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약해진 그는 높은 하늘에서 맴도는 새 한 마리를보았다. 심지어 그 새의 날개마저도 움직이지 않고정지해 있었다. 새의 그림자가 그의 무릎 위로떨어졌다. 그는 새 깃털을 헝클고 다시 쓰다듬기 위해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수술 후 내가 최초로 들은 아빠의 정확한 말이었다. 강렬한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흐릿하게 지워져가던아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다! 아빠가 돌아왔어!" 너무 기뻤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아빠의명료한 말이 되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빠는 더 이상말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그 한마디말을 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았던 것이다. 한사람의 인생이 한순간에 압축되어 나타날 수 있을까? 나는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평생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잘알아봤다.
아빠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빛을 발하며 떠나셨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에너지를 불러" 모아야 할 때마다나와 함께한다. 아빠는 나의 숨결이 되었다. 마치 마거릿애트우드가 한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한 줌의 먼지로화하리라는 관념에 저항한다. 그래서 대신 언어가 되길소망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숨결이 되는 것.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물음이 전부였다. 이단순한 물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밀려들곤 했었다. 위대한 계시가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위대한 계시가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이나 등불, 어둠 속에서뜻밖에 켜진 성냥불이 있을 뿐이었다.
울프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존재보다 비존재로 이루어지는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누구랑 뭘 먹고 커피를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잠시 후면 다 잊어버린다. 대부분의 날이 그렇다. 그냥 하던 일을 하고 빨래하고 밥먹고 뭐 좀 보거나 가족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잔다. 건강검진이나 시험 결과를 기다리거나, 큰 걱정거리가있거나 고통에 시달리면 비존재의 시간이 더 커진다. 어린시절도 비존재의 시간이 더 크다. 비존재의 시간은 흔적을남기지 않는 시간이다. 기억이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슨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일처럼, 마치 눈앞에 성냥불이 켜진 것처럼 생생한 순간들. 이것이 존재의 순간들이다. 비존재의 흐름을 끊어주는 시간.
울프는 삶의 의미는 엄청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그러나 강렬하고 빛나는, 어쩌면충격과도 같은 ‘존재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등대로』에서 화가 릴리는 이렇게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저건 식탁일 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대가 나를 두 손 벌려 맞이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맞이하는 것이다"라는 네루다의 시구가 생각난다. 남태령이야기는 가슴 벅찬 다정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맨다 고먼의 시구처럼, "우리가어떻게 감동받았는지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말해준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고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나눌 수 있고 나눔을갈망한다. 혼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관계를더 많이 갈망한다. 이것이 어른의 몸짓이다. 우리에게 또하나의 삶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고 싶어 할것이다. 아낌없이 나누며, 아낌없이 사랑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