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역사서를 집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또 행동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다."

회화와 조각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일심동체이므로, 화가는회화를 중시하고 조각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조각가는 회화를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조각이라고 하면 대리석덩어리에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작업, 더 나아가 회화 위에다 더많은 것을 덧붙이는 작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로에게 더 나아지거나, 더 채우거나, 더 좋은 무엇이되어야 한다는 기대 없이 관계가 저절로 오래 지속될것이라는 이해만으로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행복을 구하지 않고, 의무도 없으며, 더발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냥 현재의 나로도 충분한 관계가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때 나는 사랑을 지키는 법을 새로 배웠다. 사랑을 지킨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내 마음에 드는 시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내가 싫어하는 상대의 부분까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확실한 이유 하나라도 지켜 내는 것이다. 꼭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옆에 있는 친구가 싫어지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며, 각자의 마음이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이 내 앞에 있어도 없어도,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만큼은 지킬 수 있다.

이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역사다. 역사적으로 귀족들은 많은 하인을 거느려야 유지할 수 있는 푸른 잔디의 크기로 권력과 지위를 자랑했다. 그러다 귀족이 없어진 지금은 타당한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잔디밭의관리가 관습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안다는 것은, 잔디밭을 없애는 용기의 출발점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역사의효용이다. 즉, 현재 우리를 자유롭지 않게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탈출하기위해 필요한 게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날 우러러보거나, 다른 누구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나는이기적인 사람이라네. 검소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살 구부러진 우산을 내거라고 챙기는 사람일 뿐이지. 새 우산은 비가 오는 이 시간, 이 장소에 딱자네 것일세. 난 자네를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선행하려는 게 아니야."

내 입장을 배려해준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뭐가 좋은 건지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가 엿봤던 천사는 선행, 사랑,
연민, 존경 등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존재였다. 이처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하나의 규칙과 올바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랜 의문을 가졌다.

"엄마도 잘 몰라. 하지만 네가 좋은 사과를 먹는 게 제일 좋은 거, 맞는거라는 게 딱 정해져 있진 않다는 사실을 알면 돼. 그건 언제나 달라지는거야. 그걸 네가 스스로 생각해보면 좋겠어. 넌 아까 맛있는 사과 생각밖에 안 한 거야. 네가 아빠는 나쁜 거 주고, 나만 먹어야지.‘ 생각조차 못할정도로, 상황이 매번 다르다는 것을 네가 알면 돼. 좋은 사과를 먹는 것도좋지만, 아빠한테 좋은 걸 주는 것도 좋은 일일 수 있다는 걸 말이야."

그럴 때 20년 전의 신부님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옳은 것을 내가 행하면서도 그것을 규칙으로 삼지 않고, 나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어우러질수 있기 위해 유연한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하게!’일단 내가 남들에게 신경 쓰는 것에 대해 솔직하기로 했다. 남들이 하는 말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고, 기억에 남기는 것은 내가 그 부분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남들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말하는지에 동요하는 대신, 그 예언들의 가능성에 대해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결과가 생기더라도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여기서 말하는 책임이란 문제를 해결하거나 방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문제 때문에 힘들어지고 후회될 때, 그 감정을 충실하게 겪어 내겠다는 다짐이다. 많은사람들의 경고를 듣고도 결국 내가 선택한 것임을 인정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솔직하게인정하기로 했다.

인과관계를 따짐으로써 과학이 발전하고,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고,공공에 적용되는 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신비와 경이는 우연에 있고, 그 신비로움에 우리의 고통을 제외시켜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시애틀에 있는 6층짜리 상업용 건물인 불릿 센터. 이는 향후 최소한250년 동안 상하수도나 전기 난방 공급 없이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건물이다. 빗물을 받아 정화해서 쓰고, 하수 역시 자체 정화한다. 전기, 난방은 태양열로 충당한다. 몇 년 전, 이 건물의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친환경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는 친환경보다 더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건물에 쓰인 기술, 자재, 공법 그 어떤 것도 최고나 최첨단은 없다.대신 설명에 의하면, 진정한 첨단은 ‘대화‘라고 했다. 건물의 세세한 부분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자재 도매업자, 허가를 내주는 공무원과 주변 시민들 모두가 함께 자신이 아는 것들을 나누면서 이뤄진 결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또 하나 잊히지 않는 것은 새벽에 입원실에서 형과 함께 바라본 지하철 전동차의 불빛이다. 성내역에서 강변역으로, 혹은 그 반대로 눈덮인 한강을 가로질러 가는 전동차의 연분홍 불빛을 형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말없이 바라볼 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집단과 무리에 기대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갈등과 분열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된다면, 불안과 결핍을 잊고자 무언가에 의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 한 명의 개인으로서 우뚝 선다면, 사회의많은 부분이 좀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은복잡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사는이곳을 무결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고자 지금보다 애쓴다면, 그러한 세상에 조금 더 근접해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외국의 시민들은 우리와 다르게 선진적이라거나, 개인주의 부분에서 더 앞서 나간다거나 하는 주장을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외국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도 있었지만 더욱 무례하고 인종차별적인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끌고 온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위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지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간섭과참견을 하지 않는,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아마도 이와 같은 ‘다정한 무관심‘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글을 읽는 사이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글로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글쓴이가 피로 쓴 것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정신임을 알것이다.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글을읽으며 게으름 부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난쟁이, 올레는 덴마크의 평범한 사내아이 이름, 루코예는 ‘눈 감겨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아이들을 잠들게 하고 좋은 꿈이나 나쁜 꿈을 가져다준다. 올레 루코예는 양팔에 하나씩 우산을 갖고 다니다가, 낮에 착하게 지낸 아이에게는 안쪽에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우산을 펼쳐준다. 그러면 아이는 밤새 아름다운 꿈을 꾼다. 낮에 못된 짓을 한 아이에게는 아무 그림도 없는 우산을 펼쳐주고, 그럼 아이는 아무 꿈도 없이 밤새 깊은 잠을 잔다. 그런데 올레 루코예에게는 이름이 같은 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은 실은 죽음이다. 동생이 누군가를 찾아가 눈을 감기면 그 사람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 동생이 이미 그 눈을 삼켰기 때문이다.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인함을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_본문 이 죽음을 죽고, 이 지옥을 밟고 나서야. 도스토옙스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