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그 사람이 이미 우리의 삶을 참으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들에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이 멀리 떠나 있을 때 더 깊어질 수 있듯이, 자녀는 집을 떠났을 때에야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있듯이, 또 연인들이 서로 오래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한 관계는 하나님의 부재라는 정결한 체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갈망에 귀기울임으로써 하나님이 그 갈망을 지으신 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기 고독을 접하면서 자신이 이미 사랑의 손길로 만져졌음을 느낍니다. 사랑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친밀함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친밀함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점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길을 끈기 있고 공손하게 기다리기 위해 마음을 계속 열어두기란 아주어렵습니다. 그 물음들의 타당성을 묻기보다는 빠른 해결책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손쉬운 치유를 약속하는 제안이라면 무조건 거기에 믿음을 두려는 경향이 너무나 강해서, 영적인 체험들이 아무데서나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으며 또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상품인 양 가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은 사람이 꾸며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와 ‘아직‘ 사이, 부재와 임재 사이,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심리적인 구별을 뛰어넘으시는 분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중에만 환상에서 서서히벗어나 시편 기자가 기도했듯이 우리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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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자신의 불길로 너 자신을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길 바랄 수 있겠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말처럼 스스로를 불태워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결단이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판단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반복적인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들,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주변을 관찰해야 주위를 넘어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잘못간주되고, 거의 관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223쪽). 가장 사소한 것과 가장 일상적인 것에 무지하고 예리한 안목이없다는 것, -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재앙의 초원으로만드는 것이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사소한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일상을 비상하게 만드는 사건을 만들 수없다. "우리가 이 작은 잡초를 조심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때문에 몰락한다(341쪽)." 《아침놀》의 435절에 나오는 말이다. 전복과 파괴는 일상에 대한 비상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무조건 뒤집어엎고 파괴하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건축과 시작이 보장되지 않는다. "인간은 왜 사물들을 보지 못하는가? 이는 인간 자신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물들을 은폐한다(342쪽)." 《아침놀》 438절에 나오는 니체의 말, 통찰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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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뛰어든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제 생각, 그제 생각, 내일 생각, 모레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바로 이 순간, 오늘이라는 짐승은 자신을 잡으라고 다양한 헤르메스를 우리에게 보낸다. 그것은 태양일 수도, 바람일 수도, 꽃일 수도,계곡일 수도, 애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뛰어들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알몸의 무게"를 감당한다면, 우리는 다른어느 날도 아닌 바로 오늘을 향유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 혹은 ‘무상을 잡는 일은 이렇게 완성된다. 김선우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근사한 아침은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만들거나 커피를 마시려고 불을 켜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건 잠을 깨기 위해서이거나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이는 쓸데없이 성냥을 켠다. 불을 가지고놀거나 장난치기 위해서다. 불놀이나 불장난으로 불을 켜는 것에다른 목적은 있을 수 없다. 불을 켜는 행위 자체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의 성냥 켜기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다면 아이의 성냥 켜기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호모루덴스(Homo Ludens)』(연암서가, 2010)에서 노동과 놀이를 구분한 것도이런 이유에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노동‘이고, 반대로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면 ‘놀이‘라는 것이다.
휴가철이면 해변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삽이나 바가지를 들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해변에다양한 모래성을 진지하게 만들며 즐거워한다. 바로 이것이 ‘놀이‘
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성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모래성을 만들 뿐이다. 아이가 ‘놀이‘로 즐기던 모래성 만들기를
‘노동‘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엄마가 아이에게 "모래성다섯 개를 만들면 밥을 줄게"라고 명령하면 아이의 ‘놀이‘는 그 즉시 ‘노동‘으로 바뀐다. ‘모래성 만들기‘는 이제 ‘수단‘이 되고, 밥 먹기‘가 목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모래성 만들기‘는 더 이상 아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고, 아이가 마음대로 그만할 수 없는 ‘노동‘이 되고 만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북한산 꼭대기에서 출석을 부른다고 하면 학생들은 출석 체크를 위해 힘들게 산을 오를 것이다. 이들에게 ‘산행‘은 출석 체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곤혹스런 노동이다. 반면 이 학생들과 나란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있다. 그들은 즐거워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기에 힘이 들면 언제든그만둘 수 있는 ‘놀이‘로서 산행을 즐기는 것이다. ‘놀이 자유명랑‘이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노동 의무 우울‘은 또 다른 계열을이룬다. 우리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삶을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수단과 목적이 분리되는 삶을 지향할 것인가? 혹은 놀이로서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키팅 선생의 가르침대로 ‘오들을 잡은 것이고, 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오늘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카르페 디엠!" 의 가르침은 오늘 하루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어야 한다는 명령인 셈이다.

