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다 있다(그런데 역설적으로 무엇을 하는 순간은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은 무엇을 하는 순간이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너를 위한 나의 변신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꿀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예컨대 자연은 대체로 인간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고 믿으면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숲을 파괴하고 둑으로개울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구름과 비와 바람은신에게 귀속된 것이기에.
또 생명체는 신이 어떤 과정을 점지해주더라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위로가 됩니다.
그 흐름 속의 일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존재, 즉 우리 인간 들이 그 흐름을 방해한다 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환1. 경이 생명체를 어떻게 주조한다 해도 그 생명체는 환경을극적으로 변화시킬, 더군다나 파괴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않다고 생각하면 또한 위로가 됩니다.21

해야 할 일이 뭔지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제게 미래의평화는 없을 겁니다. […] 이 중차대한 일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발언하는 것은 제 의무이자 가장 깊은 의미의 특권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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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나에게는 모든 감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마스터키입니다.
여기 내 눈 앞에서 사람들이 불행으로 간주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칩시다. [...] 설령 이런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다 해도 나에게는 아직 ‘선택‘의 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불행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긍정의 문을 열어둘 것인가? [...]분노도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누가 나에게 화나게 하는 행동을합니다.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행동은 일단 ‘판단‘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후 ‘선택‘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내 안에서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나는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나는 저 사람의 저 행동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노라. 내가 왜 그 행동 때문에 ‘화‘를 내서 나의 소중한 하루(어쩌면 이틀,어쩌면 평생)를 망쳐야 한단 말인가, 화내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인가, 우리시대의 삶의 주제를 폭넓게 사유했던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 덕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 역시 지구 저편 누군가의 통절한 아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한두 번 상황이 좋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아니다. 그러기에 더욱 값진 것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긍정적 발상이다. 이런 경지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생각의 지대에 ‘결‘을 내야 한다.
결은 무엇인가? 결은 일정한 흐름의 패턴이다. [...] 이런 결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가? ‘반복‘을 통해서다. 그런데 ‘결‘은 일단 형성되고나면 ‘길‘의 역할을 한다. 외부의 변수를 자신의 결을 따라 유인하여 ‘그렇게 흐르도록‘ 또는 ‘그렇게 진행되도록‘ 작용한다는 말이다. 생각에도결이 있다. 반복의 과정을 통해서 어느새 자신의 생각에 결이 난다. 어떤 이에게는 부정적인 쪽으로, 어떤 이에게는 긍정적인 쪽으로, 이렇게‘결이 나서 결국 ‘길‘이 생긴다.

‘토킹 스틱‘ 이란 인디언의 지혜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토킹 스틱은 인디언들에게 전수된 경청의 지혜를 담보해 주는 도구다. 이는 인디언들이 회의를 할 때 부족장이 들고 있는 지팡이다. 부족장은 발언권을 청하는 부족원에게 이 토킹 스틱을 건네고, 토킹 스틱을가진 사람만 말을 할 수 있다. 이때 다른 부족원은 참견하거나 말을 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회의가 끝나면 모두 만족한다.
이처럼 토킹 스틱은 상대가 말하는 중간 절대로 끊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그만큼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보는 지점‘이라는 말은 정해진 자리에서 자기중심으로 무엇인가를바라볼 때 사용될 수 있다. 반면 ‘봐야 할 지점들‘이란 말은 자기중심을탈피해서 상대방의 입장, 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의 처지를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는 지점만을 가지고 있고, 미스터 갓은 봐야 할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안나는 얘기했던 것이다.
안나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희망적인 영감을 준다. 요즘 우리가 처한 정치사회적 긴장국면은 한마디로 여러 관점들의 충돌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이럴 때 ‘관점‘(point of view)이라는 관습어 대신에 봐야 할 지점들‘(points to view), 더 줄여서 볼 점‘이라는 신조어가 대중화된다면, 그자체로 융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다름‘을 서로 경합 내지 경쟁 대상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다. ‘다름‘을 더 이상 ‘틀림‘이라는 말로 바꾸지않을 때, ‘다름‘은 다양성의 풍요로 꽃을 피게 된다. 다양성은 얼마나큰 축복인가. 잘만 활용하면 풍요를 넘어 융합 에너지를 뿜기도 하니, 이로부터 다시 적대적 대립으로 역행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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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는 사람들의 흰 손이 있고, 몽상하는 사람들의 섬세한손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는 손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그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타자를 지향하는 글이 아니라면 흥미로운 글일수 없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체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을 한 권의 책을 바로 그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이다.

더 많이 읽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책이든 나쁜 책이든 신문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읽는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양식이 되어준다. 요컨대 한쪽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읽기가 전부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다. 돈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경계는 돈의 경계보다 더 폐쇄적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모든게 부족한 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겐 결핍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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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누군가가 고통의 문제에 답을 청해 올 때, 정답을 말해 준다고고통이 없어지진 않는다. 희한하게도 고통은 멋지게 설명될 때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때 절감되는 것이다. 사랑이 고통을 분담해 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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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자신이 물속에서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지쳐서 온몸이 놀싹(노곤)했다. 오랜만에 수면제 없이도 잠들게 되었다. 물질하는 동안에는 온갖 잡념이, 자신을 괴롭히던나쁜 생각이 다 지워졌다. 장사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동안 자신을 해코지했던 사람들, 꿈속에서도 미워했던 이웃들이 다 용서되고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물질하는 날에는 오늘은 뭘 잡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요. 세상에 그 어떤 직업이 매일매일 기대를 갖고 하루를 시작할수 있게 만들까 싶어요. 나갈 때마다 바다는 늘 상태가 다르고, 잡히는 물건도 다르지요. 늘 똑같은 날이 없는 해녀라는 직업이 나는정말 좋아요."

나이든 해녀 삼촌들은 자신의 직업을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고달픈 직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젊은 해녀 김재연은 하루의 출발이 늘 설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느 쪽에방점을 찍느냐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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