딘가에는 있어. 그렇지? 어둠이 너무 짙어서, 자네 눈에 안 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기도 하겠지. 그런데 우리는 그 울음소리도 듣지 못해. 이게 선에서 하는 얘기라네. 한밤에 까마귀는 있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탄생, 만남, 이별, 죽음….… 이런 것들, 만약 우리가 귀 기울여서 한밤의 까마귀 소리를듣는다면,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을 느끼는 거라네."
"한밤의 까마귀를 보고 그 울음소리를 듣는 것…….…."
"그러면 깨닫게 돼.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지금 이 순간의어긋남 혹은 스파크가 도미노처럼 내 이웃, 그 이웃의 이웃, 나아가전 세계에 종으로 횡으로 은은하게 퍼져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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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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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에밀리 디킨슨의 글은 아름다운 것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의 시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시,
하지만 책에는 결코 실리지 않는다
진짜 시들은 달아난다
ㅡ에밀리 디킨슨,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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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 틀렸어!

근사한 곳에 따로 숨겨져 있을 것 같던 곳들이

너무 어이없게, 가깝게, 별거 아니게 있어.

진짜 허무하게 아름답다.

보란 듯이 가만히 있는 파리.

누군가를 좋아하면 모든 게 쉬워진다. 그 애가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 따라 좋아했고, 그 덕에 피아노와 친해졌다. 졸업한 뒤로 그 애를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지만 그 곡만은 선연히 기억했다. 어느 곳이든 피아노가 보이면 앉아서 그 곡을 쳤다. 그게 재즈인지도 모른 채 마냥 좋아했다. 그 이후로 다시 피아노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건 15년 만이었다. 수업 첫날, 나는 손과 발을 덜덜 떨면서 쌤 앞에서 첫 연주를 했다. 첫사랑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어 떨렸고, 그의 앞에서는 칭찬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누군가에게 내 부족함을 들키는 것이 어색했다. 실수를 창피해하다가 다음 박자를 놓쳤다. 쑥스러움이 내 손가락을 집어삼켰다. 쌤은 피아노 의자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장난스러워야 해요! 조금은 바보같이."

그는 연주로 이 말의 의미를 들려줬다. 그는 일부러 박자를 놓치기도 했다. 그의 연주는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러웠고, 계획된 듯하면서도 엉성했다. 또 튕겨나갈 듯하면서도 얄밉게 박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쌤은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처럼 유려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피아노 앞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듯 보였지만, 나는 쭈뼛거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지하지 못한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비엔나에서 들었던 발레 수업을 떠올렸다. 어설픈 동작을 하면서도 웃음기 없이 진지했던, 비장함이 가득했던 사람들. 나는 그들의 비장함을 빌려와야 했다. 나는 쑥스러움을 털어내고자 노력했다.

무언가에 홀려 있는 상태가 되려면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단호함을 갖는 것.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은 깨끗해진다. 그 순간에 명확히 존재하게 된다. 눈을 질끈 감고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치열하고 얼얼하게, 그것밖에는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날들을 경험하다 보면 제각기 흩어져 힘이 없던 자아가 하나로 모여 보란 듯이 할 일을 해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작은 몰입들이 쌓이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차근차근 만나는 일이며, 찜찜함 없는 깊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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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며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의궤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군분투한 그의 삶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의궤들을 되찾았습니다. 그에게 의궤는 일생을 바쳐 되찾아야 할 ‘가슴 뛰는 무엇’이었습니다. 신라의 킹메이커인 김유신도 그렇습니다.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야 출신이라는 한계였죠. 그는 ‘약점과 한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 김춘추라는 파트너를 선택해 원하던 바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뿐일까요? 불평등과 차별을 이겨내고자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은 동학 운동의 농민들, ‘다음 세대에게는 다른 세상을 물려주려 했던’ 3ㆍ1운동의 이름 모를 남녀노소들, 그리고 ‘민족의 힘과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캐물으며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회원들까지. 우리 역사는 이렇게 삶의 화두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자신만의 질문을 던졌던 작은 용기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입니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볼 때도 이토록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데 셀 수 없이 많은 궤적의 집합이라 할 수 있는 역사는 오죽하겠습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라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시선, 바로 ‘관점’입니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물살에 떠밀리듯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상처투성이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책에는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수험생을 위한 강의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강의는 시험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요. 하지만 저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본질이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본질에 충실하고자 수험서에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자 애를 써왔습니다. 가끔 ‘왜 시험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투정 어린 댓글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늘 수험생들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수정하거나 양보하고 싶지 않더군요. 역사를 향한 ‘시선’은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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