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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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약해진 그는 높은 하늘에서 맴도는 새 한 마리를보았다. 심지어 그 새의 날개마저도 움직이지 않고정지해 있었다. 새의 그림자가 그의 무릎 위로떨어졌다. 그는 새 깃털을 헝클고 다시 쓰다듬기 위해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수술 후 내가 최초로 들은 아빠의 정확한 말이었다.
강렬한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흐릿하게 지워져가던아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다! 아빠가 돌아왔어!"
너무 기뻤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아빠의명료한 말이 되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빠는 더 이상말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그 한마디말을 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았던 것이다. 한사람의 인생이 한순간에 압축되어 나타날 수 있을까? 나는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평생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잘알아봤다.

아빠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빛을 발하며 떠나셨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에너지를 불러" 모아야 할 때마다나와 함께한다. 아빠는 나의 숨결이 되었다. 마치 마거릿애트우드가 한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한 줌의 먼지로화하리라는 관념에 저항한다. 그래서 대신 언어가 되길소망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숨결이 되는 것.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물음이 전부였다. 이단순한 물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밀려들곤 했었다.
위대한 계시가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위대한 계시가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이나 등불, 어둠 속에서뜻밖에 켜진 성냥불이 있을 뿐이었다.

울프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존재보다 비존재로 이루어지는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누구랑 뭘 먹고 커피를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잠시 후면 다 잊어버린다.
대부분의 날이 그렇다. 그냥 하던 일을 하고 빨래하고 밥먹고 뭐 좀 보거나 가족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잔다. 건강검진이나 시험 결과를 기다리거나, 큰 걱정거리가있거나 고통에 시달리면 비존재의 시간이 더 커진다. 어린시절도 비존재의 시간이 더 크다. 비존재의 시간은 흔적을남기지 않는 시간이다. 기억이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슨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일처럼, 마치 눈앞에 성냥불이 켜진 것처럼 생생한 순간들.
이것이 존재의 순간들이다. 비존재의 흐름을 끊어주는 시간.

울프는 삶의 의미는 엄청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그러나 강렬하고 빛나는, 어쩌면충격과도 같은 ‘존재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등대로』에서 화가 릴리는 이렇게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저건 식탁일 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대가 나를 두 손 벌려 맞이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맞이하는 것이다"라는 네루다의 시구가 생각난다. 남태령이야기는 가슴 벅찬 다정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맨다 고먼의 시구처럼, "우리가어떻게 감동받았는지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말해준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고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나눌 수 있고 나눔을갈망한다. 혼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관계를더 많이 갈망한다. 이것이 어른의 몸짓이다. 우리에게 또하나의 삶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고 싶어 할것이다. 아낌없이 나누며, 아낌없이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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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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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어요.
평생 외롭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되었어요. 둘이 서로 사랑했지만 여자의 집에서 결혼을찬성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지나온 삶을 생각하고저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결국 장모 될 분을만났어요. 그분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내가 이제부터 자네의어머니가 되겠네."

참 놀라운 순간이었어요. 그 고마움을 어떻게잊지 않고 살까 고민하다가 저도 사랑을 주기로마음먹었어요. 그것도 가능하면 오래가는 사랑을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내가 맛본기분을 다른 사람도 맛보았으면 했어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저는 불편한 몸으로 좁은경비실에서 날마다 같은 곳을 왔다 갔다 살지만마음만은 넓고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다면어떻게 더 큰 세계랑 연결될 수가 있겠어요?

또 이런 문장도 기억한다. "맑은 하늘에는 무지개가 뜨지않는다." 이것은 「모비 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이자,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될 운명인 이슈미얼이 고래가숨을 쉬면서 내뿜는 물줄기가 정말 물줄기인지 아니면수증기인지 따져보면서 한 말이다. 나는 맑은 하늘에는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이문장을 과학이자 시로 받아들였다. 낙담했지만 다시 용기를내야 할 때에는, 카프카의 "대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문장과 함께 이 문장을 얼른 떠올린다.

