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상실을 마주한 채로 고통받는 감정이야. 반면 애도는 슬픔을 끝내기 위한 작업이야. 언뜻 비슷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애도는 슬픔의 지속이 아니라 슬픔의 종결을 위한 작업이라고 해. 상실한 사람들이 섣부른 애도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슬픔의봉합을 거부하기 때문이야. 슬픔의 보존을 요구하기 때문이야. 이 책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 옮겨 적어볼게.
이제야 우리는 그들이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다. (…) 그것은 세계의 균열이었던 그 상실을 봉합할 정당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의가 무엇인지 다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 비슷하게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 거야.
그러려면 이 사회의 무수한 재난들을 유심히 들여다봐야하잖아. 정혜윤 피디님이 들려주었던 말 기억해? 나쁜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 내가 겪은 이 나쁜 일을 당신은 부디 겪지 말라고 알려주는 게 바로 연대라는말. 그 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도 말이야. 알아들을 수 있었어.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는 깨진 유리조각이 담긴쓰레기봉투조차 조심해서 버리는 사람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