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훼방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의가 취소되었으나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중대한 문제였던 주민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지자체 평가 작업 역시 보류되었지만 봉쇄가 풀려도 이를 다시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하루치 업무량을 단 두세 시간 만에 완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 뭔가 하느라 늘 바빠보여야 했던 일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방종, 예컨대 창문을 내다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행동을 해도 괜찮았다. 즉,가짜 노동에는 관중이 필요했던 것이다. 관중이 없을 때우리가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너무나 많다.

드러커와 경영학 스승들의 말처럼 지식노동자들은 점점더 빠른 속도로 양산되었고, 현대 회사에 필요한 혁신 업무의 핵심이 되었다. 다시 한번 노동시장은 그럭저럭 이 모든 똑똑한 사람들을 새로운 자리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좀 이상했다. 궁극적으로 이런 대학과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해 맞춤 제작된 많은 일자리가 특정학문의 자질과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과거의 일자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드러커조차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1979년 드러커는 지적인 사람들이 지루한 업무를 맡고 나서 자신이 지나친 교육을 받았음을 깨닫게 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대단한 ‘지식인‘이 되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일개 ‘직원‘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파울센은 텅빈 노동이 퇴출되고 있다는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썼다. 그 반대로 텅 빈 노동은 끈질기게 지속되어 사람들을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고 영혼에 상처를입히고 있다. 스트레스는 할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심한 지루함, 보람의 결핍, 무의미한 타성으로도 유발된다.
스트레스는 감옥내수감자와 교통정체에 갇힌 운전자처럼 할일이 아주 적은 상태의 사람들에게도 덮친다. 사실 일시적으로바쁜 기간에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스트레스의 축적은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과 더 관련 있다. 이것은 아마도 불만족스러운 노동자가 점점 병약해지는 이유, 즉 현대 노동 생활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설명해줄 것이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다. 우리 모두는 일터에서 하루를 헤쳐나가면서도 실은 얼뜨기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 허세를 부리게되었다. 나는 세상이 매분 매시간 실없는 일을 합리화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엄청나게 부조리한 노력으로 가득하다고 본다.
스 애덤스, 『딜버트』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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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지키지 못하면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심이 너무 강하면, 즉 우리 내면이 너무나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으면 유연성과 즉흥성을 잃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중심"은 결코 정적인 존재로고정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 존재의 다양한 요소를 한데로모으는 융통성 있는 메커니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중심은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무수한 제안을 충족시킬 만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서(융통성 있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영리한 직관을 가져야 한다.

무엇을 포용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배제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느냐 뿐만 아니라 무엇을 피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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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 책에 어떤 목표가 있다면, 전문화된 학술 용어를 빌리지 않고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서 소위 말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의가 펼쳐질 때, 우리 문화가 취하고 있는 논조에 반박하기 위해서 이 책은 세 가지 반론을 제시한다.
번째로 진정한 자기 수련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게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더해 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 주장은 자아란 우리의 소유물(또는 성취)이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여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두번째로, 마음의 평정을 갖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대체로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다소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균형 잡히고 차분하며 평온한 삶에 대한 우리 문화의 이상은 상당히 공허해 보인다. 때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삶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나는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소 전전긍긍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모든 열과 성을 다 바치려는 삶 역시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세번째로, 나는 인간의 욕망에는 놀랄 만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이 우리가가진 기질을 현실에서 발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이 특수성을 욕망의 "진실"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우리가이 특수성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기질과도 더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가 이 특수성을 충실히 따른다면 우리의 기질을 억압하려는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에 더제대로 저항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짜 당신이거나,
혹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버나드 윌리엄스

실존적이란 단어를 난해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단어를 통해 단순히 인간 삶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에,
즉 우리 삶의 윤곽을 결정하는 주요 구심점에 어떻게 다가갈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이라는 말은인간이 겪는 근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포괄적인 용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디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것이 중요하고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생각하는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도전, 역경, 견딜 수 없는괴로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난관과 기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우리의 관심은 어떤 목표, 활동, 야망 또는 사람들을 향하는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아니면 그들을 그저 무시해 버리는지, 어떻게 또는 어디서 쾌락과 기쁨, 성취감 또 자아실현감을 찾는지,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거듭된실패에 별다른 방도가 없을 때 우리는 어디로 (또는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등을 다룬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삶을 살기 위해 선택하는 (또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

내 생각에 "진정성"이란 특정 성격의 특성이나 속성이 아니라 삶의 방식,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진정성은 우리 존재에 대한 어떤 영구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특징인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에 우리가 어떻게 발을 내딛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숨겨진 핵심을지하 감옥에서 해방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잠재력에 불과한 자아의 다양한 모습을 벌달시키려는 노력에 가깝다

진정한 성격은 결코 변하지 않는 타고난 자아라고굳게 여겨지는 반면, 진정한 실존적인 길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어떤 독특한 마음(또는 심지어 그런 "스타일")이라는 개념에 부합한다. 이는 우리가 누구여야 한다는 엄격한 정의에 우리를 가두지 않으면서, 우리의 기질에 자신만의 독특한 고유함을 부여한다.

생각해 본다면 진정성이란 실존적인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몹시 불안한 마음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의 상충을 수용할 수 있는 일종의 내적 포용력을 의미한다.

모호한 의미를 감당해 낸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깨닫는 과정에서 삶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외부의 세력이 우리에게던지는 질문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삶의 핵심이 되는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명백하고 확실하며 보편적인 답은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결코 중요성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하루빨리 답을 찾아내야 한다. 쉬운 답이 없다고 해서 답이 없는 것은아니다. 사실 쉬운 답을 원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할 수 있다. 자명하진 않더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답을찾으려는 우리의 시도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이 자기 자신에게는 의미 있더라도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수 있다. 하지만 답이 우리 마음속의 독특한 열정을 가득품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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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저마다의 목표를 향하여 유난한 도전을 치러내고 있는 이들과 만나 공명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자기 병원을 차린 7년 선배가 밥을 사주겠다고 의국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우리도 나중에 저런 차 탈 수 있겠지?"
벤츠 세단을 몰고 온 선배를 보며 의국 사람들은 ‘드림카‘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넘길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말에더럭 겁이 났다. 꿈의 크기가 겨우 비싼 외제차 정도인 사람에 머

"내가 곧 죽을 것임을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중략)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가리는 소음이 되도록 놔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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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광주교도소에서 함께 복역한 동지 한 사람이 떠르르한 지주의 자식이었다. 그에게는 늘 사식이 풍성하게 들어왔다. 그 사식을 벤소에 숨겨놓고 돼지처럼 저 혼자 먹었다고, 진짜배기 혁명가가 아니라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흉을 보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한 감방에 있었는디 갸들은 지 혼차 묵들 않애야. 사식 넣어주는 사램 한나 읎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단 한멩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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