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네루다는 말했다. "나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태어났다고 믿는다." 이 간절한 독서의 기록을 읽다보면 저자 역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된다. 시절마다의 열렬한 책읽기는 한 사람을 단호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삶의 아이러니를 이해할 줄 아는 풍요로운 성찰자로 만들었다. 그는 법이 진리에 대한 신속한 판단이 아니라 신중한 사랑처럼 작동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만나왔던 문학이 진리 앞에서 늘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절의 독서는 ‘여성‘이라는 변방에 존재했던 작가들에게 보내는 우정 어린 편지처럼, 혹은 가난과 전쟁과 전체주의의 폭력 앞에서 상상력 하나로 삶을 지켜낸 작가들에게 보내는 따뜻하고 간결한 위로의 엽서처럼 읽힌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거릿 애트우드가 도리스 레싱에 대해 했다는 그 말, 이 책에서 두차례나 인용된 "적당히 해치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일을 그녀의 심장과 영혼과 힘을 다해서 하는 사람" 이라는 표현을 ….

소설이 작가의 삶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작중인물에게 실제 인물의 성격과 닮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루이자에 대한 평전에서 수전 치버는 유명한 소설가인 아버지 존 치버의 말을 인용하면서 문학작품은 ‘그 자신에게 내재하는 꿈 (self-contained dream)으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이자가 그린 판타지 월드는 루이자에게 내재하는 꿈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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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라는 집은 너무 광막해
그 안에서 당신은 벽을 통과하고
허공에 그림을 걸리라. (네루다)

순간을 나 대신 포착했다. 혹시라도 죽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면? 캐럴라인의 죽음은 나에게 아주 크고 지독한 선물을 남겼다. 상실이 먼지나 달빛처럼 흔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어떤 상실은 견디기 힘들지라도.

애도는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우아한 외관 - 초반에 쏟아지는 화환과 음식과 배려 - 을 벗기고 보면, 애도는지극히 개별적이어서 관계 자체만큼이나 복잡한 궤적을 그린다. 사람들은 침대 옆자리의 온기나 저녁 무렵 웃음소리,
손짓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함께 간 여행지나 함께 나눈 느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나는 수십 가지 이유로 캐럴라인이 그리웠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실제 대화든 상상 속의대화는 끊임없는 대화의 부재였다.

여러 해 전 아직 젖먹이였던 첫아이를 잃은 친구가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않아 슬퍼하던 그녀가 들은 뼈아픈 위로의 말들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강렬한 의리를 이해하는 어느 남성의 한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진짜 지옥은, 그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것을 결국 극복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불가사리처럼,
제 살이 잘려나가도 심장은 죽지 않는다.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다만 이것없이는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선명한 불협화음 없이는 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이 책의 제목은 내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는 영어의 관용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루가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날이면, 누군가 말하곤 했다.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를 몰고 있는 걷고 있는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런 뜻이담겨 있었다. "좀 슬렁슬렁 가보자, 시간이 천천히 흐르도록,지금이 조금 더 길어지도록." 오래오래 계속 이어지도록.

삶이라는 유수의 황금빛 순간은우리를 급히 스쳐가고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니,
천사들이 우리에게 찾아오지만우리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들이 떠나간 뒤일 뿐.
- 조지 엘리엇, 『목사생활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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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시몬 베유

타인을 평가할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제 이 소설을 통해알게 된 시몬 베유의 말도 함께 기억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Quel est ton tourment?)"라고 묻는 일이라는 것. 이 작품은 저 물음의 소설적 실천이다. 말기 암 환자인 친구가 스스로 삶을 끝내는 일의 곁을 지키는 중인 서술자는 지금 세계의 존재자들이 자신의 고통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지인들, 작품 속캐릭터, 동물, 심지어 지구 그 자체에게까지.
그렇게 채집한 이야기들‘웰다잉‘에서 기후위기‘에 이르는 을 분 분방한 구조와 리드미컬한 어조로 들려준다. 통찰과 공감이 어우러진 그의 이야기를 딴짓을 해가며 듣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근래 드문 집중력을 발휘해 이 소설을 두 번 연달아 읽었고 그러고도 성에 차지않아 이 작가가 쓴 수전 손택 회상기까지 내처 읽었다. 뉴욕 지식인 사회한복판에서 성장한 작가다운 날카로운 지성이 내가 동경하는 미덕인 다정한 예리함‘ 혹은 관대한 명석함에까지 도달해 있으니 이제 시그리드누네즈가 쓴 모든 글이 나에게 중요해졌다.

삶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심각하면서도, 부조리하고 코믹한 것이다.우리 인간으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정한가.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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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화기에 접어들어서야 노화에 관한 의미 있는 글을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경우, 노화는 이미 당신 안에자리를 잡고 당신과 하나가 되어버리므로 노화를 오롯이 파악하기란 힘들다. 암튼 이 주제는 충분히 나이 들기 전까지는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터이니… 결과적으로 내 안의 젊음이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여야만 늙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브누아트 그루Benofte Groult , 《별표 자판 La Touche étoile》

"시간과 더불어, 간다. 모든 건 다 떠나간다."
219. 11:2Léo Ferré, (1ztat Cleo Avec le temps)

약하고 닳아버린 나.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세월이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협적인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토록 믿고 있던 나 자신에게 이보다 더 큰 수모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도 몰라보게 된 몸과 세상 앞에서 점점 더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겁 많은 노파가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유는 그저 더는 잃을 것이 없다‘의 다른 말이다."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나와 보비 맥지Me and Bobby McGee)

"남자들은 여자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은 그렇게 바라보이는 자신들을 바라본다.
이러한 사실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대부분을결정할 뿐 아니라 여자가 여자와 맺는 관계까지도 결정한다.
여자의 내부에 있는 관찰자는 남성적이고,
관찰되는 자는 여성적이다. 이렇듯 여성은스스로 대상이 된다 -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시각적 대상, 즉 이미지로 변한다."
존 버거John Berger,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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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스마트폰이 바꾼 것은 세상입니다. 그러니까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은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을 재구조화했습니다. 그것이 스마트폰이 일구어낸 지난 10여 년간의 변혁의 핵심입니다. 이를 방증하듯 스마트폰혁명 이후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이었어요. 그래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죠. 스마트폰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를 기술적으로 혹은 비즈니스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폭발력은 스마트폰 이후로 고정된 인간 간의 연결 방식을 또 한 번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있어요. 스마트폰이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었다면 메타버스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의 정신과 연결되는 세상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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