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모든 길들은 바다를 향한다.
오름으로 가는 길도, 산으로 가는 길도,
숲속으로 가는 길마저도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다로 닿아 수평선을 잇는 그 너머의 길.
내가 산티아고의 아주 먼 길을 오래 갈 수 있었던 힘.
사람에게 가는 길, 결국 나에게 돌아가는 길,
그것이 서귀포의 길이었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어떤 길도 하찮은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다.
서귀포의 중심에서 나는 외친다.
"그 길로 계속 가라."

길이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걸어본 자들은 알리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슴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걸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길들을마음 안으로 자신만의 길들을 내고 있었다. 참 따뜻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사람이 서로 한 손, 다섯 손가락을 부딪는 건 하이파이브, 두 손, 열 손가락을 모두 부딪는 건 하이텐이라 한다고 합니다. 두 여성의 하이파이브는 이미 자주 해왔던 듯 호흡도 잘 맞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녀들이 참으로 당당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맥주잔 앞에 놓고 한번 따라해보고 싶은 인생 동작. 그러려면 먼저 그걸 받쳐줄 만한 기쁘고 신나는 일과 친구가 있어야겠죠.

물 좋아하는 식물이라면 ‘연꽃이며 수련, 개구리밥, 부레옥잠’ 같은 수초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수초가 아닌데도 이름에 ‘물’이 들어갈 정도로 물 좋아하는 식물도 많습니다. ‘물달개비, 물배추, 물채송화, 그리고 물수선화며 물봉선……’ 모두 이름대로 물 좋아하고 그래서 물 흔한 여름에 핍니다.
그 꽃 이름들 들여다보자니 사람에겐 없을 것 같은 ‘물씨’ 성을 아는 이름들 앞에 얹어보게 됩니다. 물경미…… 물정혜…… 물민석…….
언제부턴가 이름 앞에 ‘물’을 얹는다든지 물로 본다는 말은 소신이나 존재감이 너무 없는 사람을 뜻하거나 그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말로 쓰이죠.
그러나 물꽃 이름들을 들여다보고 있어설까요. 이름 앞에 물씨 성을 얹자 그 이름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 사람들도 더없이 순하게 맑아지는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도 더 구름을 잘 알고 나보다도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혹은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보여다오."

공중전화부스 앞의 긴 줄 맨 끝에 서서 초조한 마음으로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앞사람의 통화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본 기억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기억 때문에 한동안은 텅 빈 공중전화를 보면 무조건 들어가서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젠 공중전화를 사용했다는 사실조차 낯섭니다. 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공중전화부스도 무용지물의 버려진 폐공간 같아 보입니다.

유럽에선 그곳을 미니도서관이나 물고기들이 노니는 어항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떤 마을에선 그곳을 아예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미니펍으로 바꿨죠. 딱 한 사람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그 일인용 펍에서 술 한잔 마시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 공중전화 펍 앞에는 늘 길게 줄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줄 선 김에 서로 안부 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얘기와 마을 정보도 나누니 무용지물의 공중전화가 오히려 직접대화기 역할, 사랑방 역할을 하는 셈이랄까요.

우리의 공중전화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에서 걷지 마세요. 이끌고 싶지 않아요..
앞에서도 걷지 마세요. 따라가고 싶지 않아요.
나란히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되어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에디 제이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왕과 가난한 여인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이 우화가 지시하는 바를 이제 명확히 드러냅시다. 하느님과 피조물이 사랑으로 일치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가난한 여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올 수 없다면, 왕이 내려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장 낮은 존재라야 모든 이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취하신 종의 모습은 벗고 쓰는 가면도 아니고, 꾸미기 위한 치장도, 가리기 위한 위장도 아닙니다. "종의모습은 하느님이 취하신 참모습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인간과 같은 모습이 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그냥 재미 삼아 하신 장난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가없는 사랑 때문에 진실로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내가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믿게하고 싶었소. 그래서 나는 당신과 같아진 거요. 이제 내눈도 하나요!
엑카르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스스로 마치 한쪽 눈을 빼어 버리듯 흠 많은 인간 본성을 취하시기 전까진,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걸 믿지못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