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낙심은 영적인 삶을 슬픔으로 몰아갑니다. 슬픔은 안에서부터우리를 갉아먹는 벌레입니다. 따라서 낙심은 결국 우리를궁지에 몰아넣어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비관주의에 젖은 사람은 미래를 향한 문을 닫아버립니다. 따라서 미래에 있을 새로운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비관주의에 빠지면, 문간에 바로 새로운 것이 있는 경우에도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 사랑과 공통된 소속감으로 지어진방주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 시대는 새로운 노아의 시대가될 것입니다.
... 라자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부자에게 라자로의 불행은 라자로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무관심의 심연 너머로 그를 지켜보며 "가엾어라!"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겁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상황을 알았지만,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무관심과 우리의 생각 사이에 틈새가 생기는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감정이입 없이, 즉 상대의 입장을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상황을 판단합니다.
주님이 사고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 정반대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본질은자비입니다. 따라서 보고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은 알고 느끼면, 우리를 구하려고달려오십니다. 하느님은 기다리고만 있지 않습니다. 세계어디에서든 따뜻하고 관심 어린 즉각적인 응답을 얻으면, 그것은 곧 하느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은어디에나 계시니까요.
이렇게 선택과 모순에 직면할 때, 하느님의 뜻을 물으면 뜻밖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열립니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범람‘이라 묘사합니다. 그 새로운 가능성들이 우리 생각의 둑을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겸손히 하느님 앞에 내려놓고 도움을 간구할 때 범람이 일어납니다. 이 단계를 영의 식별discernment of spirits‘ 이라 부릅니다. 이때 하느님에게 속한 것과 하느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것에 대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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