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돈 많은 삶이 좋은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돈 많이 벌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를 묻죠. 이렇게 자꾸 물어서 궁극적으로는 질문을 받은 이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점에서 시장은 철학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영혼을 유혹했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었습니다. .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장을 무시하려야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곳이 시장이니까요.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이유도 좋은 직업을 구해서 연봉을 많이 받기 위해서잖습니까. 요즘은 심지어 종교도 시장처럼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를 다닐지 쇼핑을 해요. 우리 영혼에 지침이 되는 가치조차 쇼핑의 대상이 된 거죠. 차라투스트라의 시장은 아무런 가치도 생각하지 않고 가치에 의미를 두지 않는 군중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천민이나 군중, 폭민 같은 사람만 있는 거죠.
유튜브가 가진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는 시청각을 활용해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문자로 구성된 책은우리가 상상하고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데 비해, 유튜브는 휙휙 바뀌는 이미지를 통해 순간을 지배하는 거예요. 영상으로 어떤 상황이나 자료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들어가는 거죠. 이러한 순간의 지배자 세 가지는 모두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달아나라,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거친 바람이 사납게 불어오는곳으로! ‘고독이 없으면 21세기에도 절대 초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주권적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살아가려면 때로는 치열하게 고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독할 줄모르는 사람은 그냥 휩쓸려서 살아갑니다. 남이 생각하는 대로각하고, 남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요. 그것은 니체가 마지막 인간이라고 일컫는 시장의 군중인 거죠. 니체는 군중이 되지 말자고, 휩쓸려가는 삶을 살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셀럽은 어떤 방식으로 쇼를 하고, 무엇을 보여줄까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뒤집어엎기. 그것이 그에게는 증명이라 불린다. 열광시킴. 그것이 그에게는설득이라 불린다.뒤집어엎기와 열광시키기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거죠. 먼저 뒤집어엎기. 기존의 것을 확 뒤집으면 된다는 거예요. 증명이 하나도 안 되더라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뒤집어엎죠. 그러면 그것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거 아니겠습니까. 열광시키기.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듣지 않는 상품은 팔리지 않습니다. 21세기에는 누구나 주목해서 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리바이어던》에는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압축한 명제가 있습니다. "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라는 라틴어로,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라는 문장입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데는권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요. 국가가 발전할수록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권한과 권리를 국가에 양도해버립니다. 그런데 국가가 강해질수록 개인들이 위축됩니다.
과연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요?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직업을 가졌든 간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스스로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사회일 겁니다. 반면 나쁜 사회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의미, 자신의 쓸모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드는 사회겠죠. 니체는 잉여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지식을 얻지만현명해지지 않는 교양 속물, 새로운 것을 전하지만 언제나 낡은 언론인, 부를 끌어 모으지만 점점 가난해지는 졸부인데요. 그러면서 "국가가 끝나는 곳, 그곳에서 비로소 쓸모없지 않은 인간들의 삶이시작된다 "라고 이야기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든다.23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가는 사람은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너무 분리되어자신의 내면 세계로 침전하며 성처럼 살아가는 사람 역시 진정한의미의 고독을 향유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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