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얻고 상처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사람이므로 일생 동안 수많은 실수를 거치며,
‘성공과 실태, 성취와 좌절을 오갔다.
결국 그들은 모두 좋은 글을 남겼다. 앞으로 걸어갔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글과 말의 힘을믿었다. 불행이나 불운이 반드시 살아서 글을쓰겠다는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자신들의 삶으로 증명했다."

볼프는 신화의 가치를 긍정했다. "신화는 특별한 방식으로 인간적인 것,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문학에서 문제 삼고있는 그 인간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도록 강요합니다. .…우리는 왜 인간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계속해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가?"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발견해 낸 볼프는 희생양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의문을 던졌다

이 몸을 끌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세계
나에게 어울리는 시간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코린토스의 희생양 메데이아는 마지막까지 묻고 또 물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은 경전(經典)과도 같았다. "네 자매는 고난에 맞서 싸웠고, 서로와 어머니를 사랑했고, 전쟁보다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있었습니다. 나는 매년 그 책을 다시 읽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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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는 누군가를 제대로 격려해 주는 일이 때로는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콜레트도 먼저 누군가를 알아보고원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은퇴 후 오드리 헵번은 아프리카에서 구호 활동을 하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음 세대의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전했다. 콜레트의 어깨에 기댄 채 함께 대본을읽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은 천진스럽고 아름답다. 죽음을예감하며 글쓰기에 처절하게 매달리고 있었던 70대 후반의콜레트와,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받은 유년의 상처를극복하지 못한 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던 20대 초반의 오드리 헵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을만들 수 있는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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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그는 『페스트』에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리유의 입을 통해 페스트와 전쟁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어리석은 짓이니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듯이 페스트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그런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것이 아니므로 비현실적이거나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오만하고 습관적이어서 여전히 모든 것이 전처럼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재앙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인정해야 할 것이면 명백하게 인정하여,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한다.

진실이 아니라 사랑이 부조리에서 구원해준다고 믿는다. 그 사랑은 동지애와 우정 같은 좀더 넓은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시시포스 신화』에서 그는말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사치가 있을 뿐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관계의 사치다.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이 세계 안에서 인간적인 오직 인간적인 것에 불과한 것은 무엇이든 보다 뜨거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어찌 깨닫지 못하겠는가. 긴장된 얼굴들, 위협받은 동지애, 인간들 상호 간의 지극히 강하고 수줍은 우정,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부유함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젠가 소멸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카뮈 자신이 밝힌대로 이방인이 ‘부정‘에 대한 소설이라면 『페스트」는 ‘긍정‘에 대한 소설임을 알고 있다. 카뮈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몸으로 겪으면서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은 비관적 인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고통을 이겨 낼 수 없고, 고통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어떤 구원의 약속도 얻을 수 없으며, 전쟁이 끝난다 해도 폐허의 비참 속에 버려진채 또 닥쳐올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밀어닥친 도시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인간에게는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다. 행복을 향한 욕구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되며, 행복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곧 고통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카뮈의 소설 속 분신들은 신뢰와 우정,헌신과 희생을 통해 끝끝내 반항하며 삶의 희망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지킨다. 카뮈 자신의 말대로 우리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요컨대 인간은 매 순간 죽음에 면역되지 않고 죽음의 실상을 의식하며깨어 있어야만 죽음(타나토스)에 대비되는 삶(에로스)을 가장 열렬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죽음에 면역되면 삶의 매 순간에도 또한 무감각해지게 될 터다. 죽음과 고통의 타나토스, 행복과 희망의 에로스, 중요한 것은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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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거야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나희덕, 「뿌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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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영화 〈알제리 전투>가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
"사람의 얼굴은 둘이다. 하나는 웃고 하나는 운다." 영화 속 알제리민족해방전선 조직원들 사이의 암호다. 카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않아서 흥미롭다. 그러나 웃든 울든 얼굴은 하나가 아닌가. 얼굴은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카뮈의 말대로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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