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 앉아 있던 예멘 아저씨에게 그림을 그려 줄 테니,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그는 시간 따위 중요치 않다며 가만히 앉아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아랍인들은 누구에게나자신의 시간을 열어 놓는다. 얼마든지 자신의 시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유연성을 발휘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누비며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던아랍 선조들의 DNA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인샤알라(알라가 허락하신다면)"라는 말만 외치고 떠나 버렸다. 이후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항상 친절하고, 신중하고, 약속을 저버리지 말고, 관대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며,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말을 적게 하고, 비열하지도말고 시기하지도 마라.

긍정의 에너지는우리 안에 잠재되어우리의 관심을 요구한다.
당신 안에는 의지란 것이 있다.
이것이 당신의 영혼에 힘을 주고당신의 목소리에 큰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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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말에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L‘heure entre chienet loup)‘이 있다. 해가 살짝 저물 때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경계를 말한다. 낮도 아니고밤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시간,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서 이게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려고 노력해가는 것이다. 질병을 평가하기가 어렵듯이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판단하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함을 안고 가는 것이 정신과 의사라는직업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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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학습의 천재다. 대마초를 처음 피우면서 느꼈던 불쾌감을 즐기는 법을 주변 사람들에게 배운다. 그러면서 맛을 알아가는 거야‘라는 대마초 선배의 말과 행동에서그 불쾌한 감각이 좋은 것‘이라고 학습한다. 그 좋음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관계, 의미 등이 포함된다. 맛을 떠나 그대마초가 상징하는 모든 가치를 배워 대마초 사용자 집단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다. 이 연구의 압권은 연구의 전체 맥락에 있다. 이 연구는 사회적 일탈 행위에 대한 연구의 일부였다. 대마초를 피우는 등의 행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일탈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순응의 과정이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민어 이야기가 나온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온갖 계절 요리에 대한 일가견으로 며느리를 주눅 들게 한다. 철마다 나는 식재료로 섬세한 요리를 해야 한다면서 집안의 주도권을 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며느리가 입맛을 잃자 시어머니는 반드시 되돌려놓고 말겠다는 듯갖은 밑반찬이며 잔뜩 솜씨를 부린 민어 요리를 낸다. 시어머니의 손맛에 진저리가 났던 며느리는 그때 깨닫는다. ‘민어도 결국민어구나.‘ 이전까지는 시어머니의 기세등등한 요리 앞에서 이렇게 귀한 음식을 이렇게 특별하게 요리한다며 기부터 죽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산해진미도 그 맛만으로 최고일 수는 없다. 우리는 그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 함께나누는 가치, 과정에 부여하는 의미를 먹는다.

커피는 커피구나. 그걸 깨달았다. 더불어 도시에서 치열하게살면서 커피가 얼마나 큰 의미와 행복이 되었는지 음미하게 됐다. 직장인에게 커피는 스트레스를 잠시 녹여주는 향기였고 어색한 사이라도 가볍게 나눌 수 있는 화제였으며 간편하고도 풍부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간 커피에 쓴 돈이며 시간이며 정성이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어쩌다 또 도시에 살게 된다면, 더 정성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시골에서 커피는 그냥 커피일 뿐이다. 그러니 집 근처에서 자생하는 카모마일 계통의 꽃잎이나 라벤더,
로즈메리를 말려 차를 만들거나 생강을 썰어 끓여 마신다. 나는여전히 커피와 함께하며 즐겼던 도시에서의 작은 사치를 사랑하지만 커피에 의지하지는 않는다. 이제 도시에서 산다면 예전보다 더 깊은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고, 시골에서평생 살아도 괜찮다.

