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무들이 다 폭풍에 쓰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 모든 씨앗들이 다 뿌리 내릴 토양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 모든 진실한 마음들이 다 인심人心의 사막에 유실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삼락三樂이란 가족들 무사하고, 하늘 보고부끄럽지 않게 하며, 아랫사람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세 가지가 삶의 모든 것이 아닐까. 알아들을 수 있는 귀, 바라볼 수있는 눈앞에서만 즐거움도 오는 것이라면, 이것 또한 모든 것이리라.
수팅의 시를 읽다 보면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따라자란다"는 횔덜린의 말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이 또한 모든 것입니다‘ 란 말 속에는 희망이 들어 있다.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는 위대한 시가 태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한다면, 만족스럽다는 것이 부유한 것보다 더 나은 재산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환상이 삶을 대신할 수 없었다"는 수팅의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은 조선 중기부터 쓰던 말로 그땐 ‘생각하다‘ 였다고 한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도 생각을 좀 하고 산다면, 변하는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제자리는 쉽게 잃지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詩일랑 /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쓰지만 / 나무를 만드는 이는오직 하느님뿐."
마음을 만든 신은 목소리만드는 걸 잊었나 봐요 (에리히 캐스트너)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는 단 한 줄의 숙명이란 시와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다‘는 단 한 줄의 <틀림없는 교훈>
아름다운 걸 많이 봐서 눈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독자의편지를 받고 감동한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사라지는 삶인 것 같아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문득, 내 친구 집의 가훈家訓이기도 한 생활은 낮게생각은 깊게‘ 라는 워즈워스의 말이 생각났다. 독자인 그도 분명 단순한 생활에 깊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그 사람을 살리는 일이란 것을 아름다움 자체보다 더 아름답게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의 영혼이란 기쁨에 너무 굶주리면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럴 때는 눈을 돌려 시를 읽어 보라. 곧 굶주림이 채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시를 만나는 감동이 바로 기쁨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보석을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가을에 뿌린 것이 없어 거둘 것이 없는 사람들은 미국 시인 새뮤얼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가슴으로 받으시라. 나도 거둘 것이 없어 적적할 때 이 시를 가슴으로 받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이 구절을 너무 좋아해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일수록 잔잔한 날보다 바람 부는 날이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한다. 바람은 무엇이든 일어서게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바람이 불면 나도 모르게 신명이 나서방 안에 있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