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조를 짜서 수업을 하는데, 주제는 오렌지족이었습니다. 압구정동에 가서 오렌지족들을 인터뷰하고 조별로 발표했습니다. 다른 조는 중산층의 퇴폐적 향락 문화에 대해 계급이나 계층 현상으로 발표했는데 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압구정동에 가서 오렌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조금도 퇴폐적이거나 향락적이지 않은 겁니다. 저는 오렌지족들이 합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합리적이긴 한데 부모에게는 이견을 말하지 못합니다. 돈줄이 부모니까요. 그러니까 그때의 합리성은 제한된 합리성이죠. 저는 수업 시간에 오렌지족을 합리적 개인의 출현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만 이 합리성은 길들여진 합리성이다.’라고 했죠. 막스 베버의 책에서 좀 따왔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점점 개별적으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문제를 볼 때 "넌 그게 문제야!"라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리지 않게 된 거죠. 구체적 보편성이란 말이 있는데, 저 역시 가장 구체적인 게 가장 보편적이란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민의 언어! 그 언어가 가장 지혜롭지는 않아도 그 속에 농축된 우리 공통의 역사, 우리 공통의 삶의 모습이란 게 있단 걸 알게 된 셈입니다.

체험은 남과 나눌 것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경험이란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게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입니다.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인 경험에는 이야기를 전수해주고 전수받는 타자가 있어야 합니다. 경험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 세계와 무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너와 내가 없으면 전수를 원하는 사람도 전수를 갈구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경험은 전적으로 관계의 문제입니다.

피렌체에서 만난 한 여인이 있는데요. 그녀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며칠째 피렌체에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뭐였을까요? 다비드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미술관 문이 열리면 하루 종일 멍하니 다비드를 보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녀는 다비드 때문에 처음으로 남자 몸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러니 다비드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충만한 시간과 그 시간 안에 농축된 이야기가 경험입니다. 이때 시간은 잠시 정지되고 재정의됩니다. 이 시간의 핵심은 미래를 향한 유예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의 충만함입니다. 이런 시간엔 뭔가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오자와 마키코란 분이 쓴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분수 공부를 할 때도 1/2, 1/4이라고 하는 개념을 확실하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활 체험이 필요합니다. 과자 두 개를 세 명이 나누어 먹거나 유리구슬 놀이를 하다가 자신이 갖고 있는 유리구슬 개수가 상대방이 갖고 있는 개수의 반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모든 체험은 분수라고 하는 개념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흙과 같은 것입니다. 살아있는 체험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호로서의 분수 개념이 주어지면 모래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라버리게 되고 결국은 싹이 트지 않겠지요

얼마 전에 제 눈앞에서 치킨배달 청년이 오토바이로 멋지게 유턴을 하다가 그만 미끄러져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사람 살려!" 내지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아이 씨바, 졸라 아파. 아이 씨바, 졸라 아파."라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벙쪄’ 있는 사이에 옆 보쌈가게 청년이 달려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치킨배달 청년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와, 씨바 졸라 아프겠다." 저는 와! 이렇게 완벽한 의사소통이 있을 수 있을까 놀랐습니다. 아마 이때 ‘졸라’가 공감의 신호였을 겁니다. 이때 졸라나 씨바는 뜻을 통한 공감이 아니라 감정의 강도에 대한 공감일 겁니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재수 없는지. 제가 수업을 할 때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자기들 언어로 재현합니다. ‘씨발’과 ‘졸라’, ‘그냥’이 넘쳐납니다. 제가 만약 가르치러만 갔다면 맥 빠지고 실망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 이런 언어로 설명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르치러 갔다가 경청하게 된 것입니다.

실시간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하지 못할 때 허무함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공감에서 나옵니다. 너도 나도 깊이 상처받았다는 공감 말입니다. 이 상처가 나만의 상처가 아니란 걸 알 때 우리 눈에 시대가 보입니다. 그때 우린 우울증이나 자기 비하,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강의를 다닐 때 희망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우선 기대와 희망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기대는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책정됩니다. 서울대 출신이면 서울대 출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서울대 출신 아버지를 뒀으면 그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말 뒤에는 ‘되는 것만 해라.’ 혹은 ‘쓸데없는 것은 때려치워라.’라는 말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면 발생하게 되어있는 어떤 일, 그것이 기대입니다. 자격증을 몇 개나 딴다면 어디 정도는 취업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겁니다.

우리가 기대에 부응하려고 할수록 우린 너무나 바쁘고, 사회는 우리가 싫어하는 그 모습 그대로 쌩쌩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린 기대와 희망을 착각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불가능을 꿈꾸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어놓은 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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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그 어떤 사랑 노래를 듣거나 사랑 이야기를 읽어봐도 결국 연인들이 원하는 것은 이렇게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된 시간을 위해 세상이 어떻게 나오건, 사랑의 순교자들은 기꺼이 고난과 희생을 감내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랑 그까짓 거! 꽃길만 걷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길을 따라 나선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용감하니까.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만으로 용감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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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마와 나를 보며 남동생은 가끔 "나이 들면서 누나는 엄마와 더 비슷해지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한다. 눈 한 번 흘겨주고 거울을 봤는데, 거기에 정말 엄마가 있었다. 이슬아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도 웃을 때나 울 때나 엄마의 얼굴이 된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어쩌면 저렇게 닮은 사람이 되었을까. 세상 모든 엄마들은 딸이 자기처럼 살까 봐 혹은 자기처럼 살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나가서 잘할 수도 있지만 머무르면서 잘할 수도 있다. 사표 내는 것이야 언제라도 할 수 있다. 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한 번 제대로 잘해 볼 기회를 나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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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더없이 붉고 장엄한 저녁노을을 봤습니다. 너무도 아름답고 벅찬 저녁노을이어서 왜 이 저녁노을 풍경이 소문이 안 났지? 그 노을 밑을 무심한 듯 오가는 보자기 쓴 할머니와 낡은 점퍼 입은 아저씨들이 드라큘라로 잘못 소문난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무심한 듯 보이던 보자기 쓴 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영락없이 시골 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던 외할머니였습니다. 인정 넘치는 웃음에 사탕 하나라도 쥐여주려는 따뜻한 손길…… 서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한참을 정감 어린 대화를 나눈 것같이 든든해졌습니다. 

돌아가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정해야지……

그리고 저 붉은 저녁노을 보러 꼭 다시 와야지……

할머니에게 마음을 물린 것이었습니다.

무슨 얘긴지 루마니아엘 가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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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약의 첫 단계는, 도약이 필요함을 깨닫는 것,
자신의 앎이 불완전함을 깨닫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속속들이 의식적인무지‘라고 이름 붙인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모든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보다 창조적 도약을 해낼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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