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죽음을 인지한다고 해도 조치를취할 수 없다. 자살을 막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공감 능력에 달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이 느껴야 할 엄청난 상실감과 비애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괜찮아?"
힘들지?" "어떻게 지내?" "기분이 어때?" 같은 질문을 받을 때대답하는 방법을 알기만 해도 크게 도움이 된다.
다만 공감하지 못할 경우 대답도 정직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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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전 세계 6,000개의 언어 중 어느 것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 이웃이 행복하면 우리가 행복할 기회는 30에서 40퍼센트 증가한다. 일정한 사회망에 행복한 사람이 있을 경우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은 9퍼센트 증가한다.

행복은 또한 우울증의 만병통치약일 수 있다.
우울증 전염과 행복 전염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이 집요하고도 뿌리 깊은 슬픔의 감정은 자체의 메커니즘으로 확산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행복과 달리 우울증은 대인기피증을 유발하고 사회관계망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청소년 - 성인 건강 장기 연구National Longitudinal Study of Adolescent to Adutt Health」는 미국 고등학생2,000명을 조사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건강하고 행복한 친구가 다섯 명 이상 있을 경우 6개월에서 12개월 내에 우울증을 극복할 가능성이 두 배가 된다. 친구들이 우울하면 덩달아 임상 우울증clinical Depression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지만, 행복한 친구와 함께 있을 경우 분명 ‘보호와 치료 효과가 동시에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매혹적인 점은 행복이 이별의 세단계까지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목표와 탐욕처럼 행복은 부지불식간에 서로 전염되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상대라 해도 얼마든지 옮을 수 있다. 최초 감염자가 옆 사람에게 행복을 전할확률은 25퍼센트이며 옆 사람은 다시 10퍼센트 수준으로 진구에게 행복을 옮길 수 있다. 이제 친구들도 6퍼센트 수준에서 타인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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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가 감정전염의 첨병인지는 몰라도 동시에 희망도 보인다. 어느 순간 노출 도구는 단지 이상한 전염의 대변자가 아니라 감정의 치유제를 전파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무한한 영향력을 활용해 치유의 향유를 주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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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개는 감정에 전염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바르세이드는 어느 실험에서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 이론적 임무를 부여했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임무였다. 박사는 각 그 그룹에 몰래 첩자를 심어, 사전에 지시한 감정을 연기하게 했다. 첩자가 열정적일 경우 "자주 미소를 짓고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빠르게 한다. 우울한 분위기를 자극할 필요가 있으면 말은 천천히 하고 상대의 눈을 피하고 잔뜩 웅크린 채 앉아있는다". 실험 전후의 분위기를 측정해본 결과, 학생들은 첩자의긍정적·부정적 정서에 전염되었지만 감정의 원인이 본인에게있다고 여겼다. 타인이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사회전염에 걸리는 과정, 행동 모방, 표정 짐작, 말투 분석, 단어 암시 등이 한데 어울리면, ‘전염된 사람들의 관련 기억망을 자극해 그 감정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게 했다. 실제로는 동일한 환경의 사람들에게서 전염된 것이다.
타인에게 감정을 전파하려면 직접 접촉이 필요하지만
감정이입이 쉬운 사람들은 대리 감염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만난 적도 없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도 접촉이 가능하다.
다만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자기 성찰을 많이 하면 본질적으로 전염에도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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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생각을 전하는 행위는 일종의 진실을 전파하는 격이다. 그 행위에 감염이 되어야 열정을 확보하고 또 그 열정으로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다. 2010년 이집트 경찰은 와엘 고님의 고향에서 한 젊은이를 체포해 처형하였다. 고님은 그에 대항해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경찰의 폭거를 맹비난했다. 어쩌면 고님은 죽은 청년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을 수도있다. 세대 간의 유대와 조국애에 기반을 두어 연대감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록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나 사회관계망 내의 정서에 공감하는 것이 당시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감성에 25만 명의 네티즌이 감응했고 고님의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렀다. 고님은 그때 팔로어들을비롯해 이집트의 노동자, 온건한 활동가, 불만에 찬 공무원들을 부추겨 광범위한 민주 시위를 일으키고 정부를 향한 분노를 개혁 요구로 승화했다. 2011년 1월 그가 이집트에 입국하자 이집트 경찰은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러자 국제사회가 고님을 당장 석방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체포된 지 12일 후 고님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석방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용기라는 이름의 사회전염은그렇게
멀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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