최근에는 여기에한 문장을 추가했다. 메리 올리버의 시 한 구절이다. "그누가 온화한 날씨로 음악을 만들었겠는가?" 이런 구절들은마음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멜빌은 무지개를
"비참함에 희망과 위로"를 속삭여주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는 그런 상징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문제적 상황을기회로도 보고 싶어 한다. 인간은 곤경과 희망을 뒤섞는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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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옷을 제대로 입었는지 걱정이 될 때, 자신의 전신 셀카를 찍은 후 인공지능에게 보여주고 코디네이션 의견을 묻는다는 학생이 있었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입지 말고 이렇게 코디하라"고 제법 깐깐하게 조언한다고 한다. "아침이라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은데, 최소한 엄마보다는 나아요." 그 학생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다.

-알라딘 eBook <트렌드 코리아 2026> (김난도 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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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어 박사는 우리가 먹을 것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먹고 나면, 위가 뇌에 신호를 보내서 좋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화학 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 물질은 코카인이나엑스터시 같은 약물을 흡입했을 때나, 폭식을 할 때, 섹스를 할 때,
도박을 할 때, 혹은 무엇이든 즐길 만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분비된다. 여기에도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자극, 행동, 보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뇌내 과정이 오늘날에는엉뚱한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음식‘이 자극 요인이었다면, 요즘은 ‘따분함‘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은 유튜브로 들어가거나 자신의 뉴스 피드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렇게 따분함을 벗어나죠. 이렇게 들뜬 상태가 되면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이게 ‘보상‘입니다.

역설적인 사실은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이런 메커니즘이 오늘날에는 인간의 건강에 해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사람들은 힘든 것을 잘 참지 못합니다. 즐겁지 않은 기분, 예를 들어 따분함 같은 게 느껴지면 예전에는 그냥 그 상태에 머무르면서 뭔가생산적인 배출구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정신을 딴 데로 돌리면 되니까요."

"오늘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수용‘이다."
날씨, 허기, 지형과 맞서 싸우는 대신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분이 어때요?"
도니가 묻는다.
"좋아요!"
나도 놀랄 정도로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도니가 미소를 지으며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 나는 건강과풍요가 보장된 시대에 태어났다. 그런 행운을 감사하기보다는는 그저 울며 자책하고 있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0.5톤짜리 8기통 엔진 픽업 트럭에 앉아 빌어먹을 바깥세상에서 연신 홀러드는 목소리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고함치고 있었다.

"죽음은 심리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막상 사람들이 그것을 깊이 숙고하면, 행복한 생각들을 찾게 만드는 자동 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순위에서 디즈니랜드 다음가는 곳으로 꼽힐 때가 많다는 사실뿐인) 부탄이라는 나라는 하루에 한 번에서 세 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국가교육 과정으로 포함되어 있다. 즉,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탄 사람들의 집단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다.

부탄에서 죽음은 일상의 일부다. 망자의 시신을 태운 재는 점토와 섞여 차차tsha-tsha라고 부르는 작은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길가, 창틀, 광장, 공원 등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 안치한다. 부탄의 예술 중에는 죽음을 소재로 삼은 것이많다. 시신의 살점을 뜯어먹는 독수리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죽음을 재현하는 춤을 추기도 한다. 21일에 걸친 장례 기간 동안 시신은 그가 생전에 살던 집에서 ‘삶‘을 이어가다 수많은 벗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나무 장작 위에서 천천히 불살라진다. 죽음과 관련한 이 모든 절차는 절대 어두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마커스 엘리엇 Marcus Elliot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한계점을 탐험하는 과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힘겨운 도전에서 끄트머리에 이르게 되면 이제 막다른 곳까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계속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뒤를 한번 돌아보고 나서, 한때 여기가 끝이라고 믿었던 곳을 넘어서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런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가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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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이 남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존경, 기독교가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로마인이 보여준 정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다. 그러나 현대기계사회는 이 세 가지 귀한 유산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나치가 왜 나빴던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작가가 개인을 강조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수 있다. 이 사회가 나아갈 길은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사이 균형을 이뤄내는 잣대로서의 정의에 있다고 생각하였다.(게오르규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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