"아름답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이 사랑이 싹트는 순간이라는사실도 중요하다. 벚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벚꽃이 지는 순간 어떻게 애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 돌리지 않고 무상에 직면해야 자비의 마음이 싹트는 법이다. 그러니 매너리즘에서탈출하는 첫걸음은 세상의 무상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변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매일 최소한 세 가지씩 변한 것을 찾아내자. 기온이나 바람이어도좋고, 흘러가는 뭉게구름이어도 좋고, 화려하게 꽃이 핀 나무여도좋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여도 좋고, 녹음이 짙어진 가로수여도 좋다. 아니면 아내의 얼굴빛이어도 좋고,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이어도좋고,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여도 좋고, 직장 후배의 멍한 표정이어도 좋다.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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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지나치게 사람 중심이라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원이라고 봐. 지금의 동물원은 동물의 복지나 권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이번 퓨마 사건 때도 동물원이 제대로 대처했다면충분히 생포할 수 있었을 거야. 동물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점이 됐지. 이제는 전시된 동물을 보고 좋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생각해."

100년 전, 인도의 민족 해방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는말한다. "한 국가의 권위는 그 나라가 동물을 다루는 방법으로판단할 수 있다."
동물을 바라보던 기존의 세계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3년,미국의 동물 운동가 알렉스 허쉐프트 Alex Hershaft는 간디의 생일10월 2일을 ‘세계 농장 동물의 날(World Farm Animals Day)‘로 지정했다. 오늘날에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채식을 실천하면서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있는데, 동물원이라고 예외겠는가?

동물의 복지를 위한다고 해서, 어떤 동물에게도 손끝 하나 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주장도 아니다. 그보다 동물을 대하고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 더 나아질 수 없는지 고민하자는 거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1965년, 동물과 관련된 전문가들로 이뤄진 영국의 브람벨 위원회는 동물에게 ‘5대 자유 지침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허기와 갈증에서의 자유 쉴 수 있는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충분히 움직일수 있는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인간이 동물을사육할지라도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철학자 』터 싱어Peter Singer는 1975년 그의 저서 『동물 해방』을 통해 고통은 주체가 무엇이든 고통 그 자체‘라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해 주장했고, 세계는 기존의 생각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 은 동물 복지를 배려한 가축 시설을 설계했다. 자폐 증상을 앓던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능력 덕분에 동물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했고, 좀더 편안하게 소가 죽을 수 있는 시설‘을 설계했다. 현재 미국의도축 시설 절반이 이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인 남성이 캐나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성 소수자였던 그는 한국 군대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 차별과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캐나다 정부는 이를받아들였다. 그 사람의 재산을 따지지도 않았고 ‘한국에는 개를잡아먹는 문화가 있다‘는 소문을 심사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한편 한국에는 사업차 체류하던 중에 종교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한 이란인 부자(父子)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천주교 신자가되었는데,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이를 배교‘ 행위로 보고엄중 처벌을 내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난민은 단순히 빈곤 문제에서 비롯되지만은 않는다. 그보다 어떤 이유로든 개인의 존엄성이 사회로부터 탄압받는가‘가 중요한 난민 신청 사유가 된다. (참고로, 이란인 아버지는 2016년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으며, 아들만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이제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생활이 위태로워졌을 뿐이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잘 살다가 운명의 기로에 서야 했다. 이런 식이다. 반군이 지역을 점령하면, 정부군을 지지했던 사람은 사형시킨다. 반군을 환영하면 군대에 끌고 간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는 죽을 목숨 아니겠는가. 그러니 의사도 교사도,심지어 연예인도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특정 이미지로 ‘난민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타국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자격시비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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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터뷰에서 리프킨은 기후변화로 지구의 물순환이 바뀌고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문명이 빈번한 재앙을 맞을것이라 경고했다. 반다나 시바 역시 2017년 인터뷰에서 지구 생물의 3분의 1이 사라진 오늘, 인간은 지구의 몸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권력에 상관없이 평등한 고통을 경험하는 지독한 시간을 겪을수 있음을 알렸다. 리프킨은 코로나 19를 가리켜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반다나 시바 또한 지난 30년 동안 300여 개의 감염병이 숲에서나왔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을 지적했다. 생태계 파괴가부른 인간 문명의 위기다. 바로 개발과 이윤으로 치닫는 경제 질서가 초래한 위기이며, 이 질서를 뒷받침하는 화석연료 문명의 부작용인 것이다.
코로나 19 위기는 경제를 폭풍처럼 뒤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전면에 부상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과 중국의 중앙정부를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에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그린 뉴딜을 우리의 정책 논의 테이블 위로 올려야했다.

