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받기 원하는 대로 타인에게 하자‘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자‘고, 자신이 쓴 사상 그대로 철저하게 타인을존중해온 경탄할 만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삶의 방식 때문인지 칸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존경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칸트에게는 공격성, 배회 등 주변 증상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통할 수는 없게 되었어도 주위에서 우러르는 신 같은 존재로 평생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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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는 과학의 진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과학의 유용한 결과들은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은, 엄밀히 말하자면 후세를 위한 지식은 전혀 축적되지 않고 있다. 지식은 그에 상응하는 경험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듣기만 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개인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다른사람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한 차례 온화한 봄비가 내리면 풀의 녹색 빛이짙어진다. 마찬가지로 긍정적 전망은 더 나은생각이 몰려들도록 주위를 밝게 만든다. 봄, 《월든(1854)》

새와 새의 노래를 감상하는 귀는 어떤 관계일까? 분명히 서로 가까이 이어져 있으며, 서로를위해 존재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새나 벌레가 내는 어떤 소리 때문에 연못가의돌이 부분적으로 부서진 것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의 존재로 또 다른 존재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연못가의 바위다.
1857년 2월 20일의 일기

모든 경험은 많은 부분이 우리의 내면으로들어와 남는다. 계속 우리와 함께한다. 그러다가 건강할 때나 아플 때의 어느 날, 문득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른다. 몸과 영혼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자신을 흔들던 바람과 스쳐 지나간 돌멩이를 언제까지나 기억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와 모래에게 물어보라. 1841년 2월 8일의 일기

한 여성이 나에게 집 안에 매트를 깔라고 권했다. 그러나 집 안에 깔아 놓을 자리가 없을 뿐더러,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깔개를 털어 낼 시간도 없어서 거절했다. 차라리 현관 앞 잔디 위에서 발을 닦는 게 더 낫다. 잘못될 일을 시작하느니 애초에 피하는게 좋다. 생활의 경제, 《월든(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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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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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기록한다. 그것은 ‘엄마가 할없게 된 여러 가지 것들에 직면하는 일이면서도 ‘엄마에게 남은 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침내 나는 인간의 자기다움‘, 즉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되었다. 결국 이런 질문이다.
사람은 이전에 했던 일을 못하게 되면 자기다움‘을 잃게 되는 걸까?
과연 그 사람의 기억만이 그 사람다움‘을 만드는 걸까?

우리에게 엄마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사람‘이 전제였다. 그전제에서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면 "응?" "왜?" 하고 단순하게 반응했다.
변해서는 안 돼, 병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고 말하듯이.
‘엄마는 끝까지 엄마‘라고 전제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일이고, 그렇지 않은 모습에 놀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전제는 옳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엄마는 점점 기운을 잃었고, 웃음을 잃었으며,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잦아졌다.

행을 늦출 가능성이 있는 약이 있으니, 그 약을 먹을 것.’과 ‘약처방 외에 병원에서 달리 치료할 것은 없으니 몸을 건강하게 하고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일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였다. 간결한 병이었다. 친구 말처럼, 일단 병명이 명확해지자 할 수 있는일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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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서 새로운 일이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번 여름을 잘 시작하고싶다. 여름과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일에 도전할 수 있기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견딜 수있기를! 불과 물로 거듭나듯, 나 자신을 새로운 영혼과 몸으로 정화하기를! 나의 노래가여름에 못 미치지 않기를!

지식을 향한 나의 욕망은 이따금 멈출 때가 있지만, 내 발이 모르는 저 위 공중에 내 머리를두고 싶은 욕망은 영원하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성과 연민이다. 불분명한 소설이나, 그 부족함이 갑자기 드러나는 예전의 지식을 넘어서는 최상의 지식이어떤 경지에 이를지 나는 모른다. 우리가 철학에서 꿈꿔 온 것보다 하늘과 땅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한 발견은 태양이 환히비치면서 안개가 걷히는 것과 같다 (원래는 1851년 2월 27일의 일기다).
《걷기(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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