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상실을 마주한 채로 고통받는 감정이야. 반면 애도는 슬픔을 끝내기 위한 작업이야. 언뜻 비슷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애도는 슬픔의 지속이 아니라 슬픔의 종결을 위한 작업이라고 해. 상실한 사람들이 섣부른 애도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슬픔의봉합을 거부하기 때문이야. 슬픔의 보존을 요구하기 때문이야. 이 책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 옮겨 적어볼게.
이제야 우리는 그들이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다. (…) 그것은 세계의 균열이었던 그 상실을 봉합할 정당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의가 무엇인지 다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 비슷하게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 거야.
그러려면 이 사회의 무수한 재난들을 유심히 들여다봐야하잖아. 정혜윤 피디님이 들려주었던 말 기억해? 나쁜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 내가 겪은 이 나쁜 일을 당신은 부디 겪지 말라고 알려주는 게 바로 연대라는말. 그 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도 말이야. 알아들을 수 있었어.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는 깨진 유리조각이 담긴쓰레기봉투조차 조심해서 버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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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 들어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래엔 깨진 컵의 모양이 간단히 그려져 있었지. 우리는 같이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곳에 그 봉투를 두고 왔어.
네가 붙인 경고문이 잘 보이도록 놓았어. 나도 너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런 건 해본 적이 없었어.
너를 보며 생각했어. 윤리란 나의 다음을 상상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버린 봉투를 야간 청소 노동자 분이 무심코 집어 들다가 조금이라도 다칠 가능성. 깨진 유리 조각이 내 손을 떠난 뒤에 벌어질 미래. 그 전까지는 제대로 상상해본 적 없어. 너는 그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비슷하게 다쳐본 적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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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낙심은 영적인 삶을 슬픔으로 몰아갑니다. 슬픔은 안에서부터우리를 갉아먹는 벌레입니다. 따라서 낙심은 결국 우리를궁지에 몰아넣어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비관주의에 젖은 사람은 미래를 향한 문을 닫아버립니다. 따라서 미래에 있을 새로운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비관주의에 빠지면, 문간에 바로 새로운 것이 있는 경우에도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
사랑과 공통된 소속감으로 지어진방주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 시대는 새로운 노아의 시대가될 것입니다.

... 라자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부자에게 라자로의 불행은 라자로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무관심의 심연 너머로 그를 지켜보며 "가엾어라!"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겁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상황을 알았지만,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무관심과 우리의 생각 사이에 틈새가 생기는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감정이입 없이, 즉 상대의 입장을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상황을 판단합니다.

주님이 사고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 정반대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본질은자비입니다. 따라서 보고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은 알고 느끼면, 우리를 구하려고달려오십니다. 하느님은 기다리고만 있지 않습니다. 세계어디에서든 따뜻하고 관심 어린 즉각적인 응답을 얻으면,
그것은 곧 하느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은어디에나 계시니까요.

이렇게 선택과 모순에 직면할 때, 하느님의 뜻을 물으면 뜻밖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열립니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범람‘이라 묘사합니다. 그 새로운 가능성들이 우리 생각의 둑을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겸손히 하느님 앞에 내려놓고 도움을 간구할 때 범람이 일어납니다. 이 단계를 영의 식별discernment of spirits‘ 이라 부릅니다. 이때 하느님에게 속한 것과 하느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것에 대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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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항체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이 곧 선물이고, 우리는 자신을낌없이 바침으로써, 즉 자신을 지키려고 안달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던져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줍니다.

위험에 있을 때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나르시시즘은 우리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자신을 보게하며,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게 합니다. 따라서 모든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만들어낸 이미지와 깊은 사랑에 빠져 그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좋다면, 그것으로만 좋을 뿐입니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도 나쁘다면, 여러분은 나르시시즘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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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 알아차릴 때처럼.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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