제러미 리프킨과 인터뷰를 했던 또 다른 이유였고, 그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산업 인프라를 재편하는 그린 뉴딜과 3차 산업혁명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화석연료에 기반해 수직적으로 통합된 글로벌 기업은 시효를 다했다. 3차산업혁명은 "수백만의 중소기업과 지역공동체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즉지역 중심 세계화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식량 위기까지 가늠해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던 농업 경제학자원톄쥔 역시 세계화된 경제가 지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다만 그의 지역 중심 세계화는 리프킨과 달리 더 큰 지역 통합으로 같은 대륙 안에서 자본과 노동, 자원이 하나의 생산 체계를 이루는 형태다.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축이 되는 삼각형 경제 구조로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탈세계화 움직임 속에서 반다나 시바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확보하는 정치 개념으로지구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이는 모든 생명이 살아갈 권리를 확보하고 공동체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자연과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생태중심 정치 체제다.

그렇다면 당장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문제를중심에 두고 외부에서 밀려드는 압력을 보고자 했다. 장하준은 같은압박 속에서도 복지가 잘된 나라의 고통의 총량이 그렇지 않은 나라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수많은 묵은 의제들이 정책테이블 위에 오른 지금이야말로 불평등이 ‘노멀’이 되어버린 사회를 치료할 기회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코로나 19를 겪으며 이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인력의 존재를 인식했다. 장하준은 대부분이 저임금인 이들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재정과 분배 정책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부족한 사회 안전망과 계급의 세습,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생률 등 한국사회가 봉착한 문제를 거론하며 코로나 이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속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을때, 위태로운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는 외면해도 괜찮은 사안으로 다뤄졌다. 자유와 안전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물리적 위협으로까지 나타난 혐오의 실체도 반드시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을 찾은 이유다.
그는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고,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손쉽게 탓할 대상을사냥한다. 누스바움은 사회가 개인을 보살필 것을 요청했다.
공중 보건 전문가인 케이트 피킷 역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 코로나 19에 대해 밝혀진 단 하나의 진실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취약하다는 점,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앓는 질환이 코로나 바이러스 치사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은 오직 치료를 하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공의건강을 위해서는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최선의 방역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 위기는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모든 순간을 낚아채어 결정적으로 만듭니다. 역사는 가속도가 붙어 질주합니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19 이후의세상이 어떠할 것인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해졌습니다. 확실성은 바닥을 쳤고, 선택의 자유는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일들이 갑자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실험을강요받고 있으며, 날것의 제안들이 권력의 회랑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에서는 몇 개의 온라인 과정을개설하는 안건을 두고 수년 간 토론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과 반대에 부딪혀 이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열흘 전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대학 캠퍼스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단 일주일만에 우리 학교는 모든 과목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어제 저는 수업 세 개를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꽤 잘 운영되었습니다. 이 위기가 지나가고 저는 우리 대학이 보름 전 상태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실험들 가운에 무엇이 성공할 것이며 정확히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대신 우리가 역사적인 웜홀wormhole(우주 공간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가상의 개념으로 시공간의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구멍을 뜻한다)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정상적인 법칙들은 중단되었습니다. 몇 주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일이 평범한 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우리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칫 폭군들이 민주주의 안에서 권력을 잡고, 그리하여 디스토피아가 도래해 우리를 짓누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꿈을 갖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참 전에 이뤄야 했던 개혁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이며, 불의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해 말이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살 겁니다. 그것이 더 나은세상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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