그런데 술이 행동중독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 부부가 술을소비하는 방식이 알코올 자체에 대한 중독보다는 하루를 구성하는 규칙에 속한 의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밤이 될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최선과 완벽을 추구하는 낮 시간을 보낸 후, 풀어지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었다. 업무부터 일상까지 잊지 않고처리해야 하는 무수한 과제들 앞에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애쓰다 보면 실제의 성취도와는 무관하게 저녁에는 완전히

어떤 것이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커피, 술, 인터넷으로 삶을 얼마든지 더 풍성히 만들 수도 있다. 똑같이 시골에 살아도 초록색 원두를 마당에서 캠핑용 스토브로 볶으며 한껏 정취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이런 변화의 과정을 겪고 나면 다른 변화도 불러올 자신감이 조금씩 생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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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일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좋은 일이든 힘든일이든 모두 남김없이 즐기고, 외적인 운명은 물론 내적인운명과 우연이지 않은 운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면, 내 인생은 그리 초라하지도 형편없지도 않았다.

외적인 운명은 누구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찾아온다. 이것은 피할 수 없으며 신이 내린 것이다. 하지만 내적인 운명은 온전히 나 자신의 작품이다. 그 인생의 단맛과 쓴맛은 모두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그 인생의 책임을 오로지 나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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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미워하기 싫어 시작한 야생 채집은 내 삶을 의외의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먼저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을 때 비싸다는생각이 안 든다. 뭐든 먹으면 내가 살겠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고마운 마음만 든다. 유기농이나 고급 식재료만 숭배하고 불량식품,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공장제 식재료를 기피하던 마음도 없어졌다. 그런데도 나쁜 건 절대 안 먹겠다고 다짐하예전보다 이런 식품들을 먹는 일 자체가 크게 줄었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내가 그것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말해준다는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

먹는 데만 돈을 덜 쓰게 되는 게 아니다. 크고 작은 물건을 사들이거나 여행비나 오락비를 쓰는 등 무엇이든 돈을 쓰는 데 게을러진다. 무언가를 사려는 마음이 대부분 나중의 필요에 대비하려는 심리였음을 알게 됐다. 그런 심리는 인류의 90퍼센트 이상이 농사를 짓고 식량을 저장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로부터 내려온 마음의 습관이다.

나는 오늘도 내 생존에 필요한 최적의 쾌적함과 행복의 균형점을 찾으면서 산다. 따라서 전기도 쓰고, 비닐 봉투도 쓰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는 그나마 남들보다 훨씬 조금 쓰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환경을 지키는 사람과 파괴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공장에서 열심히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도 나의 행동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합쳐져서 인간의멸종을 부른다면 그것도 지구 전체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전략대로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어쩌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됐다. 오늘 음식을 먹고, 그것이 내가 아닌 무언가와 연결되는일임을 가장 열심히 인식할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비슷한 소비를 반복한다면 나는 그 대가로몸은 덜 고생스러울지언정 옛날의 농사꾼보다도 극심한 마음의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노동해야 하고, 더 긴 시간을 저당 잡혀야한다. 직접 빵을 굽고 싶은 마음도 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저렴한 원자재인 유기농 밀과 값비싼 완성품인 크루아상 사이를 느긋한 빵 굽기라는 즐거움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나의 엄마는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갖은 노력을 해서 저축했다. 똑같이 돈을 적게 쓰더라도 나는 저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돈이 미래의 가치로 전환될 거라고 믿지 않으니까. 내돈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늘어난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 이 세상에 축적된 농업 기술력,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늘어난 다양성(빵이나 치즈의 맛, 멕시코 향신료 등)을 즐긴다.

옛날과 지금 중에 언제가 더 행복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오늘의 이 시간에는 부정할 수없는 나쁜 점과 함께 좋은 점도 따라온다. 나쁜 점은 담담하게받아들이고 좋은 점은 놓치지 않고 즐기려고 애쓴다. 그래서 돈을 벌지도 쓰지도 않지만 현재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누린다.
내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 시설이.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냈다고 그 가치를 내가 온전히 지불한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격이 바뀌지 않아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일상이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인데, 많은 것들이 변화라는 이름 아래나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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