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는 과학의 진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과학의 유용한 결과들은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은, 엄밀히 말하자면 후세를 위한 지식은 전혀 축적되지 않고 있다. 지식은 그에 상응하는 경험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듣기만 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개인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다른사람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한 차례 온화한 봄비가 내리면 풀의 녹색 빛이짙어진다. 마찬가지로 긍정적 전망은 더 나은생각이 몰려들도록 주위를 밝게 만든다. 봄, 《월든(1854)》
새와 새의 노래를 감상하는 귀는 어떤 관계일까? 분명히 서로 가까이 이어져 있으며, 서로를위해 존재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새나 벌레가 내는 어떤 소리 때문에 연못가의돌이 부분적으로 부서진 것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의 존재로 또 다른 존재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연못가의 바위다. 1857년 2월 20일의 일기
모든 경험은 많은 부분이 우리의 내면으로들어와 남는다. 계속 우리와 함께한다. 그러다가 건강할 때나 아플 때의 어느 날, 문득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른다. 몸과 영혼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자신을 흔들던 바람과 스쳐 지나간 돌멩이를 언제까지나 기억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와 모래에게 물어보라. 1841년 2월 8일의 일기
한 여성이 나에게 집 안에 매트를 깔라고 권했다. 그러나 집 안에 깔아 놓을 자리가 없을 뿐더러,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깔개를 털어 낼 시간도 없어서 거절했다. 차라리 현관 앞 잔디 위에서 발을 닦는 게 더 낫다. 잘못될 일을 시작하느니 애초에 피하는게 좋다. 생활의 경제, 《월